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있었고, 골짜기가 있었고, 냇물이 있었다. 그녀는 산을 오르고, 골짜기를 배회했고, 냇가 언덕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언덕을 성벽이나, 비둘기 가슴이나, 암소 옆구리에 비유했다. 그녀는 꽃을 에나멜에 비유했고, 잔디는 닳아버린 터키 양탄자에 비유했다. 나무는 시들어버린 추한 노파였으며, 양은 회색의 둥근 돌이었다. - P127
그녀는 자연이 아름다운가, 아니면 잔인한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관해 자문해보았다. 아름다움이란 사물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 내면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그녀는 실재의 본질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이어 그 생각은 진리에, 그다음으로는 ‘사랑‘, ‘우정‘, ‘시‘에 이르렀다(고향에 있는 높은 언덕에서 그랬던 것처럼). - P129
도시들은 그보다도 못한 의견의 차이 때문에 약탈당하고, 그리고 무수한 순교자들이 여기서 다툰 논쟁거리의 어느 하나에서 한 치의 양보를 하느니 차라리 화형을 감내했다. 인간의 가슴속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하고 싶은 것만큼 큰 욕망은 없다. 자기가 높이 평가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깎아내리는 느낌만큼 우리의 행복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우리를 분노로 채우는 것은 없다. - P163
"맙소사‘, 마침내 그녀는 놀라움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차양 아래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생각했다."이건 확실히 유쾌하고 나태한 생활 방식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리를 걷어차면서 생각했다. "발꿈치를 휘감는 이 치마는 성가신 물건이다. 그러나 옷감은(꽃무늬가 있는 튼튼한 비단이었는데) 예쁘기 그지없다. 내 피부가 지금처럼 돋보인 적은 결코 없었다(여기서 그녀는 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내가 난간을 뛰어넘어 이런 옷으로 헤엄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지! 따라서 나는 수부들의 보호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싫다는 건가? 정말로 그런가?" 지금까지 술술 풀리던 논의의 실타래가 처음으로 엉키자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 P137
"저항하고는 양보하고, 양보하고는 저항하는 것만큼 멋진 것은 없다. 확실히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정신을 황홀하게 만든다. 따라서 내가 단순히 수부에게 구조되는 기쁨 하나 때문에 난간 너머 몸을 던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 P138
"여자의 발목을 보았다고 해서 돛대 꼭대기에서 떨어지거나, 여자의 칭찬이 듣고 싶어 가이 포크스처럼 차려 입고 길거리를 행진하거나, 조롱받기가 싫어서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거나, 약하디 약한 계집아이한테 절절매는 주제에, 밖에서는 마치 창조주 같은 얼굴을 하고 돌아다닌다–맙소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저들은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 P140
"내가 여자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녀는 소리치고, 하마터면 자기 성에 대해 자만하는, 극도로 바보 같은 짓을 할 뻔했는데–남녀 간에 이보다 더 한탄스러운 것은 없다–그녀는 이상한 단어 하나 때문에 주춤했다. 그 단어는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빠져나와 앞 문장 끝에 들어왔다. ‘사랑‘. "사랑"이라고 올랜도가 말했다. 그러자마자–사랑은 그처럼 성급하다–사랑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는데–사랑은 그처럼 자존심이 강하다. 다른 관념들은 추상적인 상태로 불만 없이 남아 있는데, 사랑은 살아 있는 인간이 되어 케이프와 페티코트, 그리고 스타킹과 가죽조끼를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랜도의 모든 애인들이 여자였고, 인간의 몸은 관습에 익숙해지는 것이 괘씸할 정도로 느리기 때문에, 비록 그녀가 여자이긴 했으나, 올랜도가 사랑한 것은 여전히 여자였다. 동성이라는 의식이 오히려 그녀가 남자였을 때 가졌던 감정을 한층 더 활기차고 깊게 만들었다. 남자였을 때는 알지 못했던 무수한 암시나 수수께끼가 지금은 분명해졌다. 남녀를 구분하고, 무수한 불순물들을 어둠 속에 고이게 만들던 애매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시인이 하는 말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올랜도가 여자에 대해서 느끼는 이 애정은 거짓 속에서 잃었던 것을 아름다움 속에서 얻은 것이다. - P142
다행히도 오래 떠나 있던 고국 땅의 모습을 보고, 펄쩍 뛰고 감탄했노라는 것이 납득이 되었다. 아니었으면 그녀는 지금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노하고 갈등하는 감정들을 바터로스 선장에게 설명하기가 궁했을 것이다. 지금 그의 팔에 안겨 떨고 있는 자신이, 한때 공작이었고, 대사였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겹으로 된 비단으로 백합처럼 싸여 있는 자기가, 한때 사람의 목을 쳤고, 백합이 피어나고 벌들이 윙윙거리는 여름 날 저녁, 와핑 올드 스테어스의 앞바다에서 해적선 창고의 보물 자루들 사이에서, 막된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선장의 단호한 손이 영국 섬의 절벽들을 가리켰을 때, 왜 그처럼 크게 놀랐는지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었다. - P144
그 많은 여행과 모험과 깊은 명상과 이런저런 모색에도 불구하고 올랜도는 여전히 자기 형성의 도상에 있을 따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아마도 그칠 날이 없을 것이었다. 높다란 사고의 성벽, 돌처럼 단단해 보이던 습관들이 다른 정신이 와 닿자마자 그림자처럼 무너져내리고, 뒤에는 벌거벗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만이 남았다. - P156
"우리 마음은 주마등인데다, 비슷하지도 않은 것들의 잡동사니인가! 한순간 우리는 자신의 출생과 신분을 한탄하고, 고행자의 기쁨을 그리워하는가 하면, 다음 순간엔 오래된 정원의 산책길 냄새에 겨워하고, 지빠귀 소리를 듣고는 운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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