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인간 2
김성진 지음 / 어진소리(민미디어)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 1권에서 이야기하던 내용(작가적 상상령에서 동의하고 배웠던 부분과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이어가도록 하자.

6) 오병이어 사건과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던 시도를 ‘므나헴’과 연결시킨 것(30p 이하)은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꽤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

7) 오병이어 사건이 당시의 민중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을 것인지에 대한 지적(40p) 역시 매우 타당성 있는 묘사라고 생각된다.

8) 가룟 유다나 시몬 등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대목(171p)은 조금 아쉬웠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그리고 이 소설 전체적으로도) 제자들의 시각과 입장을 순전히 ‘정치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한다. 물론 이런 부분이 있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분명 그런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의도’만이 전부였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9) 야고보와 요한이 보좌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한 부분에서 작가는 예수님이 매우 노하셨다고 묘사한다(200p). 하지만 성경의 기록을 보면 정말 예수님이 그처럼 극도로 분노하셨다고 확신 있게 말하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는 화가 나셨을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책망하시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느 정도 인정하시는 듯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10) 최후의 만찬 시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너무 시몬 위주로 기록하다 보니 성경에 기록된 일반적인 시각을 놓치고 있다. 물론 1인칭 시점으로 기록하다 보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기록할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예를 들어 제자들 전부가 결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대목 같은 것은 여기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소설 속의 시몬은 어딘가 제3의 장소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점들을 빼먹은 것은 사실상 1인칭 시점이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변명할 수 없는 것 아닐까?

11) 겟세마네로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사람들 가운데 ‘로마군’(237p)은 없었다. 성경은 한결같이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마 26:47),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막 14:43),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눅 22:52),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요 18:3)이라고 기록한다. 여기 나오는 ‘군관’ 혹은 ‘군대’는 대제사장에게 속한 성전 경호를 맡은 유대인들이지 로마의 군사들이 아니다.

12) 여기에서 이 책이 주제로 삼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나온다. 과연 가룟 유다는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한 것 뿐일까?(244p) 하나님의 ‘예정’을 그렇게 운명론적, 결정론적으로 본다면 가룟 유다가 “왜 나냔 말이야?”(254p)라고 절규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하지만 작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예정’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이 그것을 허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주제는 신학적으로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으니, 그것이 소설에 의해서 완전하게 설명되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 것이다. 아니면 그냥 ‘소설’로 치부하고 간과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

13) 작가는 민중의 태도 돌변(예루살렘 입성 시 그렇게 환영했던 사람들이 4일 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주장하게 된 것)의 이유로 예수님이 민중을 배신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제시한다(248p). 이것은 소설의 스토리상 매우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묘사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너무 정치적’인 쪽으로 치우친 해석이 아닐까?

한편, 이 부분에서 작가가 ‘예수님의 배신’과 ‘가룟 유다의 배신’을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

14) 작가는 빌라도가 민중이 바라바를 요구할 것을 미처 예상치 못했다고 묘사한다(249p). 하지만 성경은 빌라도가 먼저 바라바와 예수 중에서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고 기록한다.

* 이 부분에서 ‘성경’을 소재로 한 ‘소설’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성경이 분명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 ‘행간’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것은 스토리의 진행상 ‘타당성’만 있다면 굳이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을 그것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거나, 그것을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내용을 제시한다면, 그것이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순수하게 작가의 상상력에만 근거하는 픽션과 역사적인 실제 사건과 관계를 맺는 팩션 사이의 차이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역사 사건을 ‘왜곡’했다는 식으로 공격 받을 수 있는 것이 팩션이라고 한다면, ‘성경의 기록’을 왜곡한 것으로 욕먹을 수도 있는 것이 성경과 관련된 팩션의 ‘운명’(?)이 아닐까? 성경의 내용을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작가적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성경을 기본으로 한 소설’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전에 봤던 김성일의 [제국과 천국] 같은 책은 이러한 딜레마를 상당히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1권 ‘독서 일기’에서 지적한 것처럼... 책의 마무리가 상당히 허전하다는 점이다. 좀 더 완만한 결말을 위해서는 약 반권 정도의 분량이 더 할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또한, 사건의 결말을 꼭 그렇게 ‘장안나’와 ‘장목사’ 사이의 수치스러운 문제로 이끌어가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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