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밤에는 토오루랑 둘이서 새벽 내내 만화를 그렸어··· 눈이 온갖 소리를 빨아들여 적막하기 그지없는 밤에는··· 마치 지구에 우리 둘 뿐인 듯한 기분이 들었지··· 여름은 완전히 딴판이었어. 모든 게 눈부시게 빛을 발하니··· 이곳의 여름은 마치 토오루처럼 빛났지. - P21
있잖아, 토오루··· 이 세상에 우리 둘만 있던 건 아니었나봐··· - P29
하지만 그 녀석이 다시 잡지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으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술렁거린단 말이죠. 응원하고 싶을 만큼 기쁘다가도··· 잘될쏘냐 분한 마음이 일어서··· - P49
작년에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선생님의 『폰타의 일상』을 발견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예전과는 전혀 다른 울림이 있더군요··· 진실된 작품은 읽는 이의 심경이나 성장에 따라 완전히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는 걸 새삼··· 곱씹게 됐습니다. 정보가 넘쳐흐르는 요즘 같은 시대라서 더욱, 선생님의 작품이 꼭 필요합니다. - P54
–뭐라고 해야 하나··· 당했다고나 할까··· –당했다고요? –나, 딴사람 만화는 잘 안 읽는데··· 오는 길에 그 녀석 만화를 읽어 봤더니··· 기세가 만만치 않더군. 한 꺼풀 벗은 느낌이라··· 뭐랄까. 지금 나보고 이런 걸 그릴 수 있는지 묻는다면··· - P76
–팔리는 작가는 그런 생각을 하는군요··· 대단 하세요··· –대단 하단 건 또 뭐야? 너도 그런 적 있을 거 아냐? –글쎄요··· 저는 누가 봐도 사회 부적응자 라서··· 좋아하는 만화를 하루종일 그릴 수 있고··· 그걸 좋아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것만으로도 제겐 기적이에요··· 고마운 마음뿐이라··· 그외의 것들은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 P77
루나는 아빠 만화에 나오는 사람 중에 토고 씨가 제일 좋아. 덩치는 크면서 홈런은 한 번도 못 치구··· 수비도 구멍이잖아? 그래서 늘 벤치 신세인데도 항상 싱글벙글 웃고 있는 게··· 되게 멋있어. - P84
–꿈을 꾸는 듯 매일이 즐거웠어. 정말로.. 평생 선생님의 어시로 일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했거든. –할 만큼 하신 거 아닐까요? 그 시절 미키 선생님의 만화는 완벽하고 멋졌잖아요. –고럼. –두 분은 그때 이미 궁극의 만화를 만들어내신 거예요. 부럽습니다. –핫··· 과연 그럴까? 어쨌든 난 엄청 좋아했어··· - P105
–···스스로 납득한 결정이야? 더이상 만화는 안 그린다는 거··· –마음이 식었다··· ···라고 하면 좀 다른 의미일 수도 있는데요···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그려왔던 제 세계가 왠지 모르게 멀게만 느껴지더라고요. 제3자의 눈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 그렇게 된 지는 꽤 됐어요. 작품 속 인물들은 더이상 아무것도 이야기해주지 않아요. 그들은 그저 꼭두각시일 뿐···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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