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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나무]를 읽은 지는 한참 되었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여러 방면으로 사고(思考)에 자극을 받았던 터라 기대감을 가지고 구입한 책이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서 책을 읽는 즐거움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주를 항해하는 초대형 범선, 그 안에 탄 14만4천명(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를 반영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천년동안의 여행(이것 역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년왕국을 반영하는 것일까?)...
책은, 베르베르의 책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파피용이 발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금은 지루한 듯도 하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하다. 2부는 발진 이후 목표로 했던 행성까지의 여행 과정을 다루는데, 1부가 좀 지루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2부는 천년의 기간을 지나치게 간략하게 묘사하고 지나간다는 느낌이다. 3부는 그나마 좀 새로운 발상들을 발견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인간]에서 보게 되는 구도가 적용되면서도 그것을 조금 비틀어 보이고는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에야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발견하게 되는 창세기와 또 그와 관련된 유대의 전설에서 채용한 이야기의 변용(變容).
2. 실험! 이것은 실험이다. 사람이 세대교체가 빠른 동물이나 식물을 놓고 몇 대에 걸친 실험을 하듯... 천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기록이다. 그러나 정작 그 실험의 내용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제한’된다.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상상력이 튀어 나가는 방향을 예상할 수 있는가?), 다른 한 편으로는 작가의 생각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용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베르베르가 그동안 썼던 책들의 내용들이 부분부분 채용되고, 그 가운데서 발견되었던 작가의 경향성은 이 책 전반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파피용에 승선시킬 필요조차 없다고 배제되었던 부류(정치인, 군인, 그리고 종교인)... 그렇지만 이들은 천년의 역사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출연한다. 그리고 14만4천의 인류는 ‘자연스럽게’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6명으로, 그리고 다시 2명으로 줄어든다.
한편 작가는 이야기의 결말을 의도적으로 ‘창세기’와 그와 관련된 유대 전승들과 연결시킨다. 야훼, 아담, 릴리트, 뱀, 이브(에와-하와)... 작가는 성경의 내용을 ‘비신화화’(de-mythologie) 한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그렇게 해서 스스로 벗겨낸 이야기를 다시금 ‘재신화화’(re-mythologie)하고 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가서 한 마디 한다.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렇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인류 역사의 ‘반복’에 대한 기록에 불과하다. 그토록 탈출하고 싶어 했지만 결코 탈출할 수 없었던 ‘인간성’! 과연 반복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단지 ‘소망’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3. “사람들에게는 노예 기질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정말로 자유가 주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어. 반대로 권위와 폭력 앞에서는 안도감을 느끼지.”(216p) 엘리자베트의 말이다. 사람의 심성, 마음이 가는 길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듯...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자유를 두려워하는...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것이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