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용기 - 나를 지키는 현명한 선택
와다 히데키 지음, 심지애 옮김 / 한가한오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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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마지막 몇 년 동안 엄마는 우리 집에 계셨고 언니와 내가 간병을 했다. 나는 원체 건강이 안 좋아서 간병하는 동안 지병이 심해졌고 마음까지 병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내가 잘했어야 했는데, 간병을 잘 했다면 엄마가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계속 우울증과 무기력 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서서히 좋아지고 있는 시기라 이렇게 내 스스로 우울증이란 단어도 사용하지만, 처음에는 내가 우울증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나는 낙천적이고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엄마의 간병과 여러가지 원인이 쌓여서 마음의 병이 된 것 같았다.

그동안 무기력과 우울증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리고 내 마음 상태에 대해 스스로 알기 위해서 계속 애쓰고 있는 중이다.

일본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인 와다 히데키의 신간 <도망칠 용기>를 이웃 분의 도서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는데 제목을 보고 꼭 읽고 싶었다.

특히 목차 [제3장. 도망치는 기술] 에 보면 '그 자리에 머무르며 도망치는 방법'이 7가지나 나온다.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 어떻게 도망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뭘까.

이제 한계야, 벗어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정신건강 전문의로서 오랜 기간 이렇게 말해 왔다고 한다. "도망가세요. 그래야 삽니다."

부모님, 회사, 상사, 친구, 배우자, 병간호, 지병, 지금 하고 있는 일 등등.. 여러가지 각자의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도망치고 싶다는 욕구를, 내 의식 속의 또 하나의 자아가 도망치면 안 된다고 억누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살아가면서 생긴 자기만의 규칙, 가치관, 도덕관 등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버티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 '도망'가는 선택지도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망'이라는 말 자체에서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쫄았냐? 도망가냐?" 라는 대사만 봐도 '도망친다'는 말에는 비겁함, 겁쟁이, 근성 부족, 유리 멘탈, 책임 회피 등등 부정적이고 당당하지 못한 무책임한 느낌이 든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살아남는 게 승자"라고. 일단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 살아있어야 책임을 지든지, 다시 싸우든 뭐든 할 수 있다.

'후퇴'는 어떤 나라에선 쓸데없는 승부에서 굳이 맞서지 않고 피하는 것으로, 용기 있는 위대한 선택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걸 무시하면서 '난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하고 지금의 상태를 외면하면 결국엔 어느 날 갑자기 마음에 병이 찾아오고 결국 '나'라는 배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만다.

도망치는 것은 {긍정적인 선택이며, 위험을 피하는 행위}이다. 저자는 전문의로서 강력하게 도망치라고 권고한다.

도망치는 것이란 ㅡ
1. 내게 맞는 환경으로 옮겨가는 것
2. 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3. 내 몸을 싫은 상대로부터 보호하는 것
4. 싫은 상대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
5.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상대와 거리를 두는 것
6. 전략을 다시 짜기 위해 용기를 내어 한발 물러서는 것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 나는 지금 전략을 다시 짜기 위해 한발 물러서 있는 중이야.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는 중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조금 덜 괴로웠을 것 같다.

지금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도망친다는 게 말이 쉽지, 직장이나 가정을 그렇게 쉽게 팽개치고 도망칠 수 있는 환경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봤음 좋겠다. 저자가 소개하는 그 자리에 머물면서도 도망칠 수 있는 방법들도 있으니.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지만, 그저 그것만이 아닌 도망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미래를 바꾸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고 이 책은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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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마음속에 기르다 - 나태주 한서형 향기시집
나태주 지음, 한서형 향 / 존경과행복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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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도서 제공]

[시와 향이 어우러져 마음을 다독이는 향기나는 시집]

나태주 시인의 소망에 대한 시들을 모은 소망 시집인데요.
마음을 적셔주는 시들에서는 향기가 난다고 생각될 때가 있는데, 이 시집에서는 문자 그대로 진짜 향이 납니다.
책에서 향기가 나는, 실제로 향기가 묻어 있는 독특한 시집이예요.

향기 작가 한서형이 만든 향을 머금고 있어요. 향기의 이름은 '소망'입니다.
소망이라는 이름으로 나태주 시인은 시를, 한서형 작가는 향기를 만들어 함께 담은 콜라보 시집인 셈이네요.

시를 위한 기도
지친 사람에게 위로를
앓는 사람에게 치유를
시든 사람에게 소생을
나의 시가 선물할 수만 있다면

<소망, 마음속에 기르다 - 나태주> 시를 위한 기도 중에서.

소망이라는 시들은 네 파트로 나누어져 있어요.
파트 1. 살아있음은 힘이 세다
파트 2. 이런 상상 이런 꿈
파트 3. 하늘빛 상상력
파트 4. 흰 구름 보며 빈다

나태주 시인은 '소망'이 인간에게 정신적인 에너지, 영혼의 샘물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공기, 밥, 물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소망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요즘처럼 우울하고 복잡하고 불안하기까지 한 세상이기에 더욱이 소망없이는 살 수 없다고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말하고 있어요.

고달픈 삶 앞에서 버티게 해줄 소망이 간절할 때, 이 시집의 문장들과 향기가 우리를 지켜줄 존재로 함께 동행하기를 권하고 있네요.

나의 시에게

한때 나를 살렸던
누군가의 시들처럼

나의 시여, 지금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도
살려주기를 바란다

책의 앞부분에서 이 시집을 즐기는 방법을 네 가지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와 향을 음미하고, 소망이라는 새싹이 돋아날 때까지 읽고, 바라고 원하는 소망을 적으며 향을 맡고, 내 마음을 표현할 시를 필사하고 함께 시를 읽으며 소망을 나누기를.. 권하고 있어요.

책 택배 봉투를 처음 뜯을 때 어디선가 좋은 향이 나서 깜짝 놀랐네요. 향기 시집인지 몰라서 받았을 때 향기 때문에 기분이 배로 좋더라고요.

조향사는 들어봤는데 비슷할까요? 향기를 만드는 작가도 있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한서형 향기 작가가 '소망'이라는 향을 만들게 된 과정을 소개하고 있어요.

"소망은 하늘색이에요. 하늘에 바라고 비니까요."

라는 나태주 시인의 말에 기대어 향기 모양을 떠올렸고, 아기 구름 모양의 파란 새싹이 돋아난 씨앗이 머금은 향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시집이 머금은 향은 레몬향 같기도 하고 솔향이 섞인 시트러스향 같습니다.

저는 후각이 밝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향이 강하게 나서 향기를 머금은 종이는 따로 다른 봉투에 담아 두었어요.

그랬더니 책을 펼칠 때마다 아주 딱 좋게 적당히 향이 나네요. 향이 진하게 담긴 듯해서 오래도록 책을 펼칠 때마다 은은하고 잔잔한 향이 퍼질 것 같아요.

이 시집을 읽을 때마다 기운나게 해주는 소망이라는 시들과 함께 향도 같이 음미할 수 있어서 기분 좋아지는 시집이 아닌가 합니다.

소망을 떠올리는 향이 나서 선물하기도 좋을 듯해요. 이 시집이 저에게도 많은 사람들에게도 소망을 싹티워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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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말하기 수업 - 고민을 줄이면 대화가 쉬워진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최지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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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모이면 나는 말하는 쪽보다는 거의 듣는 쪽이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 고민 얘기도 많이 들어주곤 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훨씬 좋아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오해다.

나는 말하는 것도 좋아한다, 나도 늘 말하고 싶었다.ㅎㅎ

내향적 성격에 말수도 적은 편이고 목소리까지 저음이라, 내 목소린 늘 의견을 말하기도 전에 묻혀버리곤 했다.

게다가 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뭐라고 할지 생각하는 동안 대화는 끝나버린다. 이게 자주 반복되니 어느새 스스로 '나는 말 못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말하기 수업>에서 "말을 못 하는 건 당신의 착각"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게 정말 내 착각이 맞을까? 하고 궁금했다.

평생 말주변이 없어서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가 편하지 않았고, 싸워도 차라리 말이 아닌 글로 싸우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늘 생각이 많고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다 보니 머릿속으로 대답을 고르는 동안 말문이 늘 막혔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느껴왔다.

이 책에서는 정확히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저자는 "말문이 막히는 건 성격 탓이 아니라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란 없다"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

평소 어떻게 보일까를 많이 신경 쓰던 사람이라면 대화할 때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에만 신경이 가 있어서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의식이 향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대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상대가 보고 있는 나'를 보려고만 하는 것이고, 소통이 아니라 불필요한 에너지만 쓰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대화가 잘 안되는 원인은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다른 데 있었던 것이다. 답답했던 부분을 콕 집어서 이해시켜주는 것 같아서 속 시원한 느낌이다.

그리고 원인만 알려주는 것이 아닌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함께 나와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점들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지.

위의 경우에는 책에서 권하는 방법인 싸늘한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상대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하게 생각하는 습관 등이 중요하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인격- 화젯거리-인격} 으로 삼각구도를 만들어서 사적 영역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나와 상대의 인격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행, 날씨, 드라마 등의 화제 등을 나누면 인격으로 마주하지 않으니 상대방과 피곤해질 일이 적다. 나의 사적인 부분을 지키면서도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의 말처럼 '대화도 악기처럼 배우고 익히는 것'인데, 취미 등을 배우듯이 대화하는 법을 배우려고 하고 노력하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더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전혀 늘지 않았으니까.

악기나 운동 등은 처음 배우게 되면 처음이라고 서툰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면서, 이상하게 대화는 '나는 말을 잘 못한다'는 선입견에 자신을 가두고 시작하기도 전에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실제로 말을 잘하고 소통에 능숙한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입니다. 갈고닦으면 누구든 잘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시도해 보고 익숙해지면 나도 말을 잘할 수 있구나 하고 알게 될 거라고 말이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노력하면서 대화를 꼭 해야 하나, 사람을 꼭 만나야 하나. 사람들 안 만나고도 잘만 지내왔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피곤하다'
'만날 때마다 신경 써야 하니 이젠 누굴 만나는 것도 귀찮다'
'굳이 누군가를 만나서 피곤해지기 싫다. SNS만 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가족이나 배우자와 대화를 반복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자신의 속도에 맞춰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평생의 보물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저자의 말대로 그런 사람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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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5.봄호 - 85호
옴니버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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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5년 봄호, 85호 - 균열을 일으키는 이야기의 힘]

1년에 4번, 계절마다 한 권씩 발행되는 <계간 미스터리> 2025년 봄호가 나왔다. 1년에 네 번 나오는데 85호이니 발행된 지 20년도 넘었다.

이 잡지를 알게 된 게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참 볼 때마다 신기한 잡지다. 추리소설 왕국 일본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 그것도 미스터리 잡지가 20년이 넘도록 발행됐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한 편으로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잡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출판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분야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비인기 장르의 배고픔과 고뇌에 대해 감히 상상도 해본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밤> - 전륭성] - 계간 미스터리 2025 봄호 신인상 수상작

<계간 미스터리>는 분기별로 신인상 작품을 공모하고 당선작을 매호 싣는다. 전 분기에 응모해서 당선된 작품이 다음 호에 실린다. 모집 부문은 단편, 중편, 추리소설 평론 세 분야이며, 한국추리작가협회 메일을 통해 수시로 접수를 한다.

​그런가 하면 홍선주와 장우석, 두 기성 작가의 단편소설, 반전이 돋보이는 <완전범죄의 대가>, <열대야> 두 편이 실려 있다.

이번 봄호에 실린 당선작은 전륭성 작가의 <블라디보스토크의 밤>이다. 이번 호에도 역시 심사평과 수상자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다. 이번 최종심에는 총 다섯 작품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중에서 선정된 전륭성 작가의 작품은 탁월한 분위기 묘사와 짜임새 있는 전개가 돋보였다, 특히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을 수준급의 전통적인 미스터리 기법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수준급이었다는 평을 들었다.


[초단편 공모전 수상작, 우수작들 - 수상작 : <풍선>, 김영민]

이번 호에는 특히 지난번에 [나비클럽]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모했던 초단편 공모전 수상작들이 실려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 기대가 됐었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말했었지만 나는 단편 특히 초단편 소설을 매우 좋아한다. 100자 소설도 좋고 두 줄짜리 미스터리도 좋다. 짧으면 짧을수록 짜릿한 맛이 난다.ㅎㅎ

그래서 아주 재밌게 읽은 초단편 공모전 당선작 김영민 작가의 <풍선>, 그리고 네 편의 우수작들도 흥미로웠다. 풍선은 특히 수상작답게 짧지만 추리소설 다운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기사보다도 매호 이 수상작과 심사평이 궁금해서 많이 보는 편이었는데 이번호 선정작도 흥미롭게 읽었다. 산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 배경인데 범인을 밝히는 과정과 함께 뒷이야기들이 매우 인상적인 소설이다.


[알찬 기사들 - 특집 기사, 연재, 인터뷰]

이번 호에도 역시 풍성한 연재물과 인터뷰 등 특집 다양한 기사들이 실려 있다.

살인사건과 그 해결을 다룬 소설이나 영상물인 '머더 미스터리' 시장에 대해서 그리고 체험형 추리 콘텐츠에 대해서도 다루는 특집 기사가 실려 있다. (옴니버 작가)

또 작년 장편 범죄소설 <카스트라토>를 출간한 표창원 님의 인터뷰 내용도 실려 있고, 쥬한량 작가의 <사형에 이르는 병> 영상 리뷰 또한 흥미롭다.

3편의 로맨스를 러 웹툰 소개, 그리고 [마스터 플롯으로 읽는 장르문학], 이 번호에서는 소년만화의 보수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추리 퀴즈, 사건의 재구성 - 이번호: <오징어 살인 게임>, 황세연]

또 한 가지 매호 기대되는 기사이자, 단편 소설.

황세연 작가가 매호 내주는 추리 퀴즈를 빼놓을 수 없다. 이번호 사건의 재구성은 <오징어 살인 게임>. 퀴즈는 단편 소설로 돼있고 마지막 트릭 부분을 맞혀야 한다.

트릭의 해답은 책에 나온 QR코드 스캔하거나 나비클럽 블로그 계간 미스터리 카테고리에서 확인 가능하다.

예전에 학생 때는 짧은 추리 퀴즈가 쭉 나와 있고 책 맨 뒷부분에 답이 적혀 있는 책들이 있어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요즘은 그런 책이 거의 없다. 읽어도 잘 못 맞히지만.ㅎㅎ 그런 옛날 추리 퀴즈 책이 떠오르는 코너다.


이번 호가 나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1. 좋아하는 초단편 미스터리 작품들이 실렸음.
2. 이은영 작가의 <우울의 중점> 영화화 예정 소식.
3. 올해 계간 미스터리 서포터즈로 뽑혔다. (내가ㅎㅎ)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은 이은영 작가의 단편집 <우울의 중점>을 인상 깊게 읽어서 이은영 작가의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눈에 확 띄었다.

개인적으로 환상과 미스터리가 접목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단편집에서 <폭풍, 그 속에 갇히다><졸린 여자의 쇼크>가 참 인상적이었다. 영화화 장르는 오컬트 미스터리 로맨스라고 하는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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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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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도서 제공]

오래전에 귀금속 매장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손님들이 금반지 같은 걸 팔러 오는데 그중에 가끔 도둑이 훔친 귀금속을 팔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자 손님이 오전에 금목걸이를 팔고 갔는데, 얼마 안 되어 갑자기 경찰이 찾아왔다. 그 남자가 도둑이었고 훔친 목걸이를 팔고 간 것이었다.

경찰은 매니저와 나에게 남자 인상착의를 물었고 우리는 상황을 자세히 말해줬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매니저와 나의 말이 달랐다.

나는 그 남자가 분명히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은 걸로 기억하는데, 매니저의 기억은 달랐다. 내가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남자를 내가 응대했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결과는 매니저와 나의 진술이 둘 다 틀렸다는 것이다! 그 남자의 의상은 전혀 다른 색이었다. 나는 그렇다 치고 매니저는 평소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는데도. 나는 그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고, 그 이후로 나는 내 기억 자체를 잘 믿지 못한다.

아직까지도 그날 내 뇌리에 왜 하늘색 와이셔츠가 각인돼 있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그날 나는 남자를 응대하면서 한참 동안 바로 앞에서 봤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이 내용을 쓰기 위해 꽤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렸는데, 내가 떠올린 이 기억 또한 전부 정확한 사실일까?

그런데 이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살인을 했다고 자백한 용의자의 기억이 완전히 틀린 기억이라면? 자기가 하지도 않은 살인에 대한 기억이 뇌에서 떠올랐다면?

이런 일이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다. 1906년에 시카고에서 한 여자가 강도 살인을 당했는데 그 시신을 발견한 백인 남성이 용의자로 몰렸다.

그는 아무런 폭력 전과도, 그가 범인이라는 아무 증거도 없었고 본인 역시 범행을 부인했지만 그는 용의자로 몰려 경찰에서 한참 동안 심문을 받았다.

경찰에게 심문당하는 동안 계속해서 '살인 과정을 기억해 보라고, 기억을 떠올려 보라'는 압박을 받았고 결국 그는 두 번이나 범행을 자백했지만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았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은 그가 범인일 수 없는 이유와 신빙성 있는 알리바이를 내놓았고, 재판에서 검사조차 그는 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여러 저명한 심리학자가 그의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이븐스의 자백은 그의 머릿속에 주입된 암시의 비자발적인 합성과 정확히 똑같습니다... 신경증에 걸린 사람이 가공의 기억을 만드는 경계선 영역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 인간 기억의 부정확성에 대해 선구적인 연구를 하던 후고 뮌스터베르크의 편지 중에서. (그는 아이븐스의 무고를 주장했다.)

그는 나중에 다시 자백을 철회하고 무죄를 주장했지만, 배심원들의 유죄 평결에 의해 결국 교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하고도 흥미로운 점은, 자백을 철회하고 범행만 부인한 것이 아니라 그는 범죄를 자백했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진술을 한 기억이 없고, 그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 나는 죽이지 않았다. (...) 하지만 경찰서에 있는 동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 무죄를 주장한 용의자 아이븐스의 말. 차란 란가나스 저 <기억한다는 착각> 중에서.

무고한 사람이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을 자백해 범인으로 몰리고 사형을 당한다니..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이 사건 하나뿐이 아니었다고 한다.

정말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른 기억을 갖고 있을까?

<기억한다는 착각>의 저자 차란 란가나스가 이것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재생과 녹화를 동시에 누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무슨 말일까?

어떤 사건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을 때, 재생만이 아니라 녹화까지 누른다는 것이다. 떠올릴 때 부정확한 기억을 떠올린 것이 그대로 녹화된 채 다음번에 다시 기억을 더듬을 때 녹화됐던 그 부정확한 기억을 재생한다.

"우리 기억은 돌에 단단히 새겨진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방금 배우거나 경험한 것을 반영해 갱신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 기억 갱신의 촉매는 바로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 자체다."

즉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한번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 속에는 바로 지난번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의 잔여물이 가득 퍼져 있고, 이런 과정이 계속 되풀이되는 것이다.

친구들과 여럿이 동시에 경험한 일을 함께 되짚어볼 때 기억이 일치하지 않고 모두 제각각이었던 경험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내가 알바했던 매장에서 매니저와 나의 기억이 전혀 달랐던 것처럼.

머릿속으로 과거를 다시 더듬어볼 때마다 현재의 정보가 함께 따라가서 기억의 내용을 미묘하게 바꿔놓는다는 것이다. 위 사건의 사례처럼 아주 엄청나게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위 사건에 대한 저자의 해설을 읽는 동안 엉뚱하게도 약간의 위안을 느꼈다. 위안이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할까.

내가 기억하는 온갖 과거의 안 좋았던 사건들, 장면들, 대화들을 나의 뇌가 살짝 각색했을 가능성.. 온전히 완벽한 기억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내 기억만큼 나쁜 일이, 안 좋은 대화가 아니었을 수도 있으니.

이런 책이나 내용을 접할 때마다 인체의 신비 또한 느끼지만, 나 자신을 점점 믿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기록을 더욱더 생활화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 내 기억은 계속해서 재생+녹화=갱신되기에.

차란 란가나스의 <기억한다는 착각>. 과학서를 자주 읽진 않다 보니 너무 어렵지는 않을까 생각했는데 매 장마다 기억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넘쳐난다.

과학서를 처음 본다면 에세이처럼 쭉쭉 읽히지는 않겠지만 차분히 읽다 보면 흥미로운 내용에 점점 몰입될 것이다. 기억에 대해서 우리가 평소 궁금해했던 점들에 대해 명쾌하게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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