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는 평범한 삶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차갑고 확실하고 흔들림 없는 내부자의 수작이며, 우리와는 영원히 차단되어 있다.
혼잡한 일상을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려고 애쓰는 우리는 결함 있는 자, 무고한 자이다.
음모꾼들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대담성과 논리를 지니고 있다.
모든 음모는 범죄적인 행동에서 통일성을 본 사람들이 늘어놓는 긴장된 이야기이다.
_돈 드릴로, <리브라> - P142

화이트는 자신이 수사에 실패했을 때 어떤 일을 겪을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전에 이 사건을 맡았던 요원들이 외딴 변경지대로 좌천되거나 아예 수사국에서 쫓겨난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후버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할 경우 (…) 변명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화이트는 범인을 잡으려고 애쓰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벌써 여러 명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후버의 방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 부터 그는 표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P157

화이트는 렌이 수사팀에 반드시 필요한 시각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버거를 포함해서 전에 이 사건을 맡았던 요원들 중 일부는 오세이지족에 대해 흔히 퍼져 있는 편견을 드러냈다. 공동 보고서에서 버거와 또 다른 요원은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인디언들은 대체로 게으르고, 한심하고, 비겁하고, 방탕하다." 버거의 동료는 또한 "방탕하고 완고한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입을 열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지급되는 돈을 깎는 것뿐이다. (…) 필요하다면 그들을 감옥에 가둘 수도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처럼 인디언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 때문에 오세이지족은 연방요원들을 더욱 불신하게 되었으며,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후버의 "인디언 전사"라고 자처하는 렌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까다로운 사건들을 몇 번이나 유능하게 처리한 경험이 있었다.
화이트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후버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수사국 본부는 그들 중 오클라호마 현장사무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암호로 긴급명령을 하달했다. "신분을 감추고 즉시 톰 화이트 요원에게 가라." 팀 구성을 마친 뒤, 화이트는 총을 챙겨 들고 오세이지 카운티로 향했다. 이번에는 그가 안갯속 여행자였다. - P165

여러 범죄현장의 증거들은 보존된 것이 사실상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애나의 경우 장의사가 몰래 보관해둔 두개골이 있었다. 멜론 크기만 한 두개골의 무게가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가벼웠다. 햇볕에 하얗게 바랜 조개껍질을 들고 있을 때처럼 두개골에서 바람 소리도 났다. 화이트는 두개골 뒤쪽에서 총알이 들어간 구멍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예전의 수사관들과 마찬가지로, 32구경이나 38구경 같은 작은 구경의 총이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나의 두개골 앞쪽에 총알의 사출구가 없다는 기묘한 사실 또한 확인했다. 다시 말해서, 총알이 그녀의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는 뜻이었다. 검시 중에는 총알의 존재를 놓치려야 놓칠 수가 없었을 터이니,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총알을 훔쳐갔음이 분명했다. 그는 공범일 수도 있고 살인범 본인일 수도 있었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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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오세이지족은 아이의 탄생을 와콘타가 주는 최고의 축복으로 받아들인다. 와콘타는 해와 달과 땅과 별들에 널리 퍼져 있는 신비로운 생기이며, 오세이지족은 수백 년 전부터 이 기운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하면 지상의 혼돈과 혼란 속에 질서가 생겨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와콘타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힘, 눈에 보이지 않고, 냉담하고, 베풀고, 경외의 대상이고, 대답하지 않는 힘이었다. - P33

1870년에 오세이지족은 무덤이 약탈당하고 집에서 쫓겨나는 일을 견디다 못해, 캔자스 땅을 에이커당 1.25달러 를 받고 이주민들에게 팔기로 했다. 그런데도 성급한 이주민들은 오세이지족 여러 명을 죽여 시체를 훼손하고 머리가죽을 벗겼다.
인디언실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야만인인가?" - P59

흔들리는 수레를 타고 몰리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달렸다. 아직은 이곳의 그 무엇도 다듬어져 있지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마부와 몰리는 수레를 멈추고 야영준비를 했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진 뒤, 하늘이 피처럼 붉게 변했다가 검은색이 되었다. 짙은 어둠을 조금이나마 희석해주는 것은 달과 별뿐이었다. 오세이지족은 달과 별에서 많은 일족들이 내려왔다고 믿었다. 몰리는 안갯속의 여행자가 되었다. 밤의 세력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소리만 들릴 뿐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코요테들이 횡설수설하는 소리,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 그리고 악령이 깃들어 있다고들 하는 올빼미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 - P67

"따라서 나는 기차가 들어오자마자 페리를 떠났다." 46번 탐정은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셜록 홈스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진짜 탐정들이 지루하게 거짓 단서를 쫓아다니다가 막다른 길과 부닥치는 이야기. - P89

오세이지족의 부유함에 대해 경계심을 표현하는 백인들이 점점 늘어났다. 언론도 그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기자들은 오세이지족이 그랜드피아노를 잔디밭에 버린다느니, 타이어가 터졌다는 이유로 차를 새로 산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신문에 실었다. 사실을 터무니없이 윤색할 때도 많았다. 잡지 <여행>은 이렇게 썼다.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은 오늘날 헤픈 씀씀이로 왕좌에 올랐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는 선천적으로 쓸모없는 껍데기만 좋아할 뿐, 실제로는 검소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주간지인 <인디펜던트>에 날아온 독자 편지에도 비슷한 감정이 표현되어 있었다. 이 편지의 필자는 오세이지족이 "우리 백인들이 개발해놓은 석유의 땅에 불행히도 정부가 그들을 정착시키는 바람에", 부유해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이라고 표현했다. 존 조지프 매슈스는 기자들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 특유의 말쑥함과 지혜를 지닌 신석기시대 인간들에게 재산이 미치는 기괴한 영향을 즐거이 묘사했다"고 회상하면서 씁쓸해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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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배정 모자는 제 안에서 슬리데린의 힘을 봤고, 그리고……"
"너를 그리핀도르에 넣었지." 덤블도어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 말 잘 듣거라, 해리. 공교롭게도 너는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학생들을 직접 선발할 때 중요하게 여긴 수많은 자질을 지니고 있어. 그자가 가진 굉장히 희귀한 재능인 뱀의 말을 하는 능력이라든지……지략, 결단력…… 규칙을 무시하는 태도도 그렇고." 또다시 콧수염을 살짝 들썩거리며 그가 덧붙였다. "그런데도 기숙사 배정 모자는 너를 그리핀도르에 넣었다. 이유는 너도 알고 있어. 생각해 보려무나."
"모자가 저를 그리핀도르에 넣은 건 단지……" 해리가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슬리데린에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인데요……"
"바로 그거야." 덤블도어가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너와 톰 리들의 큰 차이점이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건 말이다, 해리,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선택이란다." -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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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옷은 보온이라는 기능보다 더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옷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을 바꾼다.


남자는 세상이 마치 그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여자 올랜도는 비스듬히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본다. 그들이 만약 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의 태도도 같았을는지 모른다. - P166

양성 간의 차이는 다행히도 매우 깊은 곳에 있다. 옷이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의 상징에 불과하다. 올랜도로 하여금 여자 옷을 선택하게 하고, 여자임을 자처하게 한 것은 그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이다. 그리고 여기서 올랜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어도 분명히 말하지 않는데 비해 보통 이상으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그녀는 태어나길 솔직한 사람이니까. 여기서 다시금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두 성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섞여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양성은 유동적이며, 남자답거나 여자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옷뿐이고, 그 속의 성은 겉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흔히 있다. 이로써 생기는 분규와 혼란은 누구나 경험한 바 있다. - P167

사교계란 노련한 주부들이 크리스마스 때 따끈하게 내어놓는 음료의 일종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데, 그 맛은 10여 가지의 서로 다른 성분들을 제대로 섞어 흔들어서 얻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성분 그 자체는 맛이 없다. 0 경이나, A 경이나, C 경 이나 혹은 M 씨를 따로 떼놓고 보면 별 매력이 없다. 이들을 모두 한데 넣고 흔들어 섞으면, 더없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맛과 더없이 매혹적인 향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 도취, 이 매혹을 분석한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다. 따라서 사교계는 최고의 것인 동시에 최저의 것이다. 사교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품이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 이런 괴물은 시인이나 소설가만이 다룰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대단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이런 것으로 가득 차,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오른다. - P171

만약 무장하지 않은 채로 사자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면, 노 젓는 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 면, 성바오로 성당 꼭대기에서 한 발로 서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면, 시인과 단 둘이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은 더욱 무모한 짓이다. 시인은 대서양과 사자를 합쳐놓은 것이다. 대서양이 우리를 삼켜버린다면 사자는 우리를 물어뜯는다. 사자의 이빨에서 빠져나온다고 해도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환상을 깨뜨리는 사람은 야수이고 홍수이다. 환상은 영혼에 대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와 같다. 그 부드러운 공기를 걷어내면 식물은 죽고 빛은 사라진다. 우리가 걷고 있는 지구는 타버린 재가 된다. 우리가 걷는 것은 이회토 진흙이고, 뜨거운 자갈에 발바닥이 탄다. 진실은 우리를 파멸시킨다. 인생은 꿈이다. 깨어난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우리에게서 꿈을 빼앗아가는 사람은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사람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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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있었고, 골짜기가 있었고, 냇물이 있었다. 그녀는 산을 오르고, 골짜기를 배회했고, 냇가 언덕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언덕을 성벽이나, 비둘기 가슴이나, 암소 옆구리에 비유했다. 그녀는 꽃을 에나멜에 비유했고, 잔디는 닳아버린 터키 양탄자에 비유했다. 나무는 시들어버린 추한 노파였으며, 양은 회색의 둥근 돌이었다. - P127

그녀는 자연이 아름다운가, 아니면 잔인한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관해 자문해보았다. 아름다움이란 사물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 내면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그녀는 실재의 본질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이어 그 생각은 진리에, 그다음으로는 ‘사랑‘, ‘우정‘, ‘시‘에 이르렀다(고향에 있는 높은 언덕에서 그랬던 것처럼). - P129

도시들은 그보다도 못한 의견의 차이 때문에 약탈당하고, 그리고 무수한 순교자들이 여기서 다툰 논쟁거리의 어느 하나에서 한 치의 양보를 하느니 차라리 화형을 감내했다. 인간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하고 싶은 것만큼 큰 욕망은 없다.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깎아내리는 느낌만큼 우리의 행복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우리를 분노로 채우는 것은 없다. - P163

"맙소사‘, 마침내 그녀는 놀라움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차양 아래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생각했다."이건 확실히 유쾌하고 나태한 생활 방식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리를 걷어차면서 생각했다. "발꿈치를 휘감는 이 치마는 성가신 물건이다. 그러나 옷감은(꽃무늬가 있는 튼튼한 비단이었는데) 예쁘기 그지없다. 내 피부가 지금처럼 돋보인 적은 결코 없었다(여기서 그녀는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내가 난간을 뛰어넘어 이런 옷으로 헤엄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지! 따라서 나는 수부들의 보호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싫다는 건가? 정말로 그런가?" 지금까지 술술 풀리던 논의의 실타래가 처음으로 엉키자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 P137

"저항하고는 양보하고, 양보하고는 저항하는 것만큼 멋진 것은 없다. 확실히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정신을 황홀하게 만든다. 따라서 내가 단순히 수부에게 구조되는 기쁨 하나 때문에 난간 너머 몸을 던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 P138

"여자의 발목을 보았다고 해서 돛대 꼭대기에서 떨어지거나, 여자의 칭찬이 듣고 싶어 가이 포크스처럼 차려 입고 길거리를 행진하거나, 조롱받기가 싫어서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거나, 약하디 약한 계집아이한테 절절매는 주제에, 밖에서는 마치 창조주 같은 얼굴을 하고 돌아다닌다–맙소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저들은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 P140

"내가 여자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녀는 소리치고, 하마터면 자기 성에 대해 자만하는, 극도로 바보 같은 짓을 할 뻔했는데–남녀 간에 이보다 더 한탄스러운 것은 없다–그녀는 이상한 단어 하나 때문에 주춤했다. 그 단어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빠져나와 앞 문장 끝에 들어왔다. ‘사랑‘. "사랑"이라고 올랜도가 말했다. 그러자마자–사랑은 그처럼 성급하다–사랑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는데–사랑은 그처럼 자존심이 강하다. 다른 관념들은 추상적인 상태로 불만 없이 남아 있는데, 사랑은 살아 있는 인간이 되어 케이프와 페티코트, 그리고 스타킹과 가죽조끼를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랜도의 모든 애인들이 여자였고, 인간의 몸은 관습에 익숙해지는 것이 괘씸할 정도로 느리기 때문에, 비록 그녀가 여자이긴 했으나, 올랜도가 사랑한 것은 여전히 여자였다. 동성이라는 의식이 오히려 그녀가 남자였을 때 가졌던 감정을 한층 더 활기차고 깊게 만들었다. 남자였을 때는 알지 못했던 무수한 암시나 수수께끼가 지금은 분명해졌다. 남녀를 구분하고, 무수한 불순물들을 어둠 속에 고이게 만들던 애매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시인이 하는 말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올랜도가 여자에 대해서 느끼는 이 애정은 거짓 속에서 잃었던 것을 아름다움 속에서 얻은 것이다. - P142

다행히도 오래 떠나 있던 고국 땅의 모습을 보고, 펄쩍 뛰고 감탄했노라는 것이 납득이 되었다. 아니었으면 그녀는 지금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노하고 갈등하는 감정들을 바터로스 선장에게 설명하기가 궁했을 것이다. 지금 그의 팔에 안겨 떨고 있는 자신이, 한때 공작이었고, 대사였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겹으로 된 비단으로 백합처럼 싸여 있는 자기가, 한때 사람의 목을 쳤고, 백합이 피어나고 벌들이 윙윙거리는 여름 날 저녁, 와핑 올드 스테어스의 앞바다에서 해적선 창고의 보물 자루들 사이에서, 막된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선장의 단호한 손이 영국 섬의 절벽들을 가리켰을 때, 왜 그처럼 크게 놀랐는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었다. - P144

그 많은 여행과 모험과 깊은 명상과 이런저런 모색에도 불구하고 올랜도는 여전히 자기 형성의 도상에 있을 따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아마도 그칠 날이 없을 것이었다. 높다란 사고의 성벽, 돌처럼 단단해 보이던 습관들이 다른 정신이 와 닿자마자 그림자처럼 무너져내리고, 뒤에는 벌거벗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만이 남았다. - P156

"우리 마음은 주마등인데다, 비슷하지도 않은 것들의 잡동사니인가! 한순간 우리는 자신의 출생과 신분을 한탄하고, 고행자의 기쁨을 그리워하는가 하면, 다음 순간엔 오래된 정원의 산책길 냄새에 겨워하고, 지빠귀 소리를 듣고는 운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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