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시에 대하여...

 

1) 제목도 서론(5, 13p)도 ‘시=노래’로 보고 시작한다. ‘시’라고 하면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데 ‘노래’라고 하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이것은 시를 시로만 보는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다. 노래로서의 시! 전혀 새로운 주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조금은 강조되어도 괜찮을 발상이다.

 

2) 저자는 시조(시)의 고루해 보이는(12p) 틀 안에서의 다양성(6p)을 잘 집어주고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틀’을 부자유함, 부자연스러움과 연결해서 생각하지만, 기본적인 틀을 인식하면서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다양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고 하는 점이 오히려 더 흥미를 끈다.

 

3) 시조의 저자에 대한 관심(7p ‘문학은 언제나 작품만을 떼어내서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어진 배경과 지은이의 처지를 고려하면서 읽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에 대해서 동의한다. 하지만 작품이 항상 저자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text를 중심으로 하여 그것을 만든 저자(author), 그것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world), 그리고 그것을 읽는 독자(reader)의 관계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그러한 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35p ‘물론 작품 속의 상황을 반드시 그의 삶과 일치시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또한 저자의 형편을 이해하는 것은 역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38p ‘그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보다 깊이 해석해 들어간다면, 그는 그 오동나무를 보면서 능력이 있으면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자신을 떠올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4) 일반적인 시조와 대조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사설시조도 나의 관심을 끌었다. 파격적인 형태와 그것이 담고 있는 더 풍성한 내용들!

 

2. 글들을 읽으면서…

 

1) 일곱 번째 글(‘오백년 도읍지를…’)은 읽는 재미가 있었다. 망한 고려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각(친 고려와 친 조선)을 함께 제시해준 것이 도움도 되었고 흥미도 있었다.

 

2) 아홉 번째의 ‘술’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책문]에 나오는 술의 폐해에 대해 논하라고 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함께 연결해서 읽으면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 더 도움이 될 듯…

 

3) 열두 번째의 슬픈 사랑 노래, 이별 노래를 읽으면서는 그것이 너무나 아련하고 마음을 아프게 해서 살짝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4) 중간 중간에 나오는 ‘왕(王)’에 대한 절대적인 태도를 보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애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쭈뼛한! 어쩌면 그렇게 ‘절대적’일 수 있을지… 오늘날에는 꿈꿀 수도, 취할 수도 없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절대자를 향한 절대적인 순복의 태도!

 

5) 중간 중간에 삽입해 놓은 그림은, 글과 직접 연관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글들을 읽어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더욱 생생한 현장 속으로 이끌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읽으며 메모한 것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그리하여 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단으로써 음악을 매우 중시했는데, 윤리와 음악이 결합된 표현인 ‘예악(禮樂)’이라는 말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심신을 수양하는 데 있어 윤리 못지않게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29)

- 옛 음악의 용도! 음악에 대한 생각! 이러한 시각은 바른 이해, 그리고 폭넓은 이해를 돕는 좋은 지적이라 생각된다. 음악의 힘을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

 

2. 문득 들었던 잠을 다시 깨운 것은 ‘문 앞에서 여러 가닥으로 들리는 어부들의 피리 소리’이다. 아마도 유성원이 꿈속에서 만나고자 했던 태평성세를 조그마한 어촌 마을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32)

- 일단 전문가의 해석이니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꺼림칙한 생각이 든다. 나는 앞에서 처음 이 시를 읽으면서 종장의 문구를 저자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평성대를 꿈꾸려 하는데 수성어적이 그 꿈을 깨워버렸다는… 혼자만의 생각. --;

 

3.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연에서의 생활을 추구했으며, 자연 속에서 심성을 닦으며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즐겨 지었다. 비록 빈한(貧寒)한 처지에 놓여 있을지라도, 자연에서 지내며 올바른 도리를 행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시 지식인들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흔히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자세는,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세속적 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의 ‘도(道,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가리킨다.(44~)

- 아!!! 딱 내가 원하는, 내가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삶의 모습이다! 내는 선비적인 걸까?

 

4. 흔히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일컫는 말로 ‘지음(知音)’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음이란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다’는 의미로…(137)

- 이것 역시 전문가인 저자의 말이니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지음’은 종자기가 백아가 연주하는 ‘음악(音)을 알아준다(知)’는 의미라고 알고 있었는데… ‘소리를 알아준다’와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다’는 차이가 있는 듯이 여겨져서…

 

5. 여러 의학서에 따르면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20세였다. 언뜻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영유아의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도 대개는 40세 정도면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다니…(220)

- 그 나이를 먹도록 살았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를 생각하게 된다.…

 

6. ‘화기융농(和氣融濃)’이란 ‘조화로운 기운이 무르익는다’는 의미이니, 보록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모습이지만 비교적 절ㅈ된 흥취를 연출하는 자리였다.(321)

- 이 구절만은 아니고, ‘풍류’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계속 몇 년 전에 읽었던 정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에 나왔던 풍류를 즐기던 사람들의 장면이 연상되었다.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힘든 삶의 멋! 아쉽고 그립다.

 

7. 아무리 어지럽게 섞여 있다고 하더라도, 눈으로 보면 옥과 돌은 분명히 구분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정치 현실에서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보다, 자기의 입장이 관철될 수 있는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즉 자기의 이익을 좇아 진실을 애써 외면하곤 하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세태에 대한 비판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작품에서 그가 보기에 옥(玉)이 분명한데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들 돌이라고 하고 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우기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애달픔을 느꼈다. … 초장은 세상 사람들은 옥석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내용이다. ‘박물군자(博物君子)’란 세상의 이치를 널리 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니, 옥과 돌이 섞여 있다 한들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마저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현실이 자못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 자신이 보기에 너무나 분명한 사실마저도 왜곡되게 만들 수 있는 세태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331)

- 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 요즈음 나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써놓은 듯하다. 참과 거짓이 섞여 있고, 그럼에도 바른 정신으로 본다면 그것을 구별할 수 있을 터인데도, 어떤 것도 참이라 할 수 없다고 하는 상대주의, 자신에게만 옳다면 문제될 것 없다고 하는 주관주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실용주의… 이러한 사상에 물들고 빠져 있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 사상들의 영향을 받고 있음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비판하면 비판한다는 사실만으로 편협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몰리게 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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