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 생선의 사료가 뭐겠는가? 생선이다. 위에서 말한 혼획된 값싼 생선을 갈아서 생사료를 만든다.


양식도 결국 야생, 즉 바다생물에 의존하고 있다. 양식이 지속가능한 미래의 모델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 P135

육식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적지만, 이런 작물의 대량 재배와 수출/수입은 확실히 환경적인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앞서 팜유 이야기도 꺼낸 것이고 커피도 마찬가지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식생활 방식은 비건과 로커보어(locavore, 지역먹거리주의자)를 섞은 형태일 것이다. - P137

인종차별, 계급제도, 노예제도, 성차별 모두 문화이고 전통이었다. 일부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전통과 문화는 고정되고 정체된 개념이 아니다. 지금의 전통이 당시에는 혁신이기도 했다. 나날이 변화하는 인간사에서 전통과 문화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전통이나 문화라고 해서 마냥 변화를 거부할 순 없고,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도 없다. 가치관이나 윤리의 변화에 따라 변모된 전통과 문화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인류사 자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전통과 문화의 역동적인 각축장이다. - P139

성차별, 인종차별, 종차별 모두 피지배 대상은 달라도, 억압을 작동시키는 원리가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그래서 최초의 인종차별철폐주의자 중 많은 이들이 동물보호주의자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페미니즘이 이론이라면 채식주의는 실천" 이다. 단, 이 모든 담론이 남성 비건이 적은 현상을 합리화해줘서는 안 된다. 남성들은 분발해야 한다. - P144

"중요한 질문은 동물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는가, 말을 하는가, 가 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낄 줄 아는가, 이다. 만약 어떤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 - P145

동물과 식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물의 사전적인 의미부터, 불쾌한 자극에서 야기되는 고통을 피해 장소 이동이 가능한 생물체라는 뜻을 지닌다. 움직이는 동물과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같은 고통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이는 진화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 P146

문제는 이렇게 식물의 고통을 강조하는 사람 중에서 실제로 ‘식물권리‘를 염려하는 식물보호주의자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식물의 고통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돼지의 목을 따는 것과 양파를 써는 것에 똑같이 반응하는 인간은 없다. 방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사과와 토끼를 주면, 사과를 먹고 토끼와 놀지 그 반대로 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우며 상식적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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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베스트셀러인 『의사들의 120세 건강 비결은 따로 있다(How Not to Die)』를 쓴 마이클 그레거 박사도 최신 영양학 분야를 선도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최신 영양학 연구 동향을 모아놓은 사이트 ‘영양학팩트(NutritionFacts.org)‘를 운영하는 그는,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동명의 유명한 구글 강연에서 현대인이 죽는 열다섯 가지 원인을 꼽았다.
주로 심장질환, 암, 당뇨 등이었는데, 이중 열네 가지 병(나머지 하나는 교통사고)은 채식을 통해 회복하거나 개선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 P113

단백질은 채소, 곡류 등을 통해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다. 특히콩 종류는 단백질 함유량에서 육류에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대두의 경우는 육류보다 두 배는 더 많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게다가 육류가 지방이나 포화지방산을 포함하기 때문에 혈관 염증을 일으키거나 혈당을 높이는 등 다른 문제점들을 함께 가져오는 데 비해 식물성 단백질은 훨씬 안정성이 높다. - P117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도 필수아미노산 및 비필수 아미노산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
통곡물, 콩과(科) 식물, 채소, 씨앗 및 견과류 등은 필수아미노산 및 비필수아미노산을 모두가지고 있다. 식사를 할 때 이 음식들을 (단백질을 상호보완하기 위하여) 혼합할 필요도 없다.
_[어느 채식의사의 고백], 121쪽 - P118

다른 동물들만 봐도 안다. 고릴라, 코끼리, 코뿔소, 하마, 소, 말의 공통점이 뭘까? 이미 내 말의 뜻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힘이 센 것과 육식은 아무 관계가 없다. - P119

새우를 잡다가 덩달아 혼획(混獲, bycatch) 당해 죽는 생물들이 하도 많아서, 새우 한 마리를 먹으면 최소 세 배에서 많게는 열다섯 배 정도 되는 생물들을 함께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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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외적으로는 눈이 멀었고, 내적으로는 도취해 있었다. - P878

혼자라는 말의 동의어는 죽음이다.


그는 운명의 선상에서 무엇으로 만족해야 할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는 추론하고 저울질하고 계산한다.
표면은 음산하게 다시 식지만, 그 밑에서는 이글거리는 용암이 계속 흐른다.


게다가 그 일이 어찌 그리도 신속하게 닥쳤는지! 불운의 흉악한 신속성이다. 불운은 어찌나 무거운지, 그것이 느리다고 믿기 쉽다. 전혀 그렇지 않다. 눈은 차갑기 때문에 겨울의 마비된 속성을 가지고 있을 것 같고, 회기 때문에 수의의 부동성을가지고 있을 것 같아 보일 수도 있다. - P879

눈사태는 차갑지만 삼킨다. 눈사태가 그윈플레인을 휩싸 버렸다. 그는 넝마처럼 찢겨 나갔고, 나무처럼 뽑혔으며, 조약돌처럼 처박혔다. - P880

대양을 얻으려고 진주를 던져 버린 격이었다. - P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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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칼날에도 잘 드는 부분이 있듯이, 하나의 음성에도 특히 모욕적인 억양이 있다. - P852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까마득한 심연 위로 걸려 있는 부서지기 쉽고 가파른 모래언덕을 기어오른 경험이 있는 사람, 손과 손톱과 팔꿈치와 무릎과 발밑으로 받침점이 끊임없이 벗어나 도망치는 것을 느껴 본 사람, 그 반항적인 절벽 표면에서 미끄러지지 않을까 하는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전진하기는커녕 자꾸만 뒤로 밀리고, 위로 오르는 대신 더욱 깊숙이 빠져들고, 정상을 향한 몸부림이 거듭될수록 추락의 확신이 굳고,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동작을 할 때마다 스스로를 더욱 위험에 처박으면서, 심연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껴 본 사람, 그리고 밑에서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는심연 속으로 추락할 때 뼛속으로 침투하는 음산한 냉기를 느껴 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그윈플레인이 느끼던 것을 느낀 사람이다. - P853

그의 웃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경들이 저지른 범죄이며 그가 당한 고초입니다. 경들의 범죄를 이제 그가 경들의 면상을 노리고 던지며, 그로 인한 고초를 경들의 낯짝에 토하고 있습니다. 제가 웃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울고 있습니다. - P854

높은 곳에 있는 것은 기울고, 낮은 곳에 있는 것은 갈라집니다. - P856

그곳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되, 가루가 되면 영영 다시 일어설 수 없다.


그곳에서는 갈채였던 것이, 이곳에서는 저주였다. - P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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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들 중에는 주변에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행여나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지구와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미안한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나도 주위에 미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고통받는 동물들을 떠올린다. 때로는 노예해방 운동을 떠올리기도 한다. 비건도 하나의 해방 운동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현 시스템의 부당함을 알리는 일은, 당장은 남들의 죄의식을 자극하거나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말하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깟 부담이나 불편한 시선쯤은 감당할 수 있다. - P83

"동물 한마리라도 살릴 수 있다면 맘같아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죠. 저도 원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지만, 동물들을 살리는 데, 그리고 지구를 살리는 데 찬밥 더운밥 가릴 순 없잖아요?" - P97

이것이 진지한 비건의 일상이다.
절망은 길고 꾸준하고, 희망은 파편적이고 멀리서 명멸한다. 파졸리니가 묘사한 반딧불처럼 잔존한다.
진지한 비건의 심정은 되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것은 노예제 사회에 살고 있는 노예 반대론자들의 심정, 홀로코스트 시대를 살던 쉰들러 씨의 마음이다. ‘아, 저 돈이면 생명하나를 살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루하루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비건들은 과거보다 미래를 보고 산다. 그들은 마치 미래가 지금-여기 이미 도달한 것처럼 살며, 그러지 않고선 버티기도 힘들다. 그들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간다. - P100

영화 <레인메이커>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선을 넘으면, 선은 지워진다." - P105

가령, 빈곤 문제의 심각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바로 그 빈곤 때문에라도 비건을 해야 한다. 지금 전세계 곡식의 40퍼센트 이상(미국은 70퍼센트)이 누구에게 가고 있는 줄 아는가? 사람이 아니라 소와 돼지 등 가축에게 가고 있다. 이렇게 불평등하고 비효율적인 식량 생산 구조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이다. - P107

인간의 윤리를 동물의 행동생태에 기초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은 오히려 자연의 원리로 흔히 통용되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벗어난 ‘문명인‘으로서 높은 수준의 윤리, 상호배려와 인간성을 이뤘음을 자랑으로 삼아왔다. 동물 착취를 정당화할 때는 인간의 우월함과 특별함을 들먹이다가,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으로 행동하고 싶을 때는 "우리 역시 어쩔수 없는 동물일 뿐"이라며 책임을 내팽개치는 것은 편의주의적이고 비겁하며 앞뒤가 안 맞는 태도이다.
자연의 원리를 본뜨고 싶다면 좋은 것들을 선별해서 본받아야 할 것이다. 가령, 동물들은 먹을 만큼만 먹는다. 사자는 재미로 사냥하지 않고, 먹을 것을 창고에 쌓아두지도 않는다.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다른 동물을 공장 규모로 가두어두고 노예처럼 착취하지 않는다. 생태계 파괴를 일삼으면서 자연의 일부분만 임의로 본떠 악행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스스로의 모순에 갇힐 뿐이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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