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캅을 다시 만났을 때, 동료 경관은 "당신 이름이 뭐죠?"라고 묻고, 갱스터는 "넌 죽었더랬어!"라고 외친다. 두 문장을 결합하여, 그는 의심한다. ‘내가 죽었다면 죽기 전의 나는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현재는 과거에 의해 규정된다. 마찬가지로 현재는 미래를 규정한다. 그리고 <로보캅〉의 미래는 악몽이다. 로보캅에게 머피로서의 과거 회상이 고통인 것처럼, 우리에게 테크노피아로서의 미래 예상 역시 고통이다. 신도시 델타 시티로 상징되는 ‘미래의 미래‘는 더한 고통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 P247
바로 이 지점에서 감독은 묻는다. 초자아에 의해 억압받는 이성애의 사랑과, 자유롭고 헌신적인 동성애의 사랑 중 과연 어느 쪽이 변태적인 것인가. - P282
할리우드 유일의 동양계 색스 심벌이었던 안나 메이 윙이 표지로 실린 잡지를 보면서 자신의 입장과 동일시하곤 했던 릴링은 서서히 진심의 게이로 변모해가고, 마지막 만남에서 남자로서 갈리마르에게 구애하지만 차갑게 거절당하고 만다. 이때 갈리마르는 철창 속으로 달아나 스스로를 감금한다. 자기의식 속에 엄존하는 양성성의 인정을 거부하고 편협한 이성애주의자의 울타리 안에 숨고 싶어 한 그는 자신이 여성이 아니라 여성의 이미지를 사랑했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나비부인> 아리아의 대사인 "불명예스럽게 살기보단 명예롭게 죽음을 택한다"를 중얼거리며 자살하는 그를 보라. 이때의 여장은 그마저 게이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 철저한 이성애주의자는 자신의 불명예를 스스로 조롱하는 것이다. 나비 부인이 아들의 손에 성조기를 쥐여주고 죽는 것처럼. 이 얼마나 깊은 골이냐! 영화는 릴링이 탄 비행기의 문짝이 우리의 눈앞에서 탕 하고 굳게 닫히는 데서 끝난다. 아무래도 크로넨버그가 보기에 우리와 타자 사이의 소통은 불가능한것 같다. 나비가 아닌 이상 고치를 벗고 변태하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 P287
이에 비해 주윤발은 작은아파트에 살며 제니에게 각막이식 수술을 시켜줄 돈도 없다. 최고의 살인 청부업자는 이미 기업화된 폭력 조직의 시대에 뒤떨어진 존재다. 해상 범행 당시의 노인 변장은 그 낙후성의 인정이고, 공항에서의 일본인 사업가 변장은 자본주의 부적응성에의 자조인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는 최고의 강력계 형사도 마찬가지. 승진과 보신에 무관심한 이수현은 경찰이라는 조직과 사사건건 충돌만 일으킨다. "세상은 변해가는데 나만 낙오자가 되는 느낌이야"라는 주윤발의 고백은 그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주윤발이 범죄조직의 두목에게 살해당하듯, 이수현은 놈을 죽이고 동료 경관들이 일제히 총을 겨눈 가운데에서 오열한다. 둘은 또 우정을 생명보다 중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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