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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빛
토마스 머튼 / 성서와함께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1. 성경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신학적인 지식을 주는 책은 아니다(비록 신학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실존적인 지적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다보면,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내적 충동을 경험한다.
2. 성경의 ‘일방적인 성격’에 대한 지적. “어떤 것도 배타하지 않고 긍정한다”(21p)라... 정말 그런가? 진리는 그 자체로 ‘배타성’을 가진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긍정하는 것이 과연 ‘진리’일 수 있을까? 물론 진리는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리의 보편성은 배타성과 배치되지 않는다. 그 둘은 함께 가는 것이다.
3. 인용하고 있는 칼 바르트의 말은 생각해봄직 하다. “성서는 어떤 책인가?”라고 묻는 이들을 향해 성서는 “성서를 읽는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되묻는다고(43p)...
4. 본회퍼의 말도 인용하고 있다. 성서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할 신부/목사들의 성서에 대해 갖는 반감에 대하여(44p)... 이것은 생각지 못했던 주제다! 그러나 일리가 있다! 그러고 보니 머튼은 가톨릭 신부인데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인용하고 있다. 상당한 정도의 지식!
5. 우리의 ‘사변적인 물음’에 대한 성서의 ‘지독하게 실제적인 물음’(49p)! 만일 우리가 성서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요청한다면, 성서는 우리에게 언제 삶을 시작하겠느냐는 물음으로 답한다. 다시 칼 바르트의 말. “우리가 묻는 물음은 우리를 묻는 물음이 된다!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예’와 '아니오‘ 사이의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57P).
6. 전문학술의 광야(58p)!! 정말 그렇다! 구약학 책을 읽으면서... 학자들 누가 뭐라고 했고 누가 뭐라고 했는지를 나열한 것들을 보는 것은 고역이다. 문서설, 종교사학파... 정말 ‘전문 학술의 광야’다! & 메마르고 초점 잃은 탐구(59p).
7. 성서 읽는 습관이 든 사람들은 자기의 설정 때문에 성서를 깊이 읽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성서는 지금까지 ‘신앙’으로 여겨진 것들을 위협할 수 있다(61p)!!! 아... 절묘한 문장들!!
8. 불신자가 성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65p)! 이태리 마르크스주의자인 파솔리니가 마태복음을 읽고 만든 영화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기성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시각에서는 놀라웠으나 마태복음에는 더 가까웠다는 이야기...
9. 성서를 진지하게 읽는다는 것! = 성서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성서를 진지하게 읽지 않는다)! 나단 앞에 선 다윗의 모습을 보라! 스스로를 정죄하게 된 다윗(75p)! 성서는 정직하지 못한 복종보다 솔직한 항변을 더 좋아한다.
10. 들려지던 책으로서의 성서(92p)!!! 딜시의 이야기...
11. 성서와 다른 고전의 차이점. 성서가 더 잘 보여주는 것이 있는 반면에 다른 고전이 더 잘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 그러므로 다른 고전이 더 잘 보여주는 것을 성서에서 찾으려 하지 말라(103p)!
12.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인용들... 본회퍼의 말(109-110pp)... “하나님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지식을 채우는 분도 아니요, 개인저인 문제와 인간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의 원천인 분도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에야 만나게 되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A) “오히려 반대로 그분은 우리 실존의 바탕이고 중심이시며, 비록 우리 자신이 그분을 향해서 가고 있고 일상생활의 울타리를 넘어 그분께 이른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출발하고 우리의 실존과 현실의 근본 바탕인 그분 안에서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다.”(B)
A와 B는 내가 편의상 나눈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 A의 부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본회퍼가, 그리고 머튼이 그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A의 부분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근본적인 B 부분을 강조함으로서 A가 찾아야 할 바른 자리를 찾아주고자 함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한계점에 도달해서‘도’(도달해서‘야’가 아니라!)만나야 하는 분이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가 한계선상에 있을 때만 하나님을 의식하고 인정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본회퍼도 머튼도 그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보다 근본적인 부분(B)에서부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해결책, 해결사, 열쇠로만 보는 시각을 경계하라! 존 포웰의 말처럼 하나님은 아스피린이 아니시다!!! 이것이 본회퍼의 긍정적인 “하나님 없이(A) 하나님 앞에(B)”의 배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3. 성서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라(115p)!! 형이상학, 윤리학, 황홀경, 명상, 신학, 철학... No! 성서를 어떻게 읽을까? 성서를 성서로 읽어라!!! 성서를 우리의 선입견과 틀로 제한하지 말라(116p)!! ‘축소론자들의 기준’ = 일반화의 위험성!
14. 두 차원의 성서 이해(이번엔 루돌프 불트만이다. 121P). a) 미리 이해(vorverständnis)는 공부를 통해서 얻는 지식으로 역사 비평적 방법은 이 ‘예비 지식’을 위한 것이요 준비단계에 불과하다! 최종 목적이 아니다(122p). b) 생동하는 통찰력(Lebenverhältnis)는 인격적 참여와 관계 맺음을 통한 성서의 실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15. 신약의 단호한 주장! 종교 자체가 깨끗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이라는 예언(147p).
16. 성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여러 역동적인 요소들에 대하여 개방적인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153p).
17. 하나님을 도구화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화 하는 것의 위험성(153p)!!! 분별력 잃음 -> “하나님 죽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처하게 되는 상황이 아닌가!(155p)
18. 머튼의 결론... “믿으라! 그러면 이해하게 되리라?”(157p). 터툴리안의 말이었던 것 같은데... 믿음! 이해/이성/지성의 근거로서의 믿음! 머튼은 신앙심 없는 자들의 성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했었다(61, 65p). 그럼에도 그는 결론적으로 다시 ‘믿음’으로 돌아온다! 성서는 믿음 없이 읽는 자에게도 구원의 도리를 알려준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성서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믿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