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불쾌한 느낌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을 혼잣말인 듯 해버리고
이쪽에서 반응하면 ‘농담‘이라고 딴청을 부린다.
그 사람은 일부러 그런 거다.
‘확신범‘이다!
알고 있다.
신경 쓰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다.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상처 받는다.
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싫은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면 모든 것이 원만해지나?
그런 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걸까. - P86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질 수 있을까~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뭔가, 불필요한 고생을 짊어져야 하는 느낌이야······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살 여유가 없는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무리하면 마음의 빚이 돼.
그보다 애초에 싫고 좋고는
‘자유자재‘로 되는 게 아닐 텐데~~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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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 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 P44

인선의 얼굴이 서울에서 보다 평온해져 있다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105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 P134

파문처럼 환하게 몸 전체로 번지는 온기 속에서 꿈꾸듯 다시 생각한다. 물뿐 아니라 바람과 해류도 순환하지 않나. 이 섬뿐 아니 라 오래전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들도 저 구름 속에서 다시 응결할 수 있지 않나.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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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무카이는
늘 그런
식이야.

신경에 거슬리는 말만 골라서.
왜 그런
비아냥거리는 말투를 쓰는 거냐고!
하지만
정말로 나를 괴롭히는 건
그 지점이 아닌 것
같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던
내 자신. - P60

정말 그래.
정말 그렇군.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라거나
‘시집을 보낸다’ 라거나
그건 마치
어딘가에 선물로 보내지기 위해
키워진 것 같잖아.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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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이 있는 걸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더 많은데.
나를 흉보는 것도 아닌데…
왜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걸까?
나를 흉보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상처받고 있는 걸까.
- P42

어느날의 아카네

그 사람과
함께 산다면
방귀는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했다.

소리보다
냄새가 더
창피할 것
같아.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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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좋은 떡볶이란 무엇인가? 좋은 떡볶이는 맛있는 떡볶이인가? 맛있다는 것은 주관적인 감상이 아닌가? 객관적으로 맛있는 떡볶이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객관적인 맛있음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좋음‘이 ‘맛있음‘이 아니라면,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음식점의 본질이 다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합당한가? 위생이나 재료 상태, 점주와 본사의 관계, 지점과 아르바이트생의 관계는 ‘좋음‘에 어느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는가? ‘좋음‘은 누구에게 ‘좋음‘인가? 여기서의 ‘좋음‘은 사회적 ‘좋음‘까지도 포함하는 것인가? ···죄송하다. 철학자들은 원래 성가신 인생의 질문을 보따리에 이고 행복한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좇아 달려가는 이들이다.
철학자에게도, 철학 전공자에게도 떡볶이의 맛은 공평한 법. 전국의 철학도들에게 떡볶이 한 그릇의 따뜻함만큼 큰 응원을 보낸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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