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옷은 보온이라는 기능보다 더 중요한 기능을 갖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옷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을 바꾼다. • • 남자는 세상이 마치 그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지고, 또한 그의 기호에 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여자 올랜도는 비스듬히 미묘하게, 심지어는 의심이라도 하듯 세상을 본다. 그들이 만약 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그들의 태도도 같았을는지 모른다. - P166
양성 간의 차이는 다행히도 매우 깊은 곳에 있다. 옷이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의 상징에 불과하다. 올랜도로 하여금 여자 옷을 선택하게 하고, 여자임을 자처하게 한 것은 그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이다. 그리고 여기서 올랜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어도 분명히 말하지 않는데 비해 보통 이상으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그녀는 태어나길 솔직한 사람이니까. 여기서 다시금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두 성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섞여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양성은 유동적이며, 남자답거나 여자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옷뿐이고, 그 속의 성은 겉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흔히 있다. 이로써 생기는 분규와 혼란은 누구나 경험한 바 있다. - P167
사교계란 노련한 주부들이 크리스마스 때 따끈하게 내어놓는 음료의 일종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데, 그 맛은 10여 가지의 서로 다른 성분들을 제대로 섞어 흔들어서 얻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성분 그 자체는 맛이 없다. 0 경이나, A 경이나, C 경 이나 혹은 M 씨를 따로 떼놓고 보면 별 매력이 없다. 이들을 모두 한데 넣고 흔들어 섞으면, 더없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맛과 더없이 매혹적인 향기를 풍긴다. 그러나 이 도취, 이 매혹을 분석한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다. 따라서 사교계는 최고의 것인 동시에 최저의 것이다. 사교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품이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 이런 괴물은 시인이나 소설가만이 다룰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은 대단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이런 것으로 가득 차,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오른다. - P171
만약 무장하지 않은 채로 사자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면, 노 젓는 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 면, 성바오로 성당 꼭대기에서 한 발로 서는 것이 무모한 짓이라면, 시인과 단 둘이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은 더욱 무모한 짓이다. 시인은 대서양과 사자를 합쳐놓은 것이다. 대서양이 우리를 삼켜버린다면 사자는 우리를 물어뜯는다. 사자의 이빨에서 빠져나온다고 해도 바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환상을 깨뜨리는 사람은 야수이고 홍수이다. 환상은 영혼에 대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와 같다. 그 부드러운 공기를 걷어내면 식물은 죽고 빛은 사라진다. 우리가 걷고 있는 지구는 타버린 재가 된다. 우리가 걷는 것은 이회토 진흙이고, 뜨거운 자갈에 발바닥이 탄다. 진실은 우리를 파멸시킨다. 인생은 꿈이다. 깨어난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우리에게서 꿈을 빼앗아가는 사람은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사람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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