고대 작가에게 학교에 대한 기억은 폭력과 공포였다. 4세기 시인인 아우소니우스(Ausonius)는 손자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학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격려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썼다. "선생님을 만나는 걸 두려워 말거라.",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한 목소리로 가혹하게 꾸짖어도 적응하거라. 학교에서 채찍질 소리가 들려도 겁먹지 말거라. 매가 진동하고 네가 앉은 의자가 두려움에 흔들리며 고함이 들려도 동요하지 말거라." 아마도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한 이 말이 아이에겐 악몽 같았을 것이다. 학창 시절의 고통을 잊지 못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일흔두 살의 나이에 이렇게 썼다. "죽음과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중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린 시절의 공포에 기겁하여 죽음을 택하지 않을 자 있겠는가?" - P361
반면에 나는 헝가리 저널리스트 비로 라슬로(Biro Laszlo)의 천재적 발명품인 볼펜의 시대에 속한다. 라슬로는 아이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금속으로 만든 공으로 새로운 필기구를 만드는 초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물웅덩이에 빠진 공이 구르면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비 오는 도시에서 공을 차며 소리를 지르고 웃는 아이들과 공의 젖은 발자국을 상상해본다. 거기에서 내 어린 시절의 육각형 빅 크리스털 볼펜이 유래했다. - P364
약 38억 년 전, 지구에서 특정 분자가 모여서 복잡한 구조의 생명체가 생성됐다. 현생 인류와 매우 유사한 동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250만 년 전이다. 30만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불을 길들였다. 그리고 인류가 말을 정복한 건 10만 년 전이다. 기원전 3500년에서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익명의 수메르인 천재들이 점토에 기호를 씀으로써 음성의 시간적, 공간적 장벽을 극복하며 지속적인 언어의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로부터 5000년 이상이 지난 20세기가 되어서야 글쓰기가 대부분의 인구가 사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기술이 되었다. 따라서 글쓰기는 아주 최근의 일이다. - P368
아이티 태생의 흑인 청년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는 1980년대에 미술관에 그래피티를 전시하기 전까지 노숙인처럼 살았다. 주변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시스템 속에서 자기확신을 표현하듯 그의 작품에는 문자가 폭포수처럼 스며있다. 그는 글을 쓴 뒤 더욱 잘 보이도록 몇몇 글자를 그어버리곤 했다. 그는 바로 그 감춰져 있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주의 깊게 읽도록 강제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 P369
흥미롭게도 그래피티(관련자들은 ‘글쓰기‘라고 부른다)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의 건물, 지하철, 벽, 광고판에 그려졌고, 뒤이어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파리, 런던, 베를린 등지로 퍼져나갔다. 정보 혁명이 실리콘밸리의 뒷마당에서 일어난 시기에 말이다. 새로운 기술 전문가들이 사이버 공간의 경계를 탐험하는 사이, 도시 청년들은 처음으로 벽과 차에 글자를 그리는 즐거움과 글쓰기라는 물리적 행위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키보드가 쓰기의 몸짓에 혁명을 일으키기 시작한 시기에 대안 청년문화는 당시까지 소수의 즐거움이었던 캘리그라피를 열정적으로 발견했다. 사물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힘, 글자가 담고 있는 창의적 가능성, 글쓰기에 담긴 위험(이는 언제나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행위였다)에 매료된 청년들은 손으로 쓴 알파벳을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시간을 때우는 방편으로, 또래에게 인정받는 방법으로 채택했다. 바로 지금 이런 전유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건 인류의 긴 여정에 견줘 글쓰기가 너무나 젊다는 사실로서만 설명된다. 글쓰기는 우리 종족의 마지막 떨림, 오래된 심장의 가장 최근 박동이다. - P369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창백한 불꽃』에서 이 엄청난 혁신에 놀라지 않는 우리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불멸의 이미지, 사고의 진화, 그리고 말하고, 웃고, 웃는 사람들의 새로운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문자라는 기적에 터무니없이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언젠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전혀 읽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건 기호로 그려진 목소리와 말 없는 단어들의 기적이 있기 전의, 그리 멀지 않은 시대로의 회귀가 될 것이다. - P370
로마의 귀족들만이 그러한 호화로운 도서관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 롤스로이스를 몰고 다니는 사람처럼 재산을 과시했다. 극소수를 제외한 시인, 현자, 철학자는 그 특권 집단에 속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아름다운 책을 멍하니 바라보며 무식한 책 수집가들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중에는 루키아노스의 『많은 책을 산 무식자를 비판하며』라는 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책에서 어떤 이득도 취하지 못하는 자는 책을 쥐에게 헌납해놓고도 그 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노예만 채찍질할 것이다. 책을 두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 바에야 제 대로 쓸 줄 아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편이 낫다. 그건 먹지도 않을 보리를 마구간에 놔둔 채 말도 못 먹게 하는 개나 마찬가지다." 이 모욕 의 걸작은 독서가 과분한 특권의 표시인 시대에 책의 결핍을 분노로 표출하고 있다.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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