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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오세용 지음 / 드림북 / 2007년 6월
평점 :
기대보다는 못했다.
전체가 4부로 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럴 듯 하다! ‘리더십 이론은 과연 성경적인 것일까? 리더가 된다는 것은 과연 성경적인 생각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데 2부로 넘어가면, 온통 한홍 목사의 책에 나온 실수와 오류들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런 오류들에 비추어 볼 때 리더십에 대한 내용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3부는 맥스웰과 다른 몇몇 사람들의 책들을 비판한다. 일반적인 리더십에 대한 가르침에서 발견되는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2부에 비하면 좀 나아졌다 싶지만 역시 마음에 차지는 않는다.
마지막 4부는 1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라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기대했던 내용이 바로 이런 내용이었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마음에 차지는 않는다. 빈약하다. 그리고 중간 중간 나오는 저자 특유의 ‘비꼬기’! (저자의 이런 식의 비꼬기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비꼬기에서 시작해서 비꼬기로 끝난다는 느낌!) 솔직히 추천인의 말처럼 ‘고품격 비판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보고자 했던 것은 지엽적인 문제도, 비꼬기도 아니다. 정말 ‘영적 리더십’이 성경적인 개념이 맞느냐는... 성경적인 가르침을 원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의외로 너무 간략하게 끝나버린다. 허무하다는 느낌.
2부와 3부는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고, 1부와 4부 정도는 ‘과연 그러한가...’ 하여 읽어봄 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의 결론: 인간 리더를 전혀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영적 리더십 이론은 지나치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은 선생 되지 말라고(정확히는 야고보의 말이다), 지도자라 불리우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읽으며 메모한 것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영적 리더십이란 과목을 들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내용은 분명 성경적인 리더십이어야 하는데, 성경적이라는 말은 겉껍질뿐이고 그 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세상에서 배웠던 리더십이었다. 행정학과 경영학에서 배웠던 복잡한 리더십 이론들이 신학 책에서는 마치 교회를 새롭게 만드는 이론인양 포장을 하고 앉아 있었다. 인간의 조직을 관리하기 위하여 쓰이던 이론들이 어느새 교회에서 영적인 면을 관장하는 도구로 둔갑되어 나타난 것이다.”(21) -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옥성호 집사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의 서문을 다시 보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신학만 공부한 이들이나 일반 성도들에게는 리더십이나, 심리학, 엔터테인먼트 등이 교회 안에서 ‘영적’이라는 단서가 붙여져 가르쳐질 때에 그것이 세상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경영학이나 행정 등을 배운 사람들이 이러한 부분을 더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일반적인 행정학과 경영학, 또는 일반적인 리더십을 꼭 나쁘다고, 또는 비성경적이라고 몰아붙이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세속적인, 그리고 비성경적인 행정학 경영학 리더십 이론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일반 학문이라고 해서 꼭 그것이 비성경적이고 반성경적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기에 일반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것이 정말로 어디에 기초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발견되는 비성경적이거나 반성경적인 것들을 걸러내거나 고치면 되는 것이 아닐까? 무조건 받아들이는 태도도 잘못이지만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잘못된 태도이다.
2. “그래서 이런 진단이 가능해진다. ‘영적 리더십을 설명하면서 일반적인 리더십의 모형을 먼저 제시하고, 그에 대하여 단순하게 성경적 해석을 덧붙이고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영적 리더십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듭니다(김광건).’ 분명한 것은 그러한 세속적인 리더십은 예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리더십을 빌려오게 된다면 영적 리더십이 세속화될 뿐만 아니라 결국 예수님의 ‘종이 되어 오셔서 섬김’을 ‘리더십’이란 미명하에 훼손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성경적인 리더십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을 리드하여 조직을 융성하게 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하며, 섬기는 리더십이다. 그 리더십은 사람을 리드하지 않는다. 다만 섬길 뿐이다. 진정한 ‘섬김’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아니라 서번트십(servant-ship)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22) - 일반 리더십을 꼭 ‘세속적’이라고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과학적 진리는 세속적 진리이고 과학 기술은 세속적 기술일까? 교회 건축을 한다고 할 때에 꼭 성경적인 건축학 이론이 따로 있어야 하는 걸까? 강연장의 음향 시설과 예배당의 음향 시설은 전적으로 다른 체계와 기술들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저자에게서는 다분히 ‘일반 리더십=세속적 리더십’이라는 기본 전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경적 리더십’, ‘영적 리더십’을 구성하는 부분에 있어서 반드시 ‘성경 구절’에만 근거해야 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편협하다. 일반 리더십을 아무런 평가나 분별없이 무조건 도입하고, 거기에 성경 구절로 옷을 입혀서 ‘영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절대 사절이다. 하지만 성경주의(Biblicism)처럼 모든 것을 성경에서만 뽑아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쉽사리 수긍할 수 없다. 성경적인 기준을 분명히 잡고서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3. “영적 리더십이 ‘영적’이지 않은 이유는 영적 리더십 이론이 빌려 쓰고 있는 리더십 이론의 한계로 인해 태생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일반 리더십 이론은 사람을 보는 눈이 성경과 다르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문제의 해답을 사람에게서 찾는 이론이다.”(24)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영적 리더십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리더십을 그대로 가져와 ‘영적’이라는 ‘레떼르’만 붙인 것이라면 미안하지만 사양하고 싶다. 게다가 일반 리더십 이론이(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성경의 시각과는 다르거나 반대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저자가 그 중요한 차이점으로 해답을 사람에게서 찾느냐 하나님에게서 찾느냐는 것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 리더십과 영적 리더십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4. “요셉은 주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될 수 있다’고 결의하며 열심히 일햇다. 그 결과 그는 얼마 안 가서 보디발의 가사를 돌보는 관리자가 되었다...”(27) - 저자는 요셉에 대한 스티븐 코비의 해석을 소개하면서 그것을 비판한다. 요셉이 총리대신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근거를 온전히 요셉 자신의 주도적인 노력과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요셉이 ‘긍정적, 적극적, 주도적’이 아니라 ‘부정적, 소극적, 추종적’일 뿐이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정말 저자의 지적처럼 ‘하나님’이 빠져 있다!
5. “일반 리더십에서는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그러한 특성(혹은 성격)들을 추출하여, 지도자가 가져야 할 자질로 확대하여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리더의 조건을 추출해 내는 방법과 절차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영향을 끼쳐야만 하는데, 그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는 주도적이어야 하며,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며, 열심히 일하는 근면한 사람 그리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야만 한다는 공식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그 어디에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할 수 있겠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개입할 수 있겠는가?”(28) - 그렇다! 영적 리더십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인간 편의 특성/성격보다도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영적 리더십’에 대한 이론들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를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영적 리더십 이론이 이와 같은 일발 리더십 이론의 틀과 도구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그것은 결코 ‘영적’ 리더십 이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6. “오스왈드 샌더스와 피터 와그너가 각각 주장하는 ‘영적 리더십’은 그 본질이 다르다. 피터 와그너의 영적 리더십은 영적 리더십을 교회 성장의 도구로 본 반면에 오스왈드 샌더스는 교회 성장과 리더십을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오스왈드 샌더스가 먼저 영적 리더십에 대한 책을 냈으니, 그의 영적 리더십을 효시로 본다면 피터 와그너의 영적 리더십은 원래의 리더십 방향에서 한 번 방향을 바꾼 굴절된 영적 리더십인 것이다. … 영적 리더십 이론에 ‘성공’을 이식한 존 맥스웰의 책 [열매 맺는 지도자]와 [리더십이 법칙]은 성공지상주의 리더십을 제시한다. …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각각 ‘교회 성장’과 ‘성공’을 위주로 하는 두 갈래의 리더십 이론 간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측정 방법에서 외형적인 면과 결과를 중시한다는 점이다. 조직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 곧 성공하는 리더라는 성공지상주의 리더십은 그래서 따르는 사람이 많아야 성공하는 리더라고, 세속적인 안목으로 리더십을 측정하고 있다. … 영적 리더십의 참 모습을 보려면, 현재 우리들이 보고 있는 영적 리더십 이론에서 ‘성공’이란 얼룩을 제거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 ‘교회 성장’의 도구로 쓰이고 있는 잘못도 과감히 시정해야 한다.”(33-36) - 저자는 30페이지부터 ‘영적 리더십’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교회 안에, 그리고 한국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그러면서 영적 리더십이 한국 교회 안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그것을 ‘교회 성장의 도구’로 본 미국 교회의 영향력 덕분이며, 그 후에는 맥스웰의 영향으로 ‘성공의 도구’로도 인식되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의 ‘영적 리더십’ 이론이 ‘교회 성장과 성공을 위한 도구’로서 도입되었다는 점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리더십을 평가하는 기준이 ‘성공 지상주의’라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물론 성공하지 못하고 늘 실패만 한다고 해도 리더가 되는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십 이론에 결과주의와 성공 지상주의가 개입되었다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이며, 이러한 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7. “예수님은 이 말씀(막 9:35) 속에서 섬김을 말씀하셨지만, 그 섬김은 제자들에게 으뜸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으로 언급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42) - 으뜸과 섬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과연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은 과연 우리에게 으뜸이 되라고, 지도자가 되라고, 리더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섬김을 통해서 지도자의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는가? ‘섬기는 지도자’가 되라고 하시는가? 아니면 그냥 ‘섬기라’고 말씀하고 게시는 건가? 본문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8. “리더십 주창자들은 ‘크고자 하는 마음이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 그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든지 크고 으뜸이 되라는 것이다’라고 말한 데 이어 ‘얼마든지 크고 으뜸이 되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 좋아야 하고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성경의 방법은 세상과 정반대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방법만 세상 것과 정반대로 하면 되는 것일까? 목적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면 아무리 방법을 세상 것과 반대로 한다 할지라도 이미 전제가 틀렸다. 목적 자체가 틀렸으니 아무리 방법이 다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정말 하나님 나라가 ‘거꾸로 왕국’(the upside down kingdom)이라고 한다면, 방법만이 아니라 목적도, 목표도 세상 것과는 달라야 한다.”(45) - 그렇다! 기본 정신이 바라야 한다!!!
9. “설교자는 한 (성경 속의 인물) 개인의 경건한 신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와 인도하심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브라이언 채플).”(53) - 이것은 구속사적 설교나 기독론적 설교와 관련된 내용이다. 사실 설교자로서 늘 배후의 하나님만을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모범적인 설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절충해야 할 문제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성경 인물을 들어 영적 리더십을 주장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영역을 빼버리고 순전히 인간적인 부분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10. “홍사중은 [리더와 보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성공하니까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 리더십이 있어서 성공한 게 아니라 서공하니까 리더십이 있는가 보다 라고 판단하게 된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리더십은 성공한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 그런지 리더십을 주창하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다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이다. … 리더십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실체가 없다. 리더십은 실체가 없는 허상뿐이다. 그들(맥스웰)이 입으로 리더십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느니, 많은 사람이 리더십을 원하지만 실제로 얻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70) - 뒤집어 보기! 일반적으로는 정말 ‘리더십이 있으면 성공한다’라고 주장되지만... 리더십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이미 성공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성공했으니 리더십이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리더십이니 정말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리더십이란 만능이어야 하고, 그 리더십의 이론대로 한다면 모두가 성공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리더십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한 것인가?
11.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어가는 중에 나는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예수님은 ‘리더십’에 대하여 언급한 적은 거의 없지만, ‘따르는 일’에 대하여는 무수히 많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 내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실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나의 영향력을 받는 것이다. … 리더십이란 결국 하나님이 이미 주신 축복의 열매를 따먹는 것이다. … 교회는 세상 기업처럼 돌아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철저히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한다.(한홍)”(83-86) - 저자가 한홍 목사의 책들 가운데서 ‘동의’하는 부분을 소개한 부분이다. 또 리더십과 관련된 일반적인 가르침이기도 하고... 이 정도만 이야기한다면 굳이 영적 리더십에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12. “하도 리더십 이야기를 하길래 시끄러워서 쳐다보니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가 많은지라,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다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다. 영적 리더십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말이 그릇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게 된 것이다. 그저 모르는 척 넘어가도 되는데 공연한 일을 시작해서 이 모양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113) - 사실 2부로 넘어오면서 짜증이 났다! 리더십 이야기는 없고 온통 ‘흠잡기’뿐이다! 이 부분에서 자신이 글을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이야기를 한 이후에도 계속 흠잡기로 일관하고 있다. 2부에 ‘사실인가 아닌가?’라는 부제를 달아 놓았으니 아예 작정하고 이런 내용들을 다루는가보다 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하다. 하지만 개운치가 않다.
13. “왜 그렇게 존 맥스웰을 비롯한 리더십 주창자들은 꿈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일까? 현실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면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꿈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 그 이유는 바로 리더는 관리자가 아니기 때문에 ‘리더’인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 그들은 리더와 관리자를 구분한다. … 그들에 의하면 리더는 관리자가 아니므로 관리자가 하는 일인 ‘어떻게’, 즉 방법론에 대하여 신경을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 그래서 ‘리더’는 방향을 지시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떻게’ 갈 것인가는 리더의 소관사항이 아닌 것이다.”(196, 197) - 3부로 넘어오면 맥스웰을 중심으로 하여 리더십 책들에 나오는 내용들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책에는 여러 예들이 나오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이들이 제시하는 해답은 이런 식이다. ‘어떻게 달리기에서 1등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빨리 달려라!’고 답하는 것이다. ‘어떻게 빨리 달릴 수 있나?’고 다시 물으면 ‘다리를 빨리 움직여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것이 ‘꿈 같은 이야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은 리더는 방향만 제시해줄 뿐 실제적인 방법론과는 무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비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리더십에 관한 책들 가운데서 (전부는 아니고) 이런 식의 논리를 발견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14. “‘하나님에 대한 최대의 죄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존 맥스웰).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을 그는 성공이라고 정의한다. 게다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 것이 하나님 앞에 죄라고까지 말한다.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222) - 어디서 본 듯한 논리... 어디서 봤더라?... 아! 소재찬 목사의 [설교, 누구나 잘할 수 있다]에서 본 대목이다. “하나님 앞에 설교자가 설교의 무능력을 통회하고 자복하면”이라고 말했었다. 설교를 잘 못하는 것을 회개해야 할 죄로 이야기 했었는데, 여기에서는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 최대의 죄악이랜다! 정작 죄라고 해야 할 것은 ‘질병’으로 치부하고, 죄라 하기 어려운 것은 ‘죄’라고 정죄하는...
15. “여기 ‘주도권’이란 말에 언더라인 해야 한다. 심지어 30분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감동, 충격을 주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그들이 말하는 영향력이란 용어의 속 뜻이다. 그래서 ‘영향력’은 그들에게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 교회 내에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그들은 ‘리더십이 타격 받는다’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리더십이 타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남이 나의 말을 받아’들여야만 리더십이 온전히 ‘영향력’으로 행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렇다.”(254) - 그렇다! ‘속 뜻’이 중요하다. ‘영향력’은 영적 리더십에서 핵심적인 부분인데, 그 ‘영향력’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저자는 ‘영향력=주도권’이라고 말한다. 아니, 영적 리더십을 주창하는 사람들(위의 글은 맥스웰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의 주장이 결국 그것이라고 말한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주장일까?... 한편으로는 그런 것 같이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찜찜하다. 영향력... 주도권... 한홍 목사는 “내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실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나의 영향력을 받는 것이다.”라고 했었는데...
16. “‘또 어떤 이들은 주님을 위해 큰 꿈을 꾸고 위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설교하지만, 사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자신의 야망 성취수단일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주의하여야 할 부분입니다. 과연 우리의 거창한 목표, 원대한 꿈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인간의 거창한 목표와 원대한 꿈은 언제나 ‘비전’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 ‘마치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렙 45:5)는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 자신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고, 내면의 동기와 의도를 깊이 성찰할 수 있었다.’(스펄전) 그렇듯 사람의 비전이 곧 하나님의 비전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257, 258) - 비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비전, 사람의 마음에서 만들어내는 비전... 무엇을 위해서, 어떤 동기와 의도로 그것을 원하는가?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스펄전처럼 자신을 다른 각도에서, 내면의 동기와 의도를 깊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목사라서 자동적으로 ‘통과’시켜도 되는 부분이 아니다!
17. “그들이 말하는 리더십은 인간관계를 말하며, 인간관계는 곧 처세술이다. 그래서 리더십은 다름 아닌 처세술인 것이다.”(260) - 너무 지나친 결론, 극단적인 비약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가르쳐지는 영적 리더십이란 결국 이런 것에 가깝다는 것은 사실이다.
18. “그가 보내는 시간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그가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대기업의 총수와 질적으로 양적으로 같은 모습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빌 하이벨스. 그는 분명 목사이다. 그런데 목사로서 신도들과 대화하는 모습이라든가, 신도들의 고민을 위하여 같이 기도했다거나, 심지어 리더십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영향력을 신도들에게 끼치기 위하여 개별적인 접촉을 가지는 어떠한 일을 했다는 기록이 거의 없다. … 그는 분명 복사인데도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사업가의 가정에서 자랐고 사업문제로 중역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즐겼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목회에 뛰어든 사람이다. 따라서 자기가 사업을 운영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게 단순한 번역상의 실수일까? 아니면 자기가 목사가 아니라 CEO라고 착작하는 것일까? 그래서 자기는 CEO이고 장로들과 부교역자들이 중역으로 보이는 것일까?”(268, 269) - 현대의 영적 리더십이 지향하는 리더의 모습의 표본이랄 수 있는 빌 하이벨스의 일정을 소개한 후에 하는 말이다. 과연 그는 ‘목자’이기보다는 ‘CEO’에 가깝다! 정말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
19. “목회자는 모름지기 예수님의 본을 받아 ‘직접’ 양을 치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 천안대의 장동민 교수는 그의 글 [목회의 목적을 다시 점검한다]에서 목회의 중심이 사람 중심인가, 교회 중심인가에 관한 판단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한다.”(272-) - (장동민 교수가 제시하는 내용은 책을 참고) ‘사람 중심’과 ‘교회 중심’. 저자는 목회가 사람 중심이어야 한다. 사실 그동안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교회 중심’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20. “리더십을 지위와 분리하여, 다만 ‘영향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조직의 생리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의 소리에 불과하다. 리더십이 건전하게 행사되려면 여러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그 중의 하나로 조직 내에 권한이나 책임 체계가 명확하고 건전한 조직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리더의 말이 영향력을 가지고 행사될 수 있도록 조직이 그 뒷받침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는 리더십 이론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 사이좋게 서로서로 역할을 분담해 가면서 조직의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협력해 나간다.
영적 리더십 이론은 일반 리더십 이론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가져왔는데, 미처 생각지 못하고 가져오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리더십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의 방법론이다. 그것은 바로 지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지위로 하여금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다.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은 그러한 인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위에 대해 부정하려는 모습조차 보인다. … 그렇게 리더십 행사의 기본이 되는 ‘지위’를 부정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주장하는 리더십이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위를 부정해야만, 그들이 주장하는 리더의 품성에 무게를 둘 수 있으며, 그 방향으로 이론을 전개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조직’과 ‘조직원’이 전제되지 않는데 어떻게 지위가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 하나 영적 리더십 주창자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는데, 그것은 일반 리더십 이론은 리더십 이론 자체가 독립되어 운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리더십 이론은 조직론 중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리더십 이론이 홀로 서는 게 아니라 조직을 위한 이론으로서 운영되며, 또한 그것은 조직론의 다른 이론에 의해 뒷받침을 받고 있다. 그래서 리더십 이론은 다른 조직론의 이론들과 연결되어 운영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영적 리더십 이론은 리더십 이론만을 떼어 오는 바람에, ‘핏줄’은 버려두고 ‘살’만 떼어 온 격이다. 일반 리더십에서는 그것이 몸인 다른 ‘조직론의 영역’과 연결되어 있어 피를 통해 영양분이 공급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리더가 많아지면 리더들 간에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는데 그런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 바로 ‘지위’이다. 지위를 많이 만들어서 리더들 간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자리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위에서 나오는 리더십은 열등한 것이라고 영적 리더십에서는 생각하고 있으므로 대부분의 리더가 지위에 근거하여 리더십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된 리더의 품성, 인격에서 나오는 리더십으로 착각하게 된다.
리더십이란 주제 하에 써진 글들을 살펴보면 거의 리더십의 입구에서 뱅뱅 돌면서 ‘리더가 되라’고 외치기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바로 거기까지다. 영적 리더십에서는 리더십을 행사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저 리더가 되라는 구호를 외치고 말 수밖에 없다. 당신도 리더가 될 수 있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품성을 개발해라. 리더가 되려면 이러이러한 일을 해라. 비전을 가져라, 등등. 공허한 구호만을 지금까지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리더가 되라는 것에 치중하다 보면 자연 리더십의 영역을 아주 축소되고 단순화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영적 리더십에서는 리더십과 관련 없는 것들을 리더십의 영역 속으로 끌고 들어오게 되었다. 첫 번째, 그들은 리더를 양성하는 것을 리더십의 영역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리더를 양성한다는 것은 리더십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리더 양성은 단지 조직의 목표달성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거쳐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둘째로, 더 나아가서 후계를 기르는 것까지 영적 리더십의 영역 속에 집어넣고 있다.
더 나아가, 요즘 나오는 영적 리더십의 주장을 보면 목회의 거의 모든 분야를 리더십의 영역으로 넣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팀목회의 도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설교도 교육도 리더십이다. 어떤 분은 심지어 건강도 리더십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과연 리더십이 끝은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대화의 기술, 시간관리, 유모어도 이제 영적 리더십의 영역 안으로 집어넣었다.”(280-292) - 말이 필요 없다. 결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21. “문제는 아직까지도 그들이 한치 앞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직원 모두에게 리더가 되라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경영이론에서 ‘경’자만 공부해오 알만한 것 아닌가? … ‘배우기 위해 따르던 성도가 어느 정도 배우게 되면 자신의 의견을 내게 된다. 그때부터 배움을 주던 리더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리더 적체 현상이 발생된 것이다.’(이상수)
잠깐, 여기에서 최고 리더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리더에도 ‘최고’가 있고 ‘최고가 아닌 리더’가 있는가? 리더가 하도 많으니 이제는 리더에도 종류가 있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라. 모든 사람이 리더가 되었으니 자연 리더들 가운데에서도 구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모드 s성도들을 리더가 되라고 부추긴 리더십 주창자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또 하나의 문제이다. 그래서 그들은 리더라는 말에 계층을 나타내는 말을 붙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한다. 리더라는 말 앞에 다시 무언가를 붙여 ‘그냥 리더’와는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고 리더’, ‘톱 리더’, ‘핵심 리더’ 등등.”(304, 306, 307) - 실제적인 문제를 예로 들어 영적 지도자론을 반박한다.
22. “사람에게는 영적 리더십이 없다는 것이다. 영적 리더십은 사람이 아닌 오직 성령님만이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321) - 그리고는 영적 지도자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동의를 얻어낸다. 영적 지도자론 주창자들 가운데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글들을 죽 소개한다. 그 중에서 하나.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을 올바르게 관리할 수 있다는 명제가 타당한 것으로 증명된 것은 한 번도 없다.(피터 드러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