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분량이 꽤 되는데도(551p) 그리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분량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는 것이 어려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체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책들을 읽듯이 시간간격을 두고 읽었더니 비슷해 보이는 이름에, 비슷해 보이는 주장들 때문에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관심과 시간이 모두 있는 사람이라면 작심하고 한 번에 독파한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듯…

 

초반부(10-11p)에서 밝히는 이 책의 목적 두 가지는 무척 마음에 든다. (하나는 근원에 대한 고찰이요, 다른 하나는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의 전체성에 대한 고찰이다.)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주제였기 때문에 저자와 책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며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 10명의 철학자들을 다루고 있다. 각 철학자들 다루는 기본 틀은 비슷하지만, 각각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다루고 있다.

 

저자가 아낙시만드로스를 탈레스와 비교하면서 한 말(108p “탈레스가 날카로운 관찰을 통해 신화로부터 벗어나 있는 우주의 싹을 틔웠다면, 아낙시만드로스는 탁월한 정신성과 천재적인 직관력, 그리고 대담한 비판적 사고력을 발휘하여 서양 사상 최초로 일관적이며 포괄적인 세계관을 산출해 냈다.”)은 나로 하여금, 꽤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을 떠올리게 했다. 허두영 씨가 지은 [신화에서 첨단까지]라는 두 권짜리 책이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들 가운데서 첨단 과학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하면서 신화와 첨단 과학을 연결시켜 주는 꽤 흥미로운 책이다. 결국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과제는 신화의 세계에서 과학의 세계로(그리고 부수적으로 철학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열 명의 철학자들 가운데 특별히 내 마음을 끌었던 두 사람이 있다. 피타고라스와 엠페도클레스가 그들이다.

- 피타고라스의 경우, 그(또는 피타고라스 학파)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주장이 동서양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의 주장은 불교(133), 묵가(140), 공자와 맹자(141), 어거스틴(142), 신비주의(143) 등을 떠올리게 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피타고라스 안에서 ‘통합적 체계’를 발견하게 된다(144).

- 엠페도클레스의 경우, 그의 이론들과 현대 과학의 발견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저자는 데모크리토스를 다루면서는 - 엠페도클레스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길게 - 현대 과학적 발견과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그의 한계 - 시대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동정적인 입장이기는 하지만 - 를 함께 지적하는데 반하여, 엠페도클레스의 경우에는 유사성만을 나열하고는 한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흔히들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를 ‘황금시대’로 부르지만, 그들보다 조금 더 이전 또는 그들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역자의 언급에서야 알았다. 504p) 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전체성’ 혹은 ‘통합적 사고’(저자가 후기에서 소개한 에드워드 윌슨의 책 제목 ‘통섭’이라는 용어가 가장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야말로 내게는 더 ‘황금시대’로 보인다. 로버트 브로우가 그의 책 [종교의 기원과 사상]에서 주장한 것처럼, 인류의 역사는 점점 ‘진화’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해 온 것은 아닐까? 오늘날에는 이들과 같은 놀라운 사상가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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