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민낯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 아니다. 사회라는 공간에 나갈 때 우리 모두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 Erving Goffman이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 놀이를 한다. 가면을 쓰고 만나는 것이다. 그 가면 뒤의 민얼굴이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충실한가, 아닌가 여부다. 역할에 충실하다면 우리는 그의 민낯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무관심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서 만나는 시민들이 서로 지켜야 하는 예의다. 이런 점에서 사회 가운데서 상호작용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가면을 쓴 존재, 즉 위선자다. - P191

고통은 비교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겐 절대적인 것이다. 세계의 붕괴와 그 세계를 다시 지을 수 있는 언어의 박탈로 인한 고통이라는 점에서 각자의 고통은 개별적이고 고립되어있으며 그렇기에 절대적이다. 고통은 그 수준이나 정도를 가늠하여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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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또한,
전쟁으로 인해 아이에 대한 욕망이
완전히 꺾여버렸으므로."

(이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일어난 테러에 나 역시 같은 다짐을 하게 된다.)

어떤 몸은 다른 몸보다 더 아름답다고 그 누가 판단하는가.

토베는 섬이란 생산적인 고독의 상징이라 여긴다.

고독과 대면할 수 없다면
진정한 자유는 없다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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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쓰고 싶다...

세상을 나의 형용사들로 수식하고 싶다고 말하는 책

그런데 그거 알아?

암컷
외뿔 고래에게는
뿔이 없다는 것.

"무민은 행복한 바보들입니다.
속임수에 당하고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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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쁨으로 꽃을 피워요. 다른 건 할 수 없으니까요. 해는 따뜻하게 비치고 공기는 신선하고, 나는 맑은 이슬과 촉촉한 비를 마셔요. 나는 숨을 쉬고, 살아나가요! 흙에서는 어떤 힘이 내게로 올라오고 저 위에서도 어떤 힘이 내려와서 난 언제나 새롭고 큰 행복을 느끼고, 그래서 꽃을 피워야 해요. 그게 내 삶인걸요. 달리는 살 수가 없어요!"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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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지 못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더라도 그 성과는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곧 잊힌다. 다른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들은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성과를 내는 사람은 대체되어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성과를 낼 기회조차 없는 사람은 애초에 기억조차 되지 않는 존재감 0인 상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이 둘 모두 공포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 P145

사랑이 구제되고 사랑을 통해 모욕이 아닌 존재감을 고양시킬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밖에 없다. 서로 사랑하는 존재를 남자로도 여자로도 보지 않고 오직 ‘그‘로 보고 ‘그‘로 대하는 것 말이다. 그가 남자든 여자든 그 남자와 여자라는 것으로부터 차이가 있는 만큼 그가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사랑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하는 이를 ‘성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개체적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다. - P159

현존의 기쁨에 대한 확신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친밀성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유익한 존재‘가 되어 그의 관심을 끄는 수밖에 없다. 유익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유익한 것인 한 그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그의 관심을 붙들어두기 위해서는 무엇이든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적 존재감을 상실한 상태에서 존재감을갖는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마지막 영역이자 방법이 사랑과 우정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영역처럼 친밀성 영역에서도 존재감은 ‘현존‘이 아니라 필사적인 ‘관심 끌기‘로만 가능한 것이 되었다. - P161

기쁨에는 ‘더‘라는 요구 사항이 없다. 더 기쁘게 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가 나를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내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그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의 현존에 감사할 수 있을 뿐이다. 기쁨의 관계에서 받는 이는 요구하는 게 아니라 돌려주는 것만 가능하다. - P170

소수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그 이외의 다른 존재로 존재감을 가질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존재감이 대체 불가능성이라는 고유함에서 온다고 한다면, 소수자들은 각각의 자기 이름을 가진 개별적 존재, 즉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언제나 범주화된 집단의 이름인 ‘소수자‘로만 불리고 사회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심지어 그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조차 그가 말해야 하는 고통은 소수자로서의 고통이지 그 외의 다른 고통은 무시되고 삭제된다. 소수자를 비하하고 조롱하여 얻는 웃음은 이들의 개별성, 즉 인격과 존엄을 파괴한 고통의 등가물이다. - P177

관종들이 바라는 주목은 주목을 재생산하여 지속적으로 주목받는 것이지 주목을 그만두고 주목받지 않아도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안정적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주목을 이끌어내고 지속시키기 위해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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