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흙이요, 명성은 수증기이며, 종말은 잿더미로다. - P121

로멜리는 추기경들을 둘러보았다. 의자는 넓게 네 줄로 나뉘었다. 현명한 표정, 따분한 표정, 종교적 열정이 가득한 표정······. 추기경 한 명은 아예 잠이 들었다. 아마도 옛 공화국 시절, 토가 차림의 고대 로마 원로들이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여기저기 유력 후보들도 눈에 띄었다. 벨리니, 테데스코, 아데예미, 트람블레이······. 서로 떨어져 앉았지만 다들 자기 생각에 몰두한 듯 보였다. 문득 콘클라베가 너무 부족하고 자의적인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던가? 성서 어디에도 근거가 없었다. 성서를 아무리 읽어도 주께서 추기경을 만들었다는 구절은 보지 못했다. 성 바오로가 주님의 교회를 생명체로 묘사했는데, 저들이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 P127

성모 교회에 봉사하는 동안,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는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El, Eli, lama sabachtani).‘ 십자가에서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쳤죠. 우리 신앙이 살아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 P132

나를 적으로부터 지키소서(Munire digneris me) - P146

바로 옆방에서 우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이따금 웃음소리도 들렸다. 지금은 확실해졌다. 옆방 주인은 분명 아데예미다. 콘클라베의 어느 누구도 목소리가 그렇게 깊지 못했다. 소리로 보아 지금은 지지자들과 만나는 중인가 보았다. 이따금 커다란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로멜리는 거부감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정말로 교황 자리가 손안에 들어왔다고 믿는다면, 저렇게 기대감에 들떠 있는 대신 지금쯤 두려움에 떨면서 어둠 속에 누워 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오만함을 나무라기도 했다. 최초의 흑인 교황은 분명 세계적으로 대역사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역사의 도구로 쓰신다는 데 그 기쁨을 드러낸다 한들 누가 나무랄 수 있단 말인가? - P175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이죠. 예하께서도 설교하실 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의심이 없으면 신념도 없다고? 저도 경험한 바가 있어 감명이 깊었는걸요. 정말 아프리카에서 저처럼 지냈더라면 누구든 주님의 자비를 의심했을 겁니다." - P182

폰티피컬 라테란 대학에서 교회법 박사 과정을 공부할 때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을 읽었다. 당시 배운 내용이 군중을 다양한 범주로 나누는 일이었다. 겁에 질린 군중, 의욕을 잃은 군중, 반항하는 군중 등등. 사실 성직자 그룹에도 유용한 기술이다. 이 세속적 기술을 적용한다면 콘클라베는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군중으로 읽힐 수 있다. 성령의 집단 충동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니 왜 아니겠는가? 라칭거를 선출했을 당시에도 그랬듯 콘클라베는 소심하게 변화를 거부할 수 있다. 어떤 콘클라베는 무모해서 보이티와 같은 인물을 교황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이번 콘클라베와 관련해 로멜리가 걱정하는 바는, 카네티의 소위 분열하는 군중으로 점차 변질되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불안정해 쉽게 유혹에 휘둘리는 것이다. 이 경우 언제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가 없다. - P235

"오명 하나 없는 후보가 어디 있어야죠. 어떤 교황은 과거 히틀러 유겐트 일원으로 나치를 위해 싸우고, 공산주의자, 파시스트와 결탁 했다고 비난받은 교황들도 있었죠. 끔찍한 성 추문 보고서를 감춘 적도 있고······. 그렇게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만일 단장 예하께서 교황청 소속이라면 분명 누군가 슬쩍 추문을 흘렸을 겁니다. 대주교라면 한두 번 실수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도 사람이기에 약점은 있습니다. 이상을 추구하지만 늘 이상적일 수는 없죠." - P249

다른 추기경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판유리 문 너머 근위병 하나가 수녀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출근하는 길이겠지만 아직 어스름 녘이라 얼굴을 알아보기는 불가능했다. 그저 움직이는 그림자가 길게 줄을 선 것만 같았다. 그 시간이라면 세계 어디서나 볼 법한 광경이 아닐까? 어느 곳이나 가난한 이들이 아침을 여는 법이니까? - P293

시간문제일 뿐 비밀이 다 그렇지 않은가. 루카 복음서에 나와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직접 예견하신 바 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 P296

"내가 올바른 일을 했을까요, 엑토르? 추기경 생각은 어때요?"
"양심을 따르는 이는 절대 잘못하지 않습니다, 예하. 결과가 생각과 다를 수 있고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잘못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이끄는 이정표는 당연히 양심이어야죠. 주님의 목소리를 제일 잘 듣는 곳이 바로 양심이니까요." - P300

이제는 모두들 더 잘 알게 되었다. 약점과 결점까지 모두. 칸트의 얘기 한 줄이 문득 떠올랐다. ‘심성이 비뚤 어지면 올곧은 행위는 불가능하다.’ 교회는 비틀린 재목으로 만들었다. 어찌 아니겠는가? 하지만 다행히 주님의 은혜 덕에 재목은 자리를 잡고 2000년을 버텨냈다. 필요하다면 교황 없이 2주일은 더 버틸 수 있다. 문득 동료들을 향한 근본적이고도 기이한 애정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저들의 약점까지도 사랑스러웠다. - P313

투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전날 밤 사건이 많았던 터라 자리에 앉자마자 지쳐 잠들어버린 것이다. 바로 앞에서 펄럭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깼더니 벌써 한 시간이 지나고 그는 턱을 책상에 대고 있었다. 메모지 하나가 접힌 채 책상에 놓여 있었다. ‘그 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마태오 8장 24절.‘ 뒤돌아보니 벨리니가 상체를 숙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사람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으나 정작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맞은편 추기경들도 성서를 읽거나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다. 검표원들이 제단 앞에서 테이블을 세팅하는 것으로 보아 투표도 끝난 모양이었다. 로멜리는 펜을 들어 인용문 아래, ‘자리에 들면 자나 깨나 여호와께서 이 몸을 붙들어주십니다. 시편 3장‘이라고 휘갈겨 적은 후 다시 돌려주었다. 벨리니는 그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멜리가 그레고리안의 옛 제자이고 대답을 잘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 P315

‘주여, 가능하다면 다른 이에게 성배를 넘기소서.’ 그런데 기도는 외면당하고 독배가 주어지면? 그 경우 거절하기로 각오는 했다. 1978년 천 번째 콘클라베에서 루치아니도 그렇게 했다.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는 것 또한 이기심과 비겁이라는 중죄에 해당하기에 결국 루치아니도 동료들의 간원을 받아들였으나 로멜리는 끝까지 버틸 심산이었다. 주께서 자기인식의 재능을 허락하셨다면 당연히 사용할 의무도 있지 않을까? 교황으로서의 고독과 고통과 고난이라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건 교황이 성스럽지 못하다는 데 있다. 성스럽지 않은 교황이라니, 불경도 이만저만한 불경이 아니리라. - P321

일곱 번째 투표는 상서로워야 했다. 일곱은 성취와 완성의 숫자가 아니던가. 주께서 세상을 창조하고 휴식을 취한 날. 아시아의 일곱 교회도 그리스도의 완벽한 신체를 상징한다고 했다. - P329

"힘내게나, 레이. 이 엄청난 걸작을 봐. 기막히게 예언적이지 않은가? 그림 끝에 어둠의 장막 보이지? 예전엔 그저 구름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보니까 연기가 틀림없구먼. 어딘가에 불이 났어. 가시권 너머일 텐데 미켈란젤로가 감추려 한 걸 보니······ 폭력, 전쟁, 갈등의 상징일까? 그리고 베드로가 고개를 똑바로 들려고 애쓰는데······ 자네도 보이지? 지금 거꾸로 처박힐 지경인데 왜 저러고 있을까? 지금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굴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안간힘을 써서 자신의 신앙과 존엄성을 보이려는 게지. 세상은 문자 그대로 뒤집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정을 유지하고 싶은 걸세." - P338

로멜리는 의자에 기대앉아 생각지도 못한 일을 고민했다. 그런데 마태오 10장 16절에 이렇게 적혀 있지 않던가? ‘뱀처럼 현명하고 비둘기처럼 순수하라······.‘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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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다. 묘하게도 로멜리는 저 늙은 야만인에게 향수를 느꼈다. 어쨌든 함께 살아남은 두 사람이 아닌가. 둘 모두에게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콘클라베인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참석자 대부분 과거 한 번도 콘클라베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만일 추기경단이 젊은 교황을 선출한다면, 거의 대부분 다시는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다. 저들은 지금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오후가 깊어갈수록 더 많은 추기경들이 가방을 들고 비탈길을 올라왔다. 이따금 혼자이기도 하나 대개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었다. 로멜리는 이 희대의 역사에 많은 이들이 고무해 있음을 보고 감동했다.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들이 얼마나 다양한 인종을 대표하는지 보라. 이 넓디넓은 우주 교회에서 문화도 지형도 다르게 태어났건만, 이렇게 주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함께 모이다니! - P61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딘가 특별하면서도 고귀한 추기경 무리가 등장했다. 교황청의 추기경 24인. 영원히 로마에 살며 교회의 주요 부서를 운영하는 이들이다. […] 그래서 로멜리가 다른 추기경들과 마찬가지로 따뜻하게 환대한다 해도, 전 세계에서 찾아온 추기경들과 달리 이들한테서 경건한 모습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선한 사람들이기는 하나 이미 너무 많이 겪었기에 무덤덤해진 것이다. 로멜리 자신도 영적 상처를 입고 그런 식의 일탈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한 바 있었다. 죽은 교황도 종종 추기경들을 다그쳤다. "마음 단단히 먹게, 형제들이여. 허영과 호기심, 악의와 험담의 죄들, 사악한 방해꾼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네. 절대 굴하지 말게나." 교황이 죽던 날 벨리니가 해준 얘기가 있었다. 교황 역시 교회를 향한 믿음을 잃었다고······. 로멜리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얘기였기에 어떻게든 마음에서 몰아내려 애썼지만······ 교황이 말한 교회란 분명 이들 관료일 것이다. - P63

천박한 자들은 늘 모든 것을 알려고 들지만,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로는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이었다. - P77

"잠깐만요, 정말 그래야 할까요?" 그가 속삭였다.
"아닐 이유는?"
"성하께 정말 이런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세요?"
"조심하세요, 친구. 그런 발언은 이단입니다. 우리가 성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어요. 그분의 바람을 존중할 의무뿐이죠."
"교황의 무류성(無謬性)은 교리 문제입니다. 임면권까지 무결하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교황의 무류성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는 잘 알아요. 하지만 이 문제는 교회법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점이라면 나도 추기경 못지않게 일가견이 있답니다. 교황령 39절은 아주 구체적이죠. ‘추기경 선거 인단이 사전에 즉 신임 교황이 선출되기 전에 도착한다면, 선거가 어느 단계이든 상관없이 참여하도록 허락할지어다.‘ 저 양반은 합법적인 추기경입니다!" - P87

"중동의 기독교는 이미 입지가 위태롭습니다. 예하께서 추기경이신데 로마까지 직접 나타나신 사실이 알려지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위험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그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죠. 그래서 여기 오기 전 오랫동안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에, 아무튼 선택을 하셨으니 그 문제는 넘어가죠. 하지만 이곳에 오신 이상, 어떻게 바그다드로 돌아가실 생각인지 암담하기만 하군 요."
"당연히 돌아가야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제 신앙의 결과를 받아들일 겁니다."
"추기경님의 용기와 신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하의 귀국은 외교 마찰을 빚을 테고 그렇게 되면 예하의 결정과 무관하게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예하의 결정과도 무관하겠죠. 예하, 제 결심은 차기 교황을 위한 것입니다." - P88

베니테스가 어찌나 놀란 표정을 짓던지 잠시 한 번도 식사 기도를 해보지 않았나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마침내 그가 "물론입니다, 예하.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라며 인사를 받고는 성호를 긋고 고개를 숙였다. 추기경들도 따라 했다. 로멜리도 눈을 감고 기다렸다. 한참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로멜리가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할 때쯤 목소리가 들렸다."오, 주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이제 우리는 주님의 너그러우신 선물을 마주했습니다. 또한 이 음식을 함께하지 못 하는 이들을 축복하소서. 오, 주여, 우리가 먹고 마실 때, 굶주리고 목 마른 이들, 아프고 외로운 이들, 그리고 오늘 밤 우리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도와줄 수녀들을 잊지 않도록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 P99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 선교사–사제가 왜 그렇게 교황 성하의 마음을 끌었는지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신을 만나고 싶으면, 안락한 제1 세계 교구가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고 가장 절박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분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주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든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을 포기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질지어다.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삶을 버리면 구할 것이니라······.
베니테스는 정확히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교회의 장벽을 통해서라면 결코 이곳에 이르지 못할 사람.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을 사람. 그래서 사회적, 사교적으로 늘 어색한 사람. 그렇다, 저렇듯 특별한 성직 수여가 아니라면 어떻게 추기경단에 속할 수 있었겠는가. 로멜리는 비로소 그 모두를 이해했다. - P101

로멜리는 거대한 암흑의 무저갱을 그려보았다. 구덩이는 하늘에서 그에게 집어 던진 조롱의 목소리들로 어지러웠다. 의심이라는 이름의 신성한 계시.
절망. 절망. 절망. 로멜리는 《묵상》을 집어 벽으로 던졌다. 책은 벽에 부딪혀 탁 소리를 냈다. 코 고는 소리가 잠시 그쳤다가 다시 이어졌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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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도 폭력이 될 수 있다. - P95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폭력에 대한 묘사가 읽기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는 독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실제 벌어진 일은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해서 소설에 쓸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며, 그나마 쓴 것들도 나중에 지웠고 겨우 남은 것이 그 정도라 했다. 그는 본래 폭력적인 장면을 쓰는 데 특히 더 애를 먹는 작가다.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 일도 힘겨울 때가 있어요." 바로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소설을 쓸 수 있었으리라. 이것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더 민감해져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 P96

우리는 소설의 3요소를 ‘주제· 구성 문체‘라고 배운다. 간단한 이야기다. 목적과 재료와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중 재료를 이루는 세 가지를 따로 ‘구성의 3요소‘라 부르는데 흔히 ‘인물·사건·배경‘이라 외운다. 사실 정확한 순서는 ‘인물·배경·사건‘이라야 한다. 특정 타입의 인물이 특정 배경 속에 던져질 때 특정 사건이 발생하는 게 소설이라는 세계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예로 들자면, 하필 윤희중 같은 타입의 인물이 하필 무진이라는 공간에 던져졌기 때문에 하필 그와 같은 연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인물은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 P138

뫼르소의 무도덕은 정직함의 어떤 극단적인 양상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다음 날에는 애인과 섹스를 했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그토록 불편한가? "육체적 욕구에 밀려 감정은 뒷전이 되는 그런 천성"이 뫼르소만의 것인가? 그는 단지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늘 하는 거짓말을 안 할 뿐이다. 더 나아가 카뮈는 뫼르소에게 기어이 이렇게 말하게 한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 P140

사고에서는 사실의 확인이, 사건에서는 진실의 추출이 관건이다.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사고가 일어나면 최선을 다해 되돌려야 하거니와 이를 ‘복구‘라 한다. 그러나 사건에서는, 그것이 진정한 사건이라면, 진실의 압력 때문에 그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되돌릴 경우 그것은 ‘퇴행‘이 되고 만다. - P145

보르헤스 자신이 ‘기독교적 환상 문학‘이라 명명한 이 소설의 가설들이 놀랍도록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더 끌리는 논변은 지젝의 것이다. 《죽은 신을 위하여》(2003)에서 그는 유다의 행위가 ‘신뢰의 궁극적 형태로서의 배반‘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가 공적 영웅이 되려면 누군가의 배반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 그럴 때는 그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만이 기꺼이 그를 배반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유다는, 가장 사랑하는 대상을 배반해야만 그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던, 비극적인 인물이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오독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이 오독의 빛에 의지해 인간이라는 심해로 내려 간다. - P148

소설에서 음악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노래는 거기 그대로 있는데 삶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랑은 식고 재능은 사라지고 희망은 흩어진다. 삶의 그런 균열들 사이로 음악이 흐를 때, 변함없는 음악은 변함 많은 인생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이 세상을 흐르는 음악이, 흐르면서, 인생을 관찰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인물들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인물들의 얘기를 듣는 이야기. - P153

우리가 어떤 소설을 읽다가 내려놓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독자 각자가 소설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어떤 것이 책의 뒷부분에서도 제공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그 순간에 책을 내려놓겠지. 나에게 ‘이 책을 그만 읽는 게 어떨까‘ 하는 유혹이 찾아오는 1차 고비는 처음 10쪽 부근, 2차 고비는 3분의 1 지점이다. 고비가 두 군데라는 것은 내가 소설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어떤 것이 적어도 두 가지라는 뜻이다. - P158

소설적인 문장은 ‘소설적인 문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서 고뇌한 흔적을 품고 있는 문장이다. 추상적인 명제이지만 정직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 고뇌는 반드시 전달된다. - P159

여기에 한 사람을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오스카 와일드여야 할 것이다.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그의 아포리즘 중 하나를 나는 기억한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단, 영원히 사랑하는 것만 빼고." 이런 문장은 일단 한번 듣고 나면 결코 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재기발랄한 문장들을 음미하며 맞장구를 치고 있자니 짓궂은 그가 또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동의할 때마다 내가 틀렸다는 느낌이 든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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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불빛 아래 거울을 보니 잿빛 얼굴 여기저기 반점이 가득했다. 부디 계시라도 있기를, 내게 힘을 내리시기를. 승강기가 덜컥하며 멈췄는데도 위장은 계속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손잡이에 의지해 중심을 잡아야 했다. 교황의 즉위 초기 함께 이 승강기에 탔을 때였다. 대주교 둘이 들어오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주님의 대리자를 직접 마주하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교황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말고 일어나시게나. 나도 늙은 죄인일 따름이라네.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 P18

"교황직은 어차피 격무입니다. 사람들도 그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어요."
트림블레이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벨리니는 시선을 떨구었다. 묘한 긴장감. 로멜리는 잠시 후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교황직이 격무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릴 경우 사람들은 더 젊은 남자가 교황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아데예미는 겨우 60대 초반이며 다른 두 추기경보다 거의 10년이나 젊었다. - P31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밤공기 속으로 멀어져 갔다. 차단봉 안쪽에서 기자들과 사진사들이 추기경들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동물원 짐승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유혹하는 관광객들 같았다. - P38

벨리니가 로멜리의 팔을 잡았다. "기도에 어려움을 겪으신다고요? 성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어쩌면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아시겠지만 그분도 종국엔 회의 때문에 고통받으셨답니다."
"성하께서 하느님을 의심하셨단 말씀입니까?" 그후 벨리니의 말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요! 하느님이라니요! 성하께서 신념을 잃은 상대는 교회였습니다." - P39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죽은 교황은 이따금 지나칠 정도로 검소와 겸손을 강조했다. 결국 과도한 겸손은 또 다른 차원의 허영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자신의 겸손을 과시한다면 그것도 죄다. - P47

아치길을 통과하자 안뜰이 계속 이어졌다. 안뜰 너머 안뜰, 또 안뜰. 비밀 회랑의 미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을 항상 왼쪽에 두고 돌았다. 성당의 벽돌 벽은 밋밋하고 어두침침해서 볼 때마다 실망스러웠다. 도대체 인간의 천재성은 어째서 온통 저놈의 화려한 내부에만 쏟아붓는 걸까? 로멜리가 보기엔 그놈의 천재성마저 지나쳐 미적 소화 불량에 걸릴 지경이었다. 반대로 외부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 탓에 그저 창고나 공장처럼 보였다. 아니면, 일부러 그 점을 노린 걸까? 지혜와 지식의 보물은 하느님의 신비한 내부에 숨어 있기에······. - P49

이따금 헬기 소음 너머로 시위 목소리도 들렸다. 수천의 목소리가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이따금 경적과 북소리, 호각 소리가 이어졌다. 무슨 이유로 시위를 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동성 결혼 지지자, 동성 연합 반대파, 이혼 찬성 옹호자, 가톨릭 통일체 지지 가족 협의회, 사제 서품을 요구하는 여성들, 낙태와 피임을 원하는 여성들, 무슬림과 반무슬림, 이민자와 반이민자 그룹······ 이들이 하나로 모여 분노의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터라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서 경찰 사이렌 소리도 들렸다. 하나, 둘, 다시 셋······. 소음은 마치 서로에게 구애하며 도시를 헤집는 것 같았다.
이곳이 방주로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란의 파도에 휩싸인 방주.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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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그리고 허무 그리고 허무(nada y pues nada y pues nada)." 이런 기분에 사로잡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행여 아직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 세월이 흘러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될지 모른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언젠가 내가 읽은 적 있는 삶이라는 것을. - P61

서사의 각 국면에서 우리는 세 개의 물음(모티프)과 만나게 된다. 첫째,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예술의 위대함을 찬미하는 이야기다. 생명이 있는 것들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을 극복하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오르페우스가 악기 하나만으로 저승에까지 갈 수 있었고 아내를 데려갈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는 설정은 위대한 예술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지대한 신뢰와 동경을 입증할 것이다. 둘째, 이것은 금지와 위반에 대한 이야기다. 플루토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는 분명치 않다. 죽은 자는 살려내선 안 된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기 위해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르페우스가 결국 돌아보고 말았다는 점이다.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결국 돌아보게 된다. 이 모티프가 구약의 창세기에서 한국의 민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것은 이 설정이 욕망의 본질(금지가 있는 곳에 위반이 있다)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 이것은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다. 오르페우스는 애도를 끝내는 데 실패하고 타살의 형식으로 자살한 인물이다. 이상 세 가지 모티프는 이 원형적인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는 세 개의 문이 된다. - P73

오르페우스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이것이 사랑하는 연인을 제 손으로 한 번 더 죽인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별의 순간에 연인은 나를 떠남으로써 내게서 한 번 죽는다. 그런데 더 사랑하는 사람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이별의 순간에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 수 있다. 죽은 연인을 살리려는 노력이 외려 그를 한 번 더 죽이게 되는 경우다. 이 경우 떠난 것은 너이지만, 네가 돌아올 수 없게 만든 것은 내가 되고 만다. - P75

너무 오랫동안 울음을 참아온 그는 정작 자신이 그래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슬픔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슬픔이다. - P78

진정한 고통은 침묵의 형식으로 현존한다. 고통스러운 사람은 고통스럽다고 말할 힘이 없을 것이다. - P88

"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아니 에르노의 《집착》(문학동네, 2005)은 ‘고통‘이라는 단어의 출현 빈도가 분량 대비 가장 높은 작품일 것이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은 근래 읽은 고통의 기록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닮아 있는데 그것은 이 소설들이 고통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 P88

질문은 진실을 말하라고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로 인간 개개인의 진실이라는 것은 도무지 한두 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일 때가 많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은, 이렇게 시작되는 긴 이야기의 끝에서야, 겨우 떠오를 것이다. - P92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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