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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책읽기 - 하
테리글래스피 지음, 윤석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하권은 일반 책들을 다루고 있다. 일반 고전과 시, 소설, 아동 문학에 대한 내용과 끝부분에 가서는 도서 목록을 사용하는 것과 독서 그룹에 대한 내용, 그리고 부록으로 그리스도인 선배가 쓴 책과 비기독교인들이 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간략한 내용이 첨가되어 있다.
이 목록들을 보면서 일반 책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래 시에 대해서는 관심이 좀 적었고(그나마 진 에드워드 비이스의 [그리스도인에게 문학의 역활은 무엇인가]와 제임스 사이어의 [어떻게 천천히 읽을 것인가]를 보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소설을 더더욱 그랬다. 인문학 쪽에서 역사와 철학, 과학, 예술 등의 주제들은 어느 정도 읽어주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소개된 책 목록은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별히 소설 부분에서 흥미로운 작가들과 작품들을 많이 발견했다.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이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침입해 들어가 보기로 작정한다. (아쉬운 것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번역된 책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
*****(읽으며 메모한 것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나는 한번 시작한 책을 언제나 끝까지 읽는다.”(221) - 나와 비슷한 책 읽기 방식! 사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보면서 그가 제시하는 독서 방식이 나와는 달리 ‘훑어보는’ 식이어서 조금 주춤했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리는 식으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소설도 줄쳐가면서 읽으니... 가벼운 책은 가볍게, 더 진지하게 보아야 할 책은 진지하게 보아야 하겠지...
2. “독서 그룹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누비이불을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 모든 사람들은 함께 독서한 책으로부터 각자의 개인적인 통찰력을 가지게 되며, 그 개인적인 통찰력을 그룹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놓쳤거나 인식하지 못한 것들을 깨닫거나 발견하게 된다. 여러분 각자는 여러분이 읽은 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각 사람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우리 각 사람은 자신만의 사각형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모여 있는 그룹 구성원들 앞에 그 사각형을 가져와서는, 그것을 가지고 풍성한 이해라는 아름다운 누비이불을 만드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의 생각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함께 수가 놓여지면서, 더 크고 안전하며 더 넓은 이해를 형성하게 된다. 이와 같은 토론의 과정을 통해 누비이불은 우리의 눈앞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자신의 단일하고 제한적인 시각과 지식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어떤 것을 독서 그룹의 토론을 통해 볼 수 있다.”(228, 233) - 1년 가까이 매주, 독서 토론 모임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서로가 그 모임에서 기대하는 것이 달라서 조금씩 삐그덕거린다. 당장 지난 월요일에도 그 문제로 이야기를 했었다. 개인적으로 도전 받고 배운 점들을 나누자는 사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자신의 이야기들을 나누자는 사람, 또 책 가운데서 발견되는 문제를 지적하는 나 같은 사람... 서로의 관심이 달라도 그것으로 더 큰 누비이불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자신이 기대하는 쪽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마음이 힘드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격려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
3. “당신이 속한 독서 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몇 가지 조언을 제시하고자 한다. ① 대부분의 독서 그룹의 경우, 가장 적절한 만남은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가지는 것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회원들이 정해진 책을 구입해서 그 책에 관한 독서를 마치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②독서 그룹의 규모를 적은 인원으로 유지하라. 한 장소에 모이기에 편리하고, 모든 사람이 토론에 참여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은 15명 정도가 적당하다. ③독서 그룹을 가르칠 선생보다는 그룹을 관리하고, 토론을 격려하는 도우미를 필요로 한다. ④토론을 이끄는 사람은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을 토론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⑤토론 진행자는 그 저자에 관한 배경적인 지식에 관해 연구해야 한다. ⑥내가 지금 속해 있는 독서 그룹은 모임에 앞서 회원들에게 자신들이 읽고 있는 책과 독서 토론이 이루어지는 날짜, 시간, 장소를 상기시켜 주는 짧은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 편지는 또한 토론 진행자가 제기하는 몇 가지 질문도 싣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회원들로 하여금 그 책에 나타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⑦간단한 다과를 제공하는 것은 만남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233~) - 흠...
4. “많은 사람들이 전통과 전통주의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펠리컨(Jaroslav pelikan)은 분명하게 양자를 구분 짓고 있다. 즉, 전통은 ‘죽은 사람들의 살아 있는 신념’으로서,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에게 도전을 던짐으로써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반면,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죽은 신념’으로서, 신앙의 외적인 의식과 수사적 기교를 고수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같ㅇ츤 내적인 불꽃을 내우지 않는다.”(240) - 전통과 전통주의에 대한 정말로 멋진 설명이요 정의다!!!
5. “우리는 보다 최근에 나타난 것이 이전의 것보다 더욱 나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C. S. 루이스는 이러한 종류의 사고방식을 ‘연대기적인 속물근성’이라고 불렀다. 루이스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친구 바필드가 단지 현대적인 것만 믿는 그의 젊었을 때의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였다는 사실과 아울러, 어떻게 자신이 이러한 태도를 치료하였는지에 대해 쓰고 있다.
바필드는 나의 소위 ‘연대기적인 속물근성’, 즉 우리 세대에 보편화된 지적인 사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오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뢰할 수 없다는 사고와 가정을 신속하게 해결해 주었다. 당신은 그것이 왜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에 관해 의문이 제기되었던 일이 있는가(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누구에 의해 어디서 어떻게 결정적으로 그러한 사실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단지 유행 때문에 사라지게 되었는가?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이것은 우리에게 그것의 진리나 허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시대 역시 하나의 ‘시대’에 불과하며, 다른 모든 시대와 같이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환상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환상들을 자신의 시대에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을 공격하거나 옹호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그와 같은 널리 퍼진 가정들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예기치 못한 기쁨] 중에서)
전통은 또한 창조성의 원천이다. 역설적이지만, 스스로를 과거의 전통 속에 침잠시키는 대부분의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남긴 작품들은 가장 독창적인 작품들로 인정받고 있다. 피카소, 엘리엇, 그리고 조이스와 같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두드러진 혁신을 이루어 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작품들이 바탕을 두고 있던 전통에 관하여 끈기 있게 연구한 사람들이었다.
과거는 너무나도 귀중한 보배다. 우리는 오랫동안 의도된 하나님이 계획을 개진하고, 전 역사를 통해 성도들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는 성도의 교제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현실감을 다시 포착할 필요가 있다. 신학자로서 최근의 변덕스러운 문화적, 신학적 분위기에 초점을 두고, 많은 시간을 쏟아서 그의 초기 연구에 몰두했던 오든(Thomas Oden)은 점차적으로 초기 교회가 남긴 작품들의 중요성을 연구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그는 ‘한때는 30세 이상 된 사람들을 믿는다는 것을 주저했었는데, 지금은 3백 세 이하의 사람들을 믿는 데 주저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244, 246) - 연대기적 속물근성! 다치바나 다카시에게서 발견한 미심쩍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고전의 내용은 사실상 시시한 것들이고, 최신 과학 그것도 인쇄된 것이 아니라 그 분야 최고의 학자의 모리 소게 있는 것이야말로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진리야마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한편 전통과 과거에 대한 저자의 글은 백금산 목사가 [큰인물 독서법]에서 말한 내용을 생각나게 한다. “고전은 형식에 있어서는 고대의 것이지만 내용은 보편적인 완성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의 정신을 현대적인 새로운 형식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곧 대가가 되는 지름길이다. 어느 분야든지 고전이 있기 마련이다. 섣부른 자유주의자가 되지 말고 철저하게 고전에 정통하라. 그러나 고전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지 말고, 완전히 소화하여 새로운 목소리를 내라. 고전은 곧 기본기다. 기본기를 철저하게 마스터한 다음에 자유자재로 변형을 가하라. 원칙에 철저할 때에 변칙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원칙을 무시한 변칙은 반칙이다. 반칙은 추하다.”
6. “신자인 우리가 교만해져서 우리가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아시리아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바로잡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261) -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구원에 대한 진리는 기독교가 독점(?)하고 있다 할지 모르지만, 그 외의 영역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