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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리 -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옛 사람의 내면 풍경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미쳐야 미친다]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저자의 책이다. 그의 책, 그의 글은 부담스럽지 않다. 편하다. 그러면서도 감동이 있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우리 이야기여서 그런 걸까?(물론 중국 이야기도 많고, 이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일본 이야기도 나오지만, 동일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라서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일까?) 더 쉽게, 더 많이 감동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어가며 점점 더 옛 어른들의 ‘선비’ 정신이 그리워진다. 무릇 ‘공부’란 사람이 되어가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이 못내 마음 아프다.
아, 그리고... 한문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읽으며 메모한 것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글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고전의 바다 속에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구슬이 너무나 많다.”(9) 아, 아름다운 표현! 그리고 동감되는 ‘사실’!
2.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를 읽어보니 중세 유럽에서도 책은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었다고 한다. 암브로시우스가 묵독하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눈으로만 읽은 묵독(黙讀)은 그 비밀스러움 때문에 요사스럽게 보였던 모양이다.”(18) 암브로시우스의 묵독 이야기는 어디선가 보았는데... 찾아보니 C. S. 루이스가 쓴 [개인 기도]에 나오는 대목(71p)이다.
3. 옛 선비들의 독서와 독서의 목적 “옛 선비들에게 있어서 독서란 곧 세상을 읽고 나 자신을 옳게 아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서책에서 얻는 정보는 물질의 이익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 삶의 내적 충실을 높이는 데 쓰였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삶의 극적인 전환,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 앞에서 독서는 언제나 큰 힘을 발휘했다. 그것은 자기 합리화의 그럴듯한 변명을 제공하는 대신, 대의의 길을 당당히 걷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독서의 목적은 지혜를 얻는 데 있었지, 지식의 획득에 있지 않았다.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이 모두 독서에서 나왔다. 책 속의 구절 하나하나는 그대로 내 삶 속에 체화(體化)되어 나를 간섭하고 통어하고 영향력을 발휘했다.”(25, 44) 오늘날 대중의 독서와 그 목적은 어떤가? ...
4. “‘우리 같은 무리는 단지 물 마시고 밥 먹고 잠만 퍼잘 뿐’이라고 부끄러워했다. 그의 부끄러움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37) - 부끄러운가... 부끄러워하는가?... 부끄러움 없는 시대... 부끄러움 없는 사람들...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 하나 더! 이만부의 [부끄러움을 닦는 법]이라는 글은 원문이 모두 98자인데 이 가운데 부끄러울 치(恥)자가 무려 35회나 나오는 재미있는 글이다. 장난끼가 잔뜩 담겨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전체를 다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 그 중 첫 머리만 잠깐... “부끄러움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이 있다. 때문에 부끄러운데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능히 부끄러움이 있게 되고,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면 능히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하략)”(145)
5. “일제 시대에 나온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는 지금도 대학 교수들이 주석을 달아 수업교재로 쓴다. 그런데 이 책은 그가 20대에 학부 졸업논문으로 쓴 것이다.”(45) - 놀람! 오늘날의 교육과 당시의 교육... 재질의 차이도 있을까?...
6. “도스토예프스키는 ‘세상에는 인간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책만 있고, 인간에 관한 책은 없다’고 통탄했다.”(46) - 마치 J. I. 패커가 [Knowing God]에서 하나닝에 대해 아는 것(Know about God)과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은 다르다고 말한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우리는 늘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부수적인 것’에 집착한다.
7. 재주, 부지런함, 그리고 깨달음! “어떤 사람은 간신히 백여 권의 책을 읽고도 종이를 펼쳐 붓을 내달리면 쟁그랑 소리를 울리며 환히 빛나, 만권의 책을 외우는 자가 뒤에서 눈이 휘둥그래지기도 한다. 간혹 똑같이 한 권의 책을 읽었는데, 한 사람은 한 글자도 남김없이 외웠어도 식견이 늘지 않고 저작에 볼 만한 것이 없으며, 한 사람은 반 너머 잊어버렸지만 그 핵심 되는 알맹이는 모두 섭취하여 폐와 간에 깃들여 이를 펼쳐 글로 지으면 이따금 방불하게 되곤 한다. 어째서 그럴까? 재주는 부지런한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47) - 정말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이치! 적게 읽는 것보다 많이 읽는 것이 더 낫기야 하겠지만, 깨달음이 없다고 한다면야...
“오직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손 가는 대로 펼쳐 봐도 핵심이 되는 것에 저절로 눈이 가서 멎는다. 한 권의 책 속에서 단지 십 수 장만 따져보고 그만둘 뿐인데도 그 효과를 보는 것은 전부 읽은 사람의 배나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두세 권의 책을 읽고 있을 때에 나는 이미 백 권을 읽고, 효과를 보는 것 또한 나보다 배가 되는 것이다.”(48) - (앞의 문장과 여기 나오는 문장은 홍길주의 글이다.) 그런 사람! 다치바나 다카시가 자신의 독서 방법, 혹은 연구 방법을 소개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 한번 죽 훑으며 단락의 첫 문장들 위주로 본 후에, 다시 읽으면 중요한 부분에 저절로 눈이 가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성(悟性)이 열려야 한다. 깨달음 없이 그저 독서 목록만 추가한다면 그야말로 한갓 읽기만 하는 ‘도능독(徒能讀)’의 독서일 뿐이다. 오성은 재주만으로는 안 되고 노력이 없이는 더더욱 안 된다. 깨달은 사람의 독서는 다르다. 그냥 훌훌 넘겨도 책 한 권의 양분을 온전히 섭취한다. 멍청한 사람의 독서는 다르다. 밑줄을 쳐 메모를 해가며 읽어도 읽고 나면 머릿속이 휑하니 남는 게 없다.”(49) - 이는 저자의 설명이다. 이 설명으로 본다면 다카시의 경우를 홍길주가 제시하는 경우와 일치시키는 것은 좀 어려울 듯 하기도... 단지 외적인 흡사함 뿐일까?
“세상에서 말하는 도술(道術)이나 문장이라는 것은 부지런함으로 말미암아 정밀해지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진실로 능히 깨닫기만 한다면 지난날 하나를 듣고 하나도 알지 못하던 자가 열 가지 백 가지를 알 수 있다. … 옛날에 천권 만권의 책 속에서 찾아 헤매던 것이 한두 권만 보면 너끈하게 된다. 하지만 깨달음의 방법은 방향도 없고 실체도 없다. 잡을 수도 없고, 묶어둘 수도 없다. … 옛날에 성련이라는 사람이 바다의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보다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는 정말로 그랬다. … 대개 성련의 깨달음은 열 해 동안 깊이 생각한 힘으로 된 것이지, 하루아침 사이에 어쩌다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깨달으라고 권하기보다는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것이 낫다. … 도술과 문장을 사모하는 것은 우러러 한번 생각해보는 것만 못하다.”(50, 51) - 김택영의 글이다. 깨달음의 효용과 그 예, 그리고 그것의 적용에 대한 내용이다. 특별히 깨달음과 생각을 연결시킨 것은 생각을 통해 깨달음에 들어간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생각은 깨달음을 위한 기초적인 요건이 된다는 지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생각한다고 해서 반드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8. 산 독서 vs 죽은 독서 “그(김창흡)은 독서에는 산 독서와 죽은 독서가 있는데, ‘책을 덮은 뒤에 그 내용이 또렷이 눈앞에 보이면 이것이 산 독서이고, 책을 펴놓았을 때에는 알았다가 책을 덮은 뒤에 망연하면 죽은 독서’라고 말했다.”(53) - ‘깨달음’을 말한 것이라 보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고 그것의 ‘암기’도 함께 의미하고 있는 듯... 그만큼 당시의 독서법과 우리의 독서법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읽는 방법에서도(당시에는 모든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 내용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도(우리의 ‘이해’라는 것과 당시 사람들의 ‘암기’와 동일한 ‘이해’)...
9. 기록에 대한 애착 “기록에 대한 선인들의 집착은 때로 병적으로 보일 정도다. 편지를 써도 꼭 한 벌을 따로 베껴두었다. … 요즘 어느 누가 편지를 보내면서 그 편지를 복사해둘까?”(65) - 예전에 편지를 즐겨 쓸 적에는 복사해 둔 적도 있었다. 또 요즘 메일의 경우는 보내면서 보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전혀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기록에 대한 ‘집착’ 또는 ‘애착’은 배울 필요가 있는 듯...
10. 자기 작품을 아낌에 대하여 “훌륭한 작가만이 자기 작품을 아낀다. 자기가 아끼지 않는데 어떤 독자가 그 작품을 아끼겠는가?”(68)
11.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라는 글(79-)은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시집가는 딸이 베껴서 가져가고 싶어 했던 소설책,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채 못 베낀 것을 아버지와 사촌 동생, 친 동생과 조카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이 동원되어 필사하여 보낸다. 그리고 거기 덧붙인 편지 끝의 한 마디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저자는 잘 묘사해 놓았다.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뒤늦게 친정에서 보내온 이 책을 받아든 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때 소설은 그저 단순한 이야기책일 수가 없다. 그리운 아버지, 보고 싶은 동생과 친정 식구들 생각이 날 때마다 그녀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필사기가 적힌 마지막 장에는 그녀의 눈물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부모의 이런 마음이 딸에게는 그 힘든 시집살이를 견뎌낼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붓으로 베껴 쓴 옛 소설책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참 많다.”(82)
백광훈이 자녀들을 훈계하며 쓴 편지는 따끔하지만 역시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듣자니 너희가 자못 남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있고, 또 남의 허물 말하기를 좋아한다 하더구나. 사람이 배우는 것은 다만 이러한 병통을 없애려 함인데, 이제 너희가 만약 정말로 이와 같다면 비록 만 권의 글을 배워 곧장 과거에 급제한다 해도 그 사람을 어디에다 쓰겠느냐? 놀라고 절통하여 죽고만 싶구나. 이후로도 너희들이 이 같은 버릇을 딱 끊지 못하고 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맹세컨대 다시는 너희들을 보지 않겠다.”(86)
12. 저자의 글 가운데 ‘박지원’에 대한 글이 띄엄띄엄 나온다. 그의 식견, 그의 탁월함, 그의 인물 됨... 예전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솟아오른다!
“늘 빽빽한 한자의 숲 속에 산다. 옛 글 하면 고리타분한 생각부터 든다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그 속에서 노는 나는 사람 냄새 물씬하고, 때로 죽비로 뒤통수를 내려치는 듯한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에 빠져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을 때마다 사람을 긴장시키고 놀라게 하는 글이 있다. 연암 박지원의 글이 그렇다.”(95) 그리곤 ‘빛깔과 때깔’에 대한 박지원의 글과 그에 대한 디자인과 교수의 지적을 소개한다. 그것은 ‘명도와 채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선비들의 가난한 삶, 집안의 물건들과 심지어는 책까지 팔아서 끼니를 이어야 했던 모습을 그리면서도 박지원을 언급한다. “며칠을 굶다가 이대로는 굶어죽겠다 싶어 못쓰게 된 각기소리라도 팔아먹을 생각으로 집어들다가, 우레소리에 놀라 그나마 망가뜨리고 말았다. 그 높은 뜻에 안쓰런 궁핍이 읽는 이를 민망하게 한다. 박지원이나 이덕무나, 아니 김용준까지도 책을 팔아 밥을 먹던 가난은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그 절대 궁핍 속에서 그들은 찬연한 문학의 꽃밭을 일구고, 학문의 열매를 맺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나는 무언가? 아! 부끄럽구나.”(117) - 그렇다! 부끄럽다. 나 역시도...
저자는 책의 말미(‘글뒤에’)에서 다시 한 번 박지원과 에코를 비교하여 말한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 가서 코끼리를 처음 대면하고 받은 충격에 대해 쓴 [상기(象記)]를 읽었다. 코끼리라는 기호를 통해 우주 만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고민한 글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보니 낙타를 두고 비슷한 내용으로 쓴 글이 있다. 250년 전 연암의 논리가 현대 서구의 기호학자의 입에서 앵무새처럼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에코에게 연암의 이 글을 읽게 하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글을 읽는 내내 이러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252) - 우리는 우리 것 보다 남의 것에 훨씬 더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저자는 무조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주장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잘 지적해주고 있다. 무조건 좋다고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좋은지 나쁜지에 앞서 무엇이, 어떤 것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13. 신의! 사람 vs 짐승. “사람이 귀한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함께 지내며 즐거워하다가 헤어진 뒤에는 서로를 잊는다면 그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123) 다산 정약용이 18년의 유배가 풀려 강진을 떠나면서 제자들과 헤어지면서 한 말이다. 저자는 다산의 제자들이 어떻게 매년 그를 찾아뵈었는지를 소개한다. 참 부러운 모습이다. 함께 있을 때는 즐겁게 지내지만 헤어진 후에는 연락조차 없고,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조차 없는 우리의 현실이 슬프다. 사람과 짐승...
14. “일단 소음에 길들면 가끔씩 찾아드는 정밀(靜謐)의 시간이 오히려 감내하기 어렵게 되는 모양이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도리어 불안하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침묵이 가져다주는 미덕을 잊은 지 오래다. 내가 나를 만나본 지가 언제였던가?(169, 170) - 기독교의 수도자들이 외로움과 고독을 분별하여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난다. 외로움은 곁에 사람이 없어서 느끼는 허전함이지만, 고독은 스스로 찾는 홀로 있음이다. 후자는 때때로 가져야 하는 것이요,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는 좋은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정밀의 시간’이다.
“명나라 진계유는 [안득장자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뒤돌아본 뒤에야 전날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에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170) -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미쉘 꽈스트 신부의 [삶의 모든 것]이라는 책에 나오는 ‘전화’라는 글이 떠오른다. 전화를 끊은 후에야 상대방이 왜 전화했을까를 떠올렸다며, 자기 말만 주절거린 것을 회개하는 기도문 형태로 쓰여진 글... ‘지난 후’에 알게 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겠지...
15. “뭇사람 속에서 그 사람을 천번 백번 찾았네(衆裏尋他千百度)”(172) - 저자는 이 말이 ‘고인의 시구’라고 소개하면서, 연구실에 이 글씨의 전각을 표구해서 붙여놓았다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만남을 기다리면서... 짧은 글이지만 무척 마음에 와 닿는다. 아니, 내 심장에 날아와 콱! 꽂힌다! 내게도 그런 만남이 있기를...
그러면서 저자는 이용휴를 찾아간 이단전, 그리고 황헌지가 찾아갔던 양흔이라는 소년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리곤... “법은 이렇게 전해져 왔다. 스승과 제자의 그 아름다운 만남을 이제 어디서 찾을까? 겨울비 내리는 연구실에 앉아 뭇사람 속에 숨어 있을 그 한 사람을 기약없이 나는 기다린다.”(174) - 아!
16. 아내가 달인 약은 양이 일정치 않아 화를 내고, 첩이 달인 약이 양이 일정하자 사랑했는데, 첩은 양이 많으면 땅에 쏟고 적으면 물을 탔다는 이야기. 역시 박지원의 [마장전]에 나오는 이야기다(197). 연암이 가르치는 아첨의 3단계. 상첨(上諂)은 겉으로 무관심한 척하면서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 중첨(中諂)은 비위에 맞는 말을 하며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 하첨(下諂)은 하는 말마다 옳고 하는 일마다 훌륭하다고 하는 것(197-198). 재미있는 분류다.
17.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학문의 즐거움]에서 프랑스의 수학자 푸앵카레라는 사람의 “창조란 버섯과 같다”는 말을 인용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송이버섯은 생장에 좋은 조건이 계속되면 결코 포자를 만들지 않고 뿌리로만 살아가다가 노화해서 죽어버린다. 그런데 급격한 온도의 변화 등 갑작스레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제서야 포자를 만들어 계속 발전해나가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송이버섯 중에는 5백년이나 뿌리 상태로만 있다가 말라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201) - 저자는 이제 슬슬 일본 사람들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국 사람치고 일본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편견’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일본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도 양심적인 이들이 있으니까.
저자는 ‘일본 고전 산문의 매력’에서 요시다 겐코, 나카노 고지, 마츠오 바쇼, 사이교 법사 등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동안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 또한 선조들의 이런 해맑은 정신을 다 잊어버린 모양이다. 따뜻한 마음을 지녔던 이웃에게서 섬뜩한 전제주의의 광기만을 느끼게 되는 것은 왠지 좀 슬프다.”(214).
18. ‘달랠 길 없는 마음’이라는 내용은 저자의 표현처럼 ‘뭔가 말하기 어려운 마음의 무늬’를 느끼게 된다. 슬프면서도,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리고 묘한... “일본의 와카나 하이쿠에는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 있다. 한국의 한의 정서와 비슷하기도 하고, 꼭 같지도 않은 무언가 뭐라 말하기 힘든 마음의 무늬가 있다. 며칠 앓느라 마음이 맑게 비어서였을까? 오늘 따라 더 애잔하게 읽힌다.”(215) - 꽤 오래 전에 이현주 목사가 번역한, 하네다 노부오의 [겨울부채]와 아이다 슈이치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를 읽고는 하이쿠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류시화가 편역한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하이쿠 모음집도 사놓았었는데 읽지는 못하고 있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하이쿠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느낀다. 특히 [바쇼의 하이쿠 기행]이라는 책에 관심이 많이 갔다. 한 번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19. 꿈과 현실 “헬더 카마라 대주교는 말했다. ‘꿈은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라고.”(231) - 함께 꿈꾸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여라!!
20. ‘글쓰기와 병법’(232~)은 이 책의 마지막 꼭지다. 그는 여기에서 현대의 ‘논술’ 교육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독서’에 대한 책을 ‘글쓰기’에 대한 짧지 않은 이야기로 끝맺는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읽기는 결국 쓰기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둘은 순서가 반대일 뿐이요, 그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 역시 그의 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심심치 않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21. 몇 가지 일화들...
1) 김득신 “머리가 나쁘기로 유명했던 김득신은 [사기]의 ‘백이열전’을 1억1천1백번이나 외워, 그 호를 억만재라고 했다. 옛날에 1억은 10만을 나타내는 숫자다. 그는 말을 타고 가면서도 글을 외웠다. 그렇게 많이 외운 ‘백이열전’을 중간에 깜빡 잊어버렸다. 그러자 곁에서 고삐를 잡고 있던 하인이 막힌 부분을 잊어버렸다. 하도 많이 들어 뜻도 모르고 외운 것이다. 머쓱해진 김득신은 네가 나보다 똑똑하니 내 대신 말을 타고 가라며 종을 태우고 자신이 고삐를 잡고 갔다.”(16) - 해학!
2) 화담 “화담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왜 우는가?’ 대답하기를,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이제 스무 해나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는지라 기뻐 돌아가려 하니, 골목길은 갈림도 많고 대문은 서로 같아 제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웁니다.’ 선생이 말하기를 , ‘내가 네게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이에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믿고 도달할 수 있었더랍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빛깔과 형상이 전도되고, 슬픔과 기쁨의 작용이 되어 망상이 된 것이지요. 지팡이를 두드리면 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관건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보증이 됩니다.”(138-139) 이는 박지원이 ‘창애에게 답하는 글]이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설명을 단다. “도로 눈을 감으라는 말은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뜻이다. 그저 장님 주제로나 살라는 말이 아니다. 마음의 눈이 닫히면, 육체의 눈은 있으나 마다 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된다. 눈을 뜨자 정말로 장님이 되어버린 장님과, 장님이 되고서야 마음의 눈을 뜬 장님 중 누가 더 나은가? 나는 혹시 길에서 울고 있는 눈 뜬 장님이 아닐까?”(139) - 깨달음!
3) 관아재와 겸재의 이야기 “관아재 조영석과 겸재 정선은 모두 유명한 화가가. 한번은 관아재가 겸재에게 지나가는 말로 말했다. ‘저 문설주 위 빈 곳에 언제 그림 하나 그려주시지요.’ ‘그럼세.’ 그러고는 그려달란 사람이나 그려주겠단 사람이나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꽤 시간이 흘렀다. 달빛 훤한 어느 겨울 밤, 겸재가 막내아들을 앞세우고 불쑥 관아재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쓰다 달다 말없이 하는 말. ‘벼루에 먹을 갈게. 내 오늘 전날의 약속을 지키러 왔네.’ 그러더니 문설주 위에 몰아치듯 붓을 휘둘러 절강의 가을 순식간에 그리는 것이었다. 그 필세가 어찌나 기이하고 장하던지, 붓끝에서 우르르 쾅쾅 파도가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그림을 마치고 붓을 던지자, 이번엔 관아재가 그 붓을 들어 그 곁에 썼다.”(140~) 그러곤 저자는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더 실감나게 상황 설명을 다시금 한다. 여기까지 읽으면서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 설명 중에 뜬금없이 “이튿날 이 소문을 들은 이병연이 그림을 구경하겠다고 찾아와서 시 한 수를 더 남겼다.”(142)고 써놨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순간 화선지에 먹물 번져나가듯 번지는 ‘부러움!’ 그립다. 이런 사람들!
4) 김종서와 황희 “황희가 정승이 되었을 때, 공조판서로 있던 김종서는 천성이 뻣뻣하여 그 태도가 자못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삐딱하게 비스듬히 앉아 거드름을 피우곤 했다. 하루는 황희가 하급 관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김종서 대감이 앉은 의자의 한 쪽 다리가 짧은 모양이니 가져가서 고쳐 오너라.’ 그 한마디에 김종서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사죄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뒷날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내가 육진(六鎭)에서 여진족과 싸울 때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속에서도 조금도 두려운 줄을 몰랐는데, 그때 황희 대감의 그 말씀을 듣고는 나도 몰래 등 뒤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네.’ 정식을 한 꾸지람보다 돌려서 말한 그 한마디가 이 강골의 장수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게 했다.”(165) - 황희의 그 기지!
5) 매천 황현 “1910년 8월, 한일합방의 소식에 음식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전남 구례 월곡리의 집에서 ‘나라가 선비 기르기 5백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 죽는 자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라!’하는 유서와 ‘절명시’ 네 수를 남기고 아편덩이를 삼켜 자결하였다.”(176) - 아! 가슴 깊이 / 굵은... 길따란 / 살이 날아와 / 푸~ㄱ / 박히는 듯! / 무어라...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겨우 ‘기개!’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곤 뒤에 나온 루쉰의 글(179)을 보며 마음이 더 아팠다. “사실상 나라가 망할 때마다 순국하는 충신이 몇 명씩 늘어나지만, 그 뒤에는 아무도 옛것을 되찾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오직 그 몇 명의 충신들을 찬미할 뿐이다.”(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