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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정표 - 제76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1월
평점 :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깊은 산 속을 혼자 걷고 있다. 해가 지고 있어서 주위는 점점 어두워진다. 눈 앞에 있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다. 길을 잃은 것 같다는 두려움에 눈 앞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 때 멀리서 작은 불빛이 반짝인다. 다가가 보니 이정표다. 산을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는 야광 표지판이 어둠 속에서 빛을 내뿜고 있다. 아, 살았다. "저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면 틀림없겠구나." 길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밤은 점점 깊어져 주위에는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다. 어둠 속을 한참을 걷고나서야 깨닫는다. 이정표가 잘못됐다는 걸. 이정표가 가리킨 방향이 틀렸다는 걸 알게된다면 어떡해야 할까.
미스터리 소설 <<밤의 이정표>>를 쓴 작가 아시자와 요는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지금은 용납되지 않지만, 예전에는 용납됐던 일이 얼마든지 있고, 지금은 옳다고 믿는 일도 미래에는 평가가 바뀔지 모르죠. (...) 그러한 공포가 문제의식과 연결돼서, 지금 이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 옮긴이의 말에서.)
지금 옳다고 믿고 있는 일이 그른 일이 될 수 있을까. 현재의 우리가 정의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정의는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정의일까? 옮긴이의 말에 나온 인터뷰에서 아시자와 요는 이런 생각 때문에 '마음 속에 늘 두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제가 언젠가 단죄당하거나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까 봐 두렵다'고 밝힌다.
아시자와 요는 본인이 느낀 이런 두려움과 공포감을 <<밤의 이정표>>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정표만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또는 이정표조차 만나지 못한 사람도.
"올바른 행동이라 믿고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했는데, 나중에 와서 그건 잘못이었다고 (...) 하다니,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요?" 우리가 믿고 따라가는 이정표는 과연 옳은 것인지,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옳을 것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일본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는 '이야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란 표현을 한 적이 있다. <<밤의 이정표>>라는 이야기의 맨 끝에 도착했을 때 여기가 무라타 사야카가 말한 그 곳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힘을 빌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 미스터리의 힘을 빌려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 미스터리의 힘을 빌렸기에 그곳에 더 잘 도달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