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잊기 위해서 마실 때도 있고 잊어야 할 만큼 마실 때도 있다. 잊다가 잃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알코올이 다량으로 함유된 보통의 술자리는 어쩔 수없이 휘발성이다. 기실 술자리에 대한 기억은 ‘우리 어제 좋았지‘ 정도의 대략적인 느낌만으로도 충분할때가 많다. 취기가 무르익을수록 술자리는 지나친 동어 반복, 통제를 벗어난 감정 표출, 행위예술 수준의 보디랭귀지 등으로 범벅되니까. 그런 자리를 거듭해본 분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망각은 괜히 선물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모두의 품위 유지를 위해 적당히 흘려보내는 미덕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술자리, 그런 의식 있는 자리들의 집합소가 술집이다. - P108

언제 어디서나 술을 마신다는 점에서 술집이나 다름없는 <시시알콜>의 안주는 시다. 술과 안주의 마리아주로 맛을 극대화하듯, 술과 시의 페어링을 통해 감정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한 장씩 한 잔씩 나아간다. 시 앞에서의 술은 그저 사람을 취하게 하는 화학품이 아니다. 술을 마시면 생각이 깊어지는 건 아니어도 마음만큼은 넓어지고, 그러면 세상 모든 화자의 감정을 대충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되니까. 이해와 공감이란 때론 머리보단 마음의 영역이라는 걸 알려준 게 시와 술이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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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도 썼지만 엄마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 작가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방송 프로그램인 <식객 허영만의백반기행>에 출연하기도 했다. 망원동에서 동거를 하며 결혼을 준비하던 때였는데, 방송에서 먼저 결혼 소식을 전국에 알리며 허영만 작가, 신현준 배우와 축배를 나눴다. 승용은 녹화할 때 "너랑나랑호프가 좋아서 신혼집을 근처로 구했다"고 밝히며 사장님을 일컬어 "저희 어머니" 라고 폭탄 발언을 던지기도 했다. 물론, 진짜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덧붙였지만. 진짜 가짜, 그걸 누가 정하는겁니까. 분명 망원동이 제 마음의 고향이고, 권복자 씨가 제 내장지방의 어머니입니다. - P102

손님이 있든 없든 위군의 무조림은 언제나 쉴 새 없이 끓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무를 조리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이름 모를 독자를 상상하며 묵묵히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졸인다’와 ‘조린다‘는 비슷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고, 그 기다림 속에서 일어나는 노력은 양념이 되어 결국에는 제맛을 낼테니까.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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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신이 말하는 영혼이란 게 뭐지? 사람의 몸속 어디에 있는지 내게 한번 보여줘봐. 그럼 어쩌면 믿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는데, 아무리 실컷 해부를 해봐도 찾지 못할걸.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어떤 것을 당신이 만들 수는 없어. 그러니 당신 말 속에 그 ‘영혼‘이란 말은 지워버려. 둘째, 우리나라 속담 중에 ‘내일은 없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에 대한 직역-옮긴이)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당신이 뜻하는 내일이 약속에 불과할 뿐 이룬 건 없는 이유야. 우리는 항상 지금 여기에서 현재를 살아가 당신이 희망을 미래로 고정하는 것도 이런 희망을 가설로 만드는 건데, 가설이란 다시 말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니까. 셋째, ‘완전‘이란 말을 볼때 그건 어찌 인식할 거지? 불완전한 현재로 완전한 미래를 규정할 뿐,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현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는 항상 불완전해 보이니까. 이 현재라는 시간은 여기 있는 내 수양딸을 자기의 장난감 수집품 목록에 추가하려던 대공같은 자에게는 꽤 완벽해 보이겠지. 대공의 사치품 비용을 대느라 소작료를 내는 불쌍한 농부들에게는, 현재란 즐거운 지옥이지만." - P464

그는 앞으로 자신의 모습이 될 자기 모습을 되찾았지만 그런 ‘자신’은 결코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두려움의 의미를, 그 의미가 가장 격렬한 형태라고 규정될 때 그 두려움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다(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에 따르면 동화에서 주인공 남자가 두려움과 떨림을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아동에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옮긴이). 그것은 둘 중 하나가 죽거나 둘 다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불안의 시작이었다. 그 불안은 양심의 시작이고, 양심은 영혼의 아버지이지만 순진함과 공존할 수는 없다. - 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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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도 각종 걱정들이 온갖 형태와 높이의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는다. 이 벽을 무너뜨릴 방법을 나는 여전히 모른다. 다만 마음껏 마셔도 계속해서 다음에 마실 술을 찾아내는 마스터처럼, 있는 ‘힘껏 좋아해도 계속해서 그 마음을 받아줄 세계가 있다는 걸 알려준 모티처럼,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결심할 뿐이다.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면 돌파하진 못해도 발걸음을 되돌리진 말자. 다만 방향을 살짝 바꾸어 벽을 옆으로 끼고서라도 계속해서 걸어보자! 그렇게 걷다가 돌이켜보면, 막다른 길인 줄로만 알았던 지점은 그저 모퉁이에 불과할 것이라고 믿어보자. 그렇게 나를 가로막는 사소한 걱정을 그저 모퉁이 삼아버리자. 나에겐 이미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퉁이, 모티가 있으니까.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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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여주는 방향을 한 잔 한 잔 따라가다 보니 나 역시 나만의 길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실줄 아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도 덩달아 깊어졌다. 지금은 나 역시 확신한다.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나와 술의 가능성을 동시에 얕보는 일이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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