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작에서 그녀는 공항의 무빙워크를 타고 등장한다. 당당하게서 있다가 유유히 걷고, 황급히 뛰어온 끝에 활짝 웃는 그 롱테이크는 드라마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단지 그녀가 스튜어디스라는 정보만 전달하는 장면이지만 바로 그 (글자 그대로의)‘행보‘에 영화 전체의 리듬과 플롯이 다 들어 있다. 정말 재키는 당당하게 입국해서 유유히 문제를 해결해나가다가 곤란에빠지는 시늉만 좀 해주고는 끝으로 돈을 다 차지하고 빙긋 웃어버리는것이 아닌가. - P308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생명의 존엄성 따위가 인정받을 리 없다. 살아남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돈을 차지하려면 끝까지 살아남아야한다. 상대를 쏘면서 "삶이 무가치한 곳에선 때때로 죽음이 가치를 지닐 수 있지"라고 태연스레 말할 수 있는 곳, 여기에 도덕이 끼어들 틈이란 없다. 말로야 ‘선인The Good, 악당The Bad, 비열한The Ugly‘ 이지만 사실 이 인간들에 그런 구별은 무의미하다. 선한 자는 하나도 없는 대신 모두가 악하고 비열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정했던 제목도 그래서 ‘두 위대한 사기꾼Two Magnificent Rogues‘이었다지 않은가. 나머지 둘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블론디 역시 보물찾기 말고는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서로가 가진 정보를 털어놓기로 했을때 정작 거짓말을 하는 건 블론디 쪽이고, 투코의 총에서 탄환을 몰래 빼어놓는 자도 그다. 묘비명을 적어놓겠다던 돌멩이에 아무것도 안 씌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최후의 3각 결투 때, 엔젤 아이즈는 투코와블론디 둘을 상대해야 하지만 블론디는 안심하고 엔젤 아이즈만 쏘면 된다. 운이 나빠 자기가 죽는다고 해도 금화는 누구의 차지도 되지 않는다. 블론디는 가장 영리한 사나이. - P334
그 자리를 파고든 악령의 실체는 역설적으로 ‘무無‘ 이다. 테이프를 거꾸로 돌려 들은 악마의 음성은 "난 아무도 아니야"가 아니었던가. <엑소시스트>가 진정한 공포영화일 수 있는 건, 마음속의 공허 그 자체가 악마, 즉 공포라는 사실 때문이다. - P359
도입부에서 가이는 두 명의 응급환자를 동시에 받는다. 하나는 경관, 하나는 흉악범이다. 수술실 문제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사는 법집행자의 생명을 먼저 구한다는 결단을 내린다. 바로 그 행동 때문에 마이릭 박사는 가이가 근본적으로 자기와 생각을 같이한다고 믿어버린다. 인간에게 등급이 있다는 것, ‘더’ 중요한 생명이 존재한다는 믿음. 요컨대 가이는 마이릭을 비난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경관이 목에 입은 총상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게다가 가이에게는 의사 자격을 박탈당한 영국인 아버지가 있다. 말기 암 환자인 절친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위의 눈총 때문에 미국에 와서 의사 노릇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행동에 대해 어떤 도덕적 판단도 내릴 수 없다고 토로한다. - P366
여기서 롤러볼은 가장 효과적인 상징으로 기능한다. 중역의 말을 빌리면, ‘개인적 노력의 한계성을 대중에게 자각시키기 위해 창조된 가장 중요한 장치‘인 롤러볼의 선수가 지켜야할 최고의 가치는 ‘게임 그 자체보다 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 능력이 무한하다는 사실의 확인은 기업 조직의 권능에 대한 대중의경시를 유발하고, 급기야는 대규모 저항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 영웅적 개인은 그래서 불온하다. • • • 그러나 조나단이 은퇴를 거부하므로 기업은 다른 방법을 강구한다. 뉴욕과의 결승전에는 아예 모든 규칙이 철폐된다. 어떤 반칙이든 허용되고, 선수 교체도 불가능, 시간 제한조차 없다.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일 건 뻔하지만 조나단은 끝내 이 ‘죽음의 경기‘에 출전한다. 양팀 멤버 전원이 부상으로 실려 나가는 처절하기 짝이 없는 혈투를 승리로 이끄는 조나단. 그를 죽이려고 의도했던 행사는 오히려 그가 진정한 영웅으로 등극하는 대관식으로 변한다. 마지막 남은 적을 살려주는 그의 행동은 폭력에의 중독을 극복한 자의 승리, 개인성을 말살하려는 집단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더 이상 ‘안정은 자유’가 아니고, 역사는 ‘빈곤과 필요 사이의 전쟁 기록’이 아니다. - P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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