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사람들이 모든 걸 망쳐 버릴 거야. 그 사람들이 우리를 없애 버릴 거야, 그 사람들이 내 이야기들을 없애 버릴 거야. 그 사람들이 모든 걸 망쳐 버릴 거야. - P106

왜 결말을 행복하게 하지 않았어? 현실에서처럼 말이야.

현실에선 행복한 결말이 없어. - P115

형이 죽었을 때 손에 뭘 쥐고 있었지? 이야기였어. 내가 쓴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 훌륭한 이야기. 봐봐, ‘작가와 작가의 형제‘에서······ 형은 작가였어. 나는 작가의 형제였고. 그 이야기는 형한테 행복한 결말이었어.

하지만 난 죽었잖아.

죽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뭘 남기느냐가 중요한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지금 당장 그 사람들이 날 죽이든 말든 상관없어. 상관없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죽이는 건 안 돼. 내 이야기를 죽이는 건 안 돼. 나한텐 내 이야기들이 전부야. - P117

어떤 이야기를 살려 줄까? 내가 쓴 4백 개 중에서, 어떤 이야기들의 목숨을 살려 줄래?

어, ‘작은 초록 돼지‘ 이야기. 그건 착한 이야기야. 그건 아무도 누굴 살인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 지 — 인 — 짜······ 그리고······ 그리고······ 사실 그게 전부인 것 같아. ‘작은 초록 돼지‘ 이야기. - P119

형이 실행에 옮기려고 고른 이야기 세 편이 하필이면 실행으로 옮기기에 가장 혐오스러운 이야기라는 사실만 아니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 세 편의 이야기는 형이 우연히 먼저 접한 이야기가 아니었어. 형의 역겹고 비열한 마음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던 거지. - P120

아기 돼지는, 그 돼지는 자기가 초록색인 게 정말 좋았어. 평범한 돼지들의 색깔이 싫은 건 아니었고, 분홍색도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아기 돼지가 좋아한 건 자기가 다른 돼지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 약간 특이하다는 거였어. 하지만 주위의 다른 돼지들은 초록색인 아기 돼지를 좋아하지 않았어. 돼지들은 초록 돼지를 시기하고 괴롭혔고 초록 돼지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어······.

비참하게······. - P124

그래서 작은 초록 돼지는 말했어. ( 돼지 목소리로 )‘오 하느님, 제발 부탁드려요, 이 사람들이 저를 다른 돼지들처럼 만들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요. 저는 조금 특이한 존재로 있는 게 행복해요.‘

‘저는 조금 특이한 존재로 있는 게 행복해요.‘ 돼지가 하느님에게 말해. - P125

저는 모든 걸 솔직하게 자백했습니다. 제가 약속한 대로요. 그래서 형사님들이 제 이야기들을 전부 제 사건 파일과 함께 보관하고, 제가 죽은 뒤 50년이 지날 때까지 개봉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형사님들이 약속하신 대로요. - P152

저는 형사님을 믿을 수 있어요.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네가 어떻게 알아?

모릅니다. 형사님에겐 그런 뭔가가 있어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 P155

난 증오를 느끼면서 잠에서 깨. 증오가 날 깨워. 증오가 날 버스에 태워서 직장에 데려다 줘. 증오가 나한테 속삭여. ‘그 새끼들 절대 못 빠져나가.‘ 난 출근을 일찍 해. 서류들은 깔끔하게 철해져 있는지, 전기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전부 확인해야 하거든. 그래야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니까.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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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리안. 나는 씨발 전체주의 독재 국가의 고위직 경찰 간부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 말을 믿는 건데? - P46

하지만······ 저는 형사님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제가 아동 살해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를 쓰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현실 세계에서 아동 살해 사건이 일어나니까? - P50

처음 악몽이 시작된 날은 소년의 일곱 번째 생일날 밤이었습니다. 소년의 옆방은 늘 빗장과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지만, 소년은 결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의문을 품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릴로 구멍을 뚫을 때처럼 낮게 윙윙 거리는 소리, 볼트를 조이는 것 같은 끼익끽 긁는 소리, 뭔지 모를 전기 장치가 둔탁하게 쉭쉭거리는 소리, 입에 재갈이 물린 작은 아이의 숨죽인 비명 소리가 두터운 벽돌 벽 사이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밤마다요. 매일매일 길고 절망적인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나면, 소년은 ( 어머니에게, 소년의 목소리로 ) ‘어젯밤 그 소리들은 다 무슨 소리였어요, 엄마?‘ ( 보통 목소리로 ) 하고 물었고, 그러면 어머니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 우리 아가, 그 소리는 아주 멋진 네 상상력이 네게 심하게 장난을 친 거란다.

( 소년의 목소리로 ) 아. 저 같은 꼬마들은 모두 밤마다 그런 끔찍한 소리를 듣는 건가요? - P63

곧이어 그들은 이사를 했고, 악몽 같은 소리들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기이하고 비틀린 동시에 훌륭했으며, 소년은 자신에게 기괴한 경험을 선사해 준 부모에게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뒤, 그의 첫 번째 책이 출판되던 날, 그는 이사한 후 처음으로 어릴 때 살던 집을 다시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침실을 서성거렸습니다. 장난감과 그림 들이 모두 여전히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옆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먼지 앉은 낡은 드릴들과 자물쇠들, 전기선이 여전히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미친 짓이었는지 떠올리며 미소를 짓다가, 이내 미소를 잃었습니다. 무언가가 언뜻 눈에 들어왔는데······ - P66

잠깐 생각 좀 할게. 잠깐 생각 좀······

넌 생각하는 걸 좋아해, 그치?

우리 왜 이렇게 멍청한 거지? 왜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는 거야?

왜?

이건 꼭 스토리텔링 같은 거야. - P83

우리가 아는 건, 어떤 남자가 방으로 들어와서 다른 남자한테 ‘너네 어머니가 죽었다‘라고 말했다는 게 전부라고. 우리가 아는 건 그게 전부란 말이야. 스토리텔링의 첫 번째 법칙, ‘신문에서 읽은 내용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 - P84

이런 세상에. ‘전체주의 국가에 사는 어떤 작가가 심문을 받는다. 그가 쓴 짧은 이야기들에 담긴 섬뜩한 내용이 그가 사는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 건의 아동 살해 사건 정황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몇 건의 아동 살해 사건은······ 사실상 아예 일어난 적이 없다.‘ 지금 펜이 있다면 좋을 텐데. 이번 일로 괜찮은 이야기 한 편을 쓸 수도 있겠어. 우리가 한 시간 안에 사형당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든, 마이클, 뭘 하든, 절대로 서명하면 안 돼. 그 사람들이 형한테 무슨 짓을 하든, 절대로 서명하지 마. 내 말 알겠어? - P85

그래, 필로우맨은 이렇게 생겨야 했어, 부드럽고 안전해 보여야 했지, 그가 하는 일 때문에 말이야. 그가 하는 일은 아주 슬프고 아주 어려운 일이었거든······. - P90

필로우맨이 하는 일은 아주 아주 슬픈 일이었어. 왜냐하면 필로우맨이 하는 일은 그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거였거든.
그 아이가 나중에 겪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피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냥 놔둬봤자 어차피 결국엔 같은 상황에 놓일 거였지. […] 필로우맨은 항상 비극적인 사고처럼 보이는 방식으로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제안해 줬어. - P91

필로우맨은 누굴 죽인 적이 없어, 마이클. 그리고 죽은 아이들은 모두 어차피 끔찍한 삶을 살 예정이었어.

네 말이 맞아. 모든 어린이는 끔찍한 삶을 살게 될 거야. 그 아이들을 골치 아픈 상황에서 구하는 편이 나아.

모든 어린이가 끔찍한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니야.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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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위대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야기꾼의 첫 번째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저는 이 말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이야기꾼의 첫 번째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닌가, ‘이야기꾼의 유일한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였나? 네, 그게 맞겠네요. ‘이야기꾼의 유일한 의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제가 하는 일이 그겁니다. 저는 이야기를 해요. 뭐 불만 같은 거 없습니다. 전혀 아무 불만 없어요. 사회적인 무슨 그딴 거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 때문에 저를 여기 데리고 오신 거라면, 도저히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제 이야기에 어쩌다 정치적인 뭔가가 들어갔다면, 아니 정치적으로 보이는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혹시 그렇다면, 어느 부분인지 저한테 보여 주십시오. 그 개 같은 게 어느 부분에 있는지 저한테 보여 달란 말입니다. 제가 당장 빼 버리겠습니다. 씨발 완전히 태워버리겠습니다. 아시겠어요? - P20

형이 낯선 장소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요, 형사님 동료가 형을 두드려 팰까 봐 무섭고요, 그 사람이 와서 저를 또 두드려 팰까 봐 무섭고요. 저는 맞아도 괜찮지만, 아니 그러니까, 안 맞는 게 더 좋지만, 제 이야기들 안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시면, 저한테 실컷 화풀이를 하세요. 하지만 저희 형은 겁이 많고, 이 상황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어쨌든 이 이야기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제가 이야기 몇 번 들려준 게 전붑니다. 그래서 저는 형사님들이 형을 이곳으로 끌고 온 건 아주 부당하다고 생각하고요, 씨발, 지금 당장 형사님이 가서 좆같은 여기에서 형을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씨발 지금 당장이요! - P32

그거 있잖아, 네가 자주 사용하는 주제. ‘불쌍한 어린애가 존나게 신세 조지는 이야기‘ 그게 네 주제잖아. - P33

딱히 뭘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를 쓰려고 한 거예요. - P36

이 이야기는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나는 겉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표면을 들추면 다른 걸 말하고 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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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게는 시간이 많다. 사람이 홀로 있으면 시간은 양 쪽으로 창이 난 방이 되어, 한쪽으로는 과거를, 다른 쪽으로는 미래를 들여다보게 된다. 역사가를 유혹하는 것은 불확실한 과거 포착하기, 과거를 사건과 시기와 시대로 나누어 담기, 시종여일하게 이야기를 정리하고 말하기, 그 동기와 결과 목록을 찾아내고 만들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각자는 당연히 제 삶의 역사가이다. 반면에 미래는 우리의 예언과 환상에 끝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시간이 미지 속으로 펼쳐지는 카펫이라도 되는 듯이, 앞으로 올 날들을 계획함으로써 우리는 낙관주의를 탐닉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 P52

나는 차례차례 거리를 지나 아무 걱정 없이 길을 잃으며 도시의 주름 속으로 걸어 돌아왔다. 이 도시에서 태어나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리고 여기서 죽는 기분은 어떨까? 어느 도시를 가든 이 쌍둥이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이 질문들을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 이 질문들은 나의 사고 논리와 내가 어떤 장소와 관계 맺는 방식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절대 잊지 않고, 또 내가 얼마나 자주 그걸 잊고 싶어 하는지도 잊지 않는다. - P53

그 옆에는 ‘인내‘, 그러고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나른하게 기대앉은 ‘평화‘가 있다. 평화는 그 그림을 설명하면서 그림에 중심을, 시선이 멈출 곳을 제공한다. 그 덕분에 이 방, 살라 데이 노베는 살라 델라 파체(Sala della Pace), 즉 ‘평화의 방‘이라고도 알려졌다. 이제 드러났듯이, 평화가 바로 구성 원리다. 프레스코화에 드러난 다른 활동들은 물론, 그 함의로써 제시되는 통치 체제에서도 말이다. 한편으로는 로렌체티가 그녀를 배치해 놓은 위치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표정 때문이다. 기다림, 관찰, 듣기, 그녀의 손은 우리 쪽을 향해 열린 귀를 받치고 있다. 검은 꾸러미들이 팔을 걸친 쿠션 밑에도 숨어 있고, 발밑에도 있다. 그것들이 평화가 있는 곳에는 전투가 필요 없다는 걸 나타내는 갑옷 조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순적이다. 보호와 은폐에 쓰이는 물건인 갑옷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딴청을 부리는 평화에게는 슬랩스틱 익살극 같은 뭔가가 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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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키 큰 소나무 그늘에 누웠다. 등에 닿는 풀밭이 시원하고 흔쾌했다. 머리가 가슴보다 낮아지자 피가 양 관자놀이 사이에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다이애나가 내 가슴을 베고 누웠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흉곽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내 몸에 대한 일종의 불가사의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의 기분을 살라 데이 노베에서 느끼고 있었다. 어떤 독자적인 의지가 내 안에 있는 비밀스러운 시계 장치들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내 장기들의 작동과 구조 자체가, 그것들을 관통해 흐르는 피가, 내가 지금 ‘나‘라고 느끼는 무언가가, 내 생각이나 감정과는 동떨어진 어떤 다른 존재 질서에 속한다는 느낌 말이다. - P36

내 생각은 그때 로마로 오기 전에 며칠 묵었던 트리폴리에서 옛날 친구와 나눈 대화로 흘러갔다. ‘욕망과 욕망의 지속이 어떻게 동경과 충족되지 않은 소망과 좌절된 욕구에 의지하는가‘에 관한 대화였다.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던 밤, 우리는 어릴 때 살던 도시를 거닐고 있었다. 최근의 혁명과 뒤이은 내분으로 파손된 건물들이 보였다. 예전에 살던 익숙한 곳이라고 돌아온 도시가 그새 완전히 달라져 낯선 장소가 되어 버린 꼴이었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목적을 이루는 순간 욕망은 죽어. 어떤 사람, 어떤 것에 대한 우리 열정을 살아 있게 해 주는 건 달성의 가능성이지." […] "욕망이 원하는 완전한 정복과 욕망이 계속 존재하는 데 필요한 불가사의, 즉 알 수 없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있어. 욕망은 영양실조를 통해서만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동물이야. 진화적 측면에서 보면, 실패는 욕망의 필요조건이고 좌절은 그 모체지." 이처럼 설득력 있게 얘기되다 보니, 나는 친구의 논 제에서 일말의 불안을 느끼면서도 그 열정과 추상적 개념들과 과장들에서 진심으로 큰 환희를 느꼈다. 쏘아 올린 돌멩이가 곧바로, 잘못하면 우리 머리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몇 시간씩 별을 향해 새총을 쏘던 어릴 적에는 늘 이러지 않았던가? - P37

콘래드가 쓴 바로는 "호기심은 자기 현시의 한 형태로서, 체계적으로 무관심한 인물은 늘 얼마간 불가사의한 존재로 남는다." 이 장면이 아마 소설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욕망의 순간이다. 정체를 숨기는 데 도움이 되었던 위니의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 자신에게도 작동해 기묘하게도 그녀를 더 원하도록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벌록이 깨닫는 것도 이때다. - P39

"이렇게 보는 전망이 정말 멋져." 아내는 그전에 다른 도시들에서도 그런 말이나 그 비슷한 말을 했지만, 지금 로렌체티의 정치적 의도에 둘러싸여 생각하기로, 로마에서의 그날에 그런 말을 한 것이 더없이 적절했던 건, […] 우리가 그날 오전 대부분을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앞에 말없이 서서, 혹여나 더러운 것이라도 묻을세라 멀찍이 든 자신의 전리품, 그 거대한 몸통 없는 머리통을 꼴사납다고 여기는 듯한, 비극적인, 거의 후회하는 듯한 다윗의 표정을 보며 보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골리앗의 노회한 눈은 먼 곳을 응시한다. 어떤 꿈속에 사로잡힌 듯이, 또는 반대로 죽음 때문에 고요히 이어지던 나날에서 깨어난 듯이, 충격받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다. 어느 쪽이든, 골리앗은 우리로서는 볼 수도 없고 본 적도 없는 무언가를 보고 있다. - P41

우리가 골리앗을 보는 다윗을 보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골리앗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려질 수도 없다. 골리앗은 이제 우리 경험의 범위 바깥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모든 것을, 과거와 미래와 특히 다윗 자체를 덜 안전하게 만든다. 다윗은 그걸 예민하게 느낀다. 우리는 다윗이 새로운 진실을 이해하고 그에 저항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복수가 골리앗에게 우위를 주었다는 진실, 우리가 적을 처형하는 순간 적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으로 달아나 버린다는 진실, 또는 내세의 부재 속에서 적의 일대기는 마감되었고, 그러므로 더는 변경될 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폭군들이 가장 맹렬한 적을 감금 상태로 살려 두는 쪽을 더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여기 골리앗의 경우처럼 죽은 자의 마지막 주장이 그 침묵이라는 걸 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다윗의 얼굴에 후회의 기색이 비치겠는가? 아마도 골리앗을 살해한 것이 그에게 새로운 연민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카라바조의 다윗은 승리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어린 생에서 아마 처음으로 자기 행위의 여파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이룬 자기 성취의 규모를 명확하게 가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마침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 P44

비관론자냐는 질문을 받은 영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 (Edward Bond)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게 희망의 몸짓이 아니라면 내가 왜 당신과 얘기를 하고 있겠소?" 로렌체티의 〈좋은 정치의 알레고리>,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그리고 실로 예술사 전체가 그렇게 읽힐 수 있다. 희망의 몸짓이자 욕망의 몸짓으로서, 사랑하는 이와 이어지려는, 아내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려는, 의도와 발화 사이에 존재하는 남모를 비극적 거리를 건너뛰어 마침내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리라는,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어떤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보이기 위해, 인식되기 위해, 다른 누군가로 오인되지 않기 위해, 우리를 제일 잘 아는 이들에게 동일성을 인정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변화하려는, 인간 정신이 품은 비밀스러운 야망의 작용으로서 말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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