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잠이라면 어떤 성격의 잠인가, 라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잠은 치료를 위한 하나의 방편일까–더 없이 화가 나게 하는 기억들, 인생을 망쳐버릴 것 같은 일들을 검은 날개로 문지르고, 가장 추하고 천한 것들마저 까칠한 부분을 문지르고 금박을 입혀, 광택과 광채가 나게 하는 최면상태인가? 인생이 산산조각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죽음의 손가락이 삶의 소용돌이 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매일 소량씩 죽음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통로로 뚫고 들어 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바꿔버리는 이 이상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올랜도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 일주일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죽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삶의 본질은 무엇이란 말인가? - P62
그는 손에 초를 들고 긴 회랑과 무도회장들을 걸어다니면서, 마치 그가 찾아낼 수 없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열심히 찾고 있기나 한 것처럼, 그림 하나하나를 들여 다보고는, 가족 예배석으로 올라가, 박쥐나 해골 면상 나방이와 함께 여러 시간 동안 깃발이 움직이고 달빛이 흔들거리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그에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그는 10대에 걸친 조상의 관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지하 납골당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곳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쥐들이 마음 대로 관의 납 장식을 갉아먹어, 그가 지날 때 넓적다리뼈가 외투에 걸리기도 하고, 또 말리즈 경이라는 사람의 해골이 발치에 걸리면, 밟아 으깨기도 했다. 그곳은 섬뜩한 묘지였다. 그것은 정복 왕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온 가족의 초대 영주가, 모든 영화는 부패 위에 만들어진다는 것, 육체 밑에는 해골이 있다는 것, 지상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우리는 땅 속에 잠들어야 한다는 것, 진홍의 벨벳도 흙이 되고 만다는 것, 반지도 루비를 잃을 것이고(이때 올랜도는 그가 들고 있던 등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는 한 귀퉁이에 떨어져 있던 알이 빠진 둥근 금 고리를 주워들곤 했다), 그처럼 윤나던 눈도 더 이상 빛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원했던 양, 납골당은 집의 기초 밑을 깊이 파서 만들어졌다. - P65
주름진 명주를 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뜻을 밝혀내는 일은 소설가에게 맡기고 간추려 말한다면, 올랜도는 문학에 신들린 귀족이었다. 그가 살던 시대의 많은 사람들, 특히 그와 마찬가지 계급에 있던 더 많은 사람들은 이 병에 감염되지 않고, 내키는 대로 뛰거나, 말을 타거나,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아스포델 꽃가루에서 자라고,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날아왔다는 이 균에 감염되었는데, 이 균은 치명적인 성격의 것이어서, 치려고 치켜든 손을 떨리게 하고, 사냥감을 노리는 눈을 흐리게 하며, 사랑을 고백하려는 혀를 더듬게 만들었다. 환상으로 현실을 바꿔치기 하는 것이 이 병의 치명적인 특성이어서, 운명의 여신이 그에게 준 모든 선물들–접시, 리넨, 집들, 남자 하인들, 양탄자, 수많은 침대 등의 풍족한 선물들–은 올랜도가 책을 펼치기만 하면 모두 안개로 사라지고 말았다. 9에이커나 되는 그의 석조 건물이 사라지고, 150명의 집안 하인들이 사라지고, 80필의 말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독기를 맡고 바다의 안개처럼 사라져버린 카펫, 소파, 장식 마구, 사기그릇, 접시, 양념통, 보온 기구, 그리고 대개 금박으로 된 가구류들을 세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올랜도는 홀로 앉아 가진 것 하나 없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었다. - P67
일단 독서병에 걸리면, 몸의 기관이 약해져서 쉽사리 다른 재앙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잉크 병 안에 숨어 있고, 깃털 펜 속에서 곪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병자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것은 가진 것이라고는 비가 새는 지붕 아래 놓인 의자 하나와 테이블뿐이어서, 잃을 것이 별로 없는 가난뱅이에게도 문제려니와, 집이 있고, 가축이 있고, 하녀들이 있고, 나귀들과 리넨이 있으면서 글을 쓰는 부자의 경우에는 그 입장은 참으로 딱하다. 이런 물건들을 즐길 수 없다. 그는 온몸에 뜨거운 인두질을 당하고, 해충에게 물리게 된다. 그는 작은 책 하나를 쓰고 유명해지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한다(그만큼 이 해충은 질이 나쁘다). 그러나 페루의 금을 모조리 다 쓴다고 해도, 그는 한 줄의 멋진 표현이라는 보석을 살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탈진해서 병이 들고, 권총으로 뇌를 날려버리거나, 절망 끝에 얼굴을 벽으로 향한다. 어떤 자세를 하고 있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그는 이미 죽음의 문을 지나 지옥의 불길에 태워진 뒤니까. - P69
글 쓰는 악행에 중독된 사람들이 글 쓰는 의식을 시작할 때 으레 하는 손놀림을 했다. 그러나 그는 손을 멈췄다. 그가 이처럼 멈칫한 것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사람들을 무릎 끓게 하고, 수많은 강을 피로 물들게 하는 수많은 행동보다 한층 더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왜 그가 멈칫했는가를 묻고, 잘 생각 해보고 난 뒤에,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노라고 대답해야만 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해괴한 농간을 부리는데, 이를테면 어울리지 않게 우리를 진흙과 다이아몬드로 만드는가 하면, 무지개와 화강암으로 만들고, 그것들을 더없이 어울리지 않는 하나의 상자에 채워 넣는다. 그리하여 시인이 푸줏간 주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하면, 푸줏간 주인이 시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연은 혼란과 신비를 좋아해서, 지금도(1927년 11월 1일) 우리는 왜 이 층으로 올라가는지, 왜 또다시 내려오는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일상적인 동작들은 미지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의 항해와도 같다. 돛대 꼭대기의 선원들은 쌍안경을 지평선에 향한 채, 저기에 육지가 있는가, 없는가, 라고 묻는다. 그것에 대해 만약 우리가 예언자라면 "있다"라고 대답할 것이고, 만약 우리가 정직하다면 "없다"라고 답할 것이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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