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신문사의 문서 보관소에서 [코리에 레 데이 피콜리] 옛날 발행본 모음집을 훔치고 싶어.
조는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산속에 있는 우리 집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처음으로 본 인쇄물이자 어린 시절 내내 나와 함께했던 그 주간지 모음집을 뒤적인다는 게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 옛날 페이지들 속에 들러붙어 있는 내 최초의 생각들, 최초의 상상들, 최초의 느낌들을 되찾을 수 있지. 난 알아. 적당한 분위기에서 어떤 특정한 그림, 특정한 색깔들을 다시 보면서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 거야. 내 기억의 어두운 창고 속에 파문힌 수백, 수천 가지 기억 들이 다시 되살아날 거야. 우리의 머리는 기억하기 좋은 상황에 놓이기만 하면 모든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지. 가장 오래된 내 생각들을 되찾음으로써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P160

조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조는 복지 세대를 대변한다. 그들에게 자동차는 춤추는 것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다리를 대신하도록 창조된 장치다. 그들은 모터가 달린 켄타우로스, 말하자면 머리에서 허리까지는 인간이고, 허리 아래는 자동차인 존재로 상징될 수 있는 복지 세대다. 아니, 그것은 불타는 무덤 밖으로 허리 위쪽을 내밀고 있는 파리나타 델리 우베르티로 묘사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 할 것이다. - P167

"어리석은 소리! 암소나 젖소나 똑같은 거야."
"아니에요. 조반니노. 암소와 젖소 사이에는 위기와 비상사태만큼 심오한 차이가 있어요." 마르게리타의 말은 언제나 옳다. - P183

"‘소비 사회’가 뭐예요?
조가 나에게 물었다.
"복지 사회의 새로운 생활 방식이지."
나는 대답했다.
"예전에 사람들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저축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려고 했지. 그리고 요즈음 사람들은 덜 일하면서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비하고 싶어 하지."
"옳은 원칙 같군요."
"그래. 하지만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의 노예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그렇지." - P192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내부에 하나의 온전한 세계와 수입은 욕망이나 희망을 갖고 있고, 영화관보다 훨씬 더 놀랍고 재미있는 영화들을 수없이 ‘상영할 수 있지. 모든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너니까."
조는 정말로 불쌍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두 눈을 뜨고 어리석은 꿈을 꾸는 거군요. "
"아니야. 그건 현실에 단단하게 기반을 두고 있는 유기적인 이야기들을 세우는 거야. 모든 인간은 자기 내부에 특정한 경향과 열망, 확신, 욕망, 감정, 분노, 야망을 갖고 있지. 그 모든 것은 네가 너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의 토대가 되어야 해. 물론 여러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를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구성해야 하고, 모든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정하고 해결해야 해. 네 머릿속에 그런 집을 세울 경우, 홀로 너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네게 즐거운 일이 될 거야."
"생각과 시간만 낭비하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기 때문에 절대 자기 가능성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아. 그렇다면 그의 ‘환상‘은 실용적인 효과에도 유용하지. 모든 정상적인 인간의 두뇌 속에는 이성적인 나이가 되면서부터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 라는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해. 그리고 그 영화는 주인공이 연루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따라 계속해서 수정되고 상영되고 투영되지. 하지만 주요 윤곽은 언제나 똑같은 것으로 남아 있어. 그 상상의 영화는 언제나 두 명의 관객, 말하자면 너와 너의 무의식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그리고 무의식은 절대 그 영화를 잊지 않아. 네가 네 영화의 주인공으로 가고 있는 길을 현실의 삶에서 실현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네가 조그마한 이탈이나 전환을 하도록 부추겨서 그 길에 도달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지." - P195

"나는 지금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옷을 입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있으니까. 타인이 좋아하는 대로 옷을 입는 사람들이 비정상이지. 나는 나 자신으로만 이루어진 회사의 창립자이며 책임자이고 절대적인 주인이기 때문에, 또 내 일 은 다른 사람들과의 어떤 접촉도 없이 완전히 밀폐된 내 방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광고에서 가르치는 대로 옷을 입고, 면도를 하고, 포마드를 바르고, 향수를 뿌려서 내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전혀 없어." - P204

(만약 이야기하는 위안마저 없다면, 침묵 속에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여인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 P206

"‘네 자동차가 무엇인지 말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맞힐게.’ 이게 바로 요즈음 사람을 평가하는 원칙이라는 걸 몰라요?" - P211

요즈음에는 걸어서 여행하는 건 단지 억만장자나 할 수 있는 사치인데, 그날 밤 나는 젊다고, 그러니까 아주 부자라고 느꼈다.
역에서 나온 나는 활기찬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고, 시끄럽고 악취 나는 자동차들이 가득한 국도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 지방 도로로 접어들었다.
전혀 웃을 것 없다. 바람이나 소리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여행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여러분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제공한 유일하게 올바른 수단을 이용해 인간이 인간의 속도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즐거움인지. - P216

5월의 황홀한 밤에 잘 아는 시골길을 따라 30킬로미터를 두 발로 걸어가는 것. 그건 바로 자유 시간을 활용하는 환상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태양이 떠오르고 색깔들이 다시 태어나는 경이로운 장관을 일 초도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인간을 엄청나게 많은 기계들의 노예로 만든 멍청이 같은 생활의 현기증 나는 리듬과 소음은 인간이 자기 발자국 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박탈했다. 몇몇 조용한 집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오래된 벽과 작은 마당, 골목길 안에 숨어 있던 메아리를 일깨울 때 발자국 소리는 매혹적인 효과와 함께 비트 음악보다 훨씬 멋진 음악처럼 들렸다.
타박..타박...타박...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내 신발 밑창이 밤의 신선함으로 단단해진 아스팔트에 부딪혀 얼마나 멋진 소리를 내는가! 발자국의 규칙적인 리듬은 내 기억의 깊은 심연 속에서 경쾌한 군대 행진을 떠오르게 했다. - P217

그야말로 진부한 진리를 말할 때는 상대방을 믿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 - P220

환상적인 밤이었고, 나는 열광적으로 새벽을 맞이하러 갔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 자신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밤의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과 단둘이 걸어가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뚜렷하게 들여다보이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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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만약 그 흔들기가 춤이라면 너는 다른 모든 아가씨들보다 잘 추는구나."
"그 말을 들으니 기뻐요"
조는 흡족한 듯 말했다.
"이제 아저씨는 말하겠지요. 이런 춤은 정신병원에나 어울리는 거라고"
"아니야. 음악 소리에 몸을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가 정신병원에 어울리는 것이겠지. 하지만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은 그걸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음악 소리에 몸을 흔드는 방식은 중요하지 않아." - P130

"아저씨께 여기 오시라고 부탁한 것은, 요즈음 젊은이들은 고삐 풀린 미치광이들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였어요."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미치광이들이었고, 요즈음 젊은이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미치광이들이지"
나는 대답했다.
"젊음이란 모든 인간 존재가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질병이야. 그 병에 걸려 있을 때에는 심각한 중병처럼 보이고, 심지어 치유할 수 없는 병처럼 보이기도 해. 다만 요즈음에는 좀 더 복잡해졌는데, 바로 정신 분석, 콤플렉스, 욕구 등의 발결 과 함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그 경이로운 질병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더 빨리 늙어 버리게 된다는 거야." - P131

하지만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어. 만약 내가 할 수만 있다면, 학교 교육을 의무적으로 시작하는 나이를 여섯 살에서 열 살로 늦추고 싶어. 어린이들을 대량 사육 장치 안에서 기르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어. 닭을 아주 좁은 우리 안에 가두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과학적 사료를 먹여 에너지와 지방질 을 소모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한 달 된 병아리가 1킬로그램 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놀라운 일이지. 하지만 그 우리에서는 닭이 나오는 게 아니라, 흐느적거리고 연약한 살덩이의 괴물이 나올 뿐이야. - P136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을 빼앗지 말아야 해. 오히려 가능 한 한 어린 시절을 더 늘려 주어야 해. 나무가 튼튼하고 건강 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좋은 뿌리를 가져야 하지. 어린 시절과 꿈과 동화들은 바로 우리 인생의 뿌리야. 마르게리타, 내가 온갖 고난을 놀랍도록 침착하게 극복하고 지금도 젊은이 같은 열정으로 일할 수 있는 건, 내 부모님이 내게 준 귀중한 자산 덕분이야. 바로 꿈과 동화들로 가득한, 길고도 깨끗한 어린 시 절이 그것이지. - P137

"난 과거가 없어요."
"길든 짧든 모든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어." 나는 반박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는 없어요." 조가 말했다.
"거의 모두가 똑같은 생활 방식, 똑같은 취향, 똑같은 오락, 똑같은 열망, 똑같은 경험을 갖고 있지요. 과거란 집단적 사실이 아니라 개인적 사실일 경우에만 가치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 P143

"조, 추리 소설이나 영화에 현혹되지 말아야 해. 액션물에는 멍청이들이나 나오지. 범죄 계보에서 첫 번째 자리는 사기꾼이 차지하고 있어. 그런 사람은 자기 얼굴을 드러내 보이면서 작업하고, 그의 유일한 무기는 지적 능력과 교활함, 상상력, 심리적 능력이야. 그 다음이 진정한 도둑인데, 바로 주거지, 가게, 사무실, 창고 등에서 단지 확실한 방법으로만 작업을 하지. 그 다음이 소매치기, 자동차 도둑, 그리고 자전거 도둑과 닭 도둑 순인데, 우주 비행선과 억만장자들의 시대에 자기 활동을 고집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감상주의자나 낭만 주의자로 간주되어야 할 거야. 그 다음이 가짜 골동품상이고 가치와 체면의 서열에서 맨 꼴찌는 바로 강도야."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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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게 아니야, 조."
내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사방에다 자신의 시체를 남겨 두지." - P111

"이해해요.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의 젊음이 싫은 거지요."
"아니야, 조. 내가 늙었다는 게 싫은 거야. 그건 미학적인 문제이기도 해. 젊은이들 사이에 늙은이가 끼여 있는 건 마치 장미 꽃다발 속에 홍당무가 들어 있는 것과 같아."
"거짓말이에요! 댄싱 클럽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와요"
"그래, 조. 하지만 그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늙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거야. 너무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방향으로 정도를 벗어나고 있어. 마치 자기가 완전히 늙어 빠진 것처럼 낙심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세월이 전혀 흐르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거지. 그 결과 앞의 경우에는 괴로워하고, 뒤의 경우에는 웃게 만들지" - P125

"그런데 말이오, 사랑에 대해서 어떤 충고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아이의 감성적 문제들에 관심을 보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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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이든 비밀이 있어야 하지. 나조차 그게 뭔지 모를 수도 있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 그림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발견할 수도 있단다."
그러고 나서 아저씨는 덧붙였습니다.
"나는 수집가일 뿐이야. 난 순간을 수집한단다. "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난 아저씨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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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감옥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밀라노와 묶어 놓은 뿌리는 잘려 나가지 않았다. 대가를 치르고 다시 자유를 얻은 나는 세 번째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시골로 쫓아 보낼 때까지 계속했다.
지금은 밀라노의 그 작은 집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다락방은 아직 내 것이며, 나는 그것을 절대 잃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마음의 배는 아직도 거대한 ‘안개들의 항구’에 정박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파르마의 번호판을 달고 다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밀라노의 번호판을 달고 있는 것이다. - P106

어쨌든 관료제는 세상의 모든 나라를 병들게 하는 악이며, 밀라노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도시로 남아 있다. 그곳은 잊을 수 없는 도시다. 고유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이나 유적들의 오만함으로 사람들을 짓누르지 않는 도시다. 밀라노의 가장 중요한 유적은 바로 밀라노 사람이기 때문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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