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들 중에는 주변에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다.
행여나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지구와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미안한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나도 주위에 미안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고통받는 동물들을 떠올린다. 때로는 노예해방 운동을 떠올리기도 한다. 비건도 하나의 해방 운동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현 시스템의 부당함을 알리는 일은, 당장은 남들의 죄의식을 자극하거나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말하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깟 부담이나 불편한 시선쯤은 감당할 수 있다. - P83

"동물 한마리라도 살릴 수 있다면 맘같아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죠. 저도 원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지만, 동물들을 살리는 데, 그리고 지구를 살리는 데 찬밥 더운밥 가릴 순 없잖아요?" - P97

이것이 진지한 비건의 일상이다.
절망은 길고 꾸준하고, 희망은 파편적이고 멀리서 명멸한다. 파졸리니가 묘사한 반딧불처럼 잔존한다.
진지한 비건의 심정은 되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것은 노예제 사회에 살고 있는 노예 반대론자들의 심정, 홀로코스트 시대를 살던 쉰들러 씨의 마음이다. ‘아, 저 돈이면 생명하나를 살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루하루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비건들은 과거보다 미래를 보고 산다. 그들은 마치 미래가 지금-여기 이미 도달한 것처럼 살며, 그러지 않고선 버티기도 힘들다. 그들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간다. - P100

영화 <레인메이커>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선을 넘으면, 선은 지워진다." - P105

가령, 빈곤 문제의 심각성은 누구나 공감한다.
바로 그 빈곤 때문에라도 비건을 해야 한다. 지금 전세계 곡식의 40퍼센트 이상(미국은 70퍼센트)이 누구에게 가고 있는 줄 아는가? 사람이 아니라 소와 돼지 등 가축에게 가고 있다. 이렇게 불평등하고 비효율적인 식량 생산 구조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이다. - P107

인간의 윤리를 동물의 행동생태에 기초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은 오히려 자연의 원리로 흔히 통용되는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벗어난 ‘문명인‘으로서 높은 수준의 윤리, 상호배려와 인간성을 이뤘음을 자랑으로 삼아왔다. 동물 착취를 정당화할 때는 인간의 우월함과 특별함을 들먹이다가,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으로 행동하고 싶을 때는 "우리 역시 어쩔수 없는 동물일 뿐"이라며 책임을 내팽개치는 것은 편의주의적이고 비겁하며 앞뒤가 안 맞는 태도이다.
자연의 원리를 본뜨고 싶다면 좋은 것들을 선별해서 본받아야 할 것이다. 가령, 동물들은 먹을 만큼만 먹는다. 사자는 재미로 사냥하지 않고, 먹을 것을 창고에 쌓아두지도 않는다.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다른 동물을 공장 규모로 가두어두고 노예처럼 착취하지 않는다. 생태계 파괴를 일삼으면서 자연의 일부분만 임의로 본떠 악행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스스로의 모순에 갇힐 뿐이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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