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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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선수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은퇴를 결정한 이유를 물었더니 "이제 내 몸이 다른 것을 원한다"고 답했다. 그때 유독 그 말이 귀에 꽂혔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감각인지는 몰랐고 내게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내게도 그 시간이 찾아왔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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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기 -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
오경철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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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해둔 문장들을 모아놓으니 근자에 내가 무엇에 대해 곱씹고 있는지 새삼 알겠다. 

다른 시기에 보면 다른 부분에 책갈피를 꽂아놓겠지.

돌아가지 못한 것은 그 일에 생계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은 버겁지 않을 때가 없었고 나는 소통 자체에 의지를 잃어버릴 때도 많았다.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을 만드는 일이 적어도 내게는 설득력 있는 상호 관계를 맺지 못했다. 원고가 책이 되어가는 과정에는 애호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표면적으로 편집은 책을 좋아하는 것과 무관하다. 그것은 책을 지지고 볶으며 책이라는 제품을 제조하는 일일 뿐이다. - P30

출판사에 입사해 편집자가 된다는 것은 기업의 일원이 된다는 뜻이다. 출판사도 여느 기업들처럼 제일의 목표는 이윤 창출이다. 기업의 일원으로서 편집자는 자신이 만든 책이 시장에서 매출을 일으키고 이익을 내길 바란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이것은 책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일이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반드시 편집이라는 일의 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책이라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 그 일은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대체로 그렇듯 버겁고 고되다. 무언가를 애호하는 마음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좋아서 하는 일은 대개 소용에 닿지 않는다. 직업이란 그런 일이 아닐 때가 많다. - P30

나는 이 일을 오래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뼛속까지 편집자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버릇처럼 자꾸 물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질문을 누그러뜨려보기도 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 가까운가,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에 가까운가?‘ - P31

나는 내가 읽은 책들 덕분에 편집자가 되었고 내가 읽은 책들과 책장에 나란히 꽂아둘 만한 책들을 만들었다. 간혹 그렇지 않은 책들을 만들어야 할 때면 내 일에 자신이 없어지곤 했다. - P131

다만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본의든 아니든 독자와 시장의 존재를 냉철하게 의식하지 않는 무분별한 기획이다. 주지하듯이 세상에 좋다고 하는 책은 하고많다. 하지만 책은 모종의 가치를 부여받을 때 비로소 세상에 존재할 진짜 이유를 얻는다. 책에 가치를 부여해 그것을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것은 편집자가 아니라 결국 독자다. 그리고 독자는 편집자의 어렴풋한 기대 속이 아니라 시장에 있다. - P224

‘좋은 책은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이다‘라고 생각하는 편집자가 있는가 하면 ‘좋은 책은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일까?‘라고 생각하는 편집자도 있다. 어미 하나가 다를 뿐이지만 두 생각 사이의 거리는 보기보다 먼 것 같다. 뉘앙스만 놓고 보아도 전자는 고지식하고 후자는 유연하다. 예전에 나는 ‘좋은 책은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이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요즘은 ‘좋은 책은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두 생각은 동전의 양면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두 생각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책을 만든다. 기획이라는 일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편집자라면 아마도 대부분 그러지 않을까? 편집자는 책으로 말하는 사람인 동시에 책의 성과로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니 말이다. - P236

기획이라는 일은 설득의 연속이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돈이 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언제나 이익보다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큰 일이다). 자신의 기획을 추진하기 위해 편집자가 본인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하는 사람은 대부분 같이 일하는 편집자들이다. 아직 원고를 장악하는 힘이 턱없이 부족한 편집자의 기획안에 쉽게 설득될 동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기획을 위한 시간은 창창하다. 그 전에 일단 편집자가 되고 볼 일이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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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
정멜멜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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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취 중독이었다. 언제나 역량보다 큰 일을 끌어안았고 그것을 무사히 끝냈을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을 아는 사람. 그렇다고 매 순간 즐겁게 일을 한 건 또 아니었다. 나는 늘 지나치게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욕심은 더 많았던 사람. 어떠한 달성감이 없는 상태의 나도 사랑할 수 있을까. 결과와 보람 없는 시간을 보내도 나 자신이 의미없지 않다고 힘줘서 말할 수 있을까. - P86

모니터 앞에 앉아 창밖에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빛을 보면서, 저 명암들을 흘려보내는 게 눈물 나게 아깝던 날에는 수없이 자문해보기도 했다. 사실은 나의 내부에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어떤 불순물이 고여 있길래 뭘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인지.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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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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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 P44

그게 룰이었다. 일터로 가장을 보러 오는 사람은 그가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일하고 먹고 마시며 돈을 버는지를 봐야 했다. 그렇게 버는 돈으로 그들이 먹고살았고, 살고 있으니까. 한영진은 그렇게 배웠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시장에서 부모에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그걸 배웠따. - P59

실망스럽고 두려운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한영진은 김원상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 P70

모든 게 끔찍했는데 그중에 아기가, 품에 안은 아기가 가장 끔찍했다. 그 맹목성, 연약함, 끈질김 같은 것들이. 내 삶을 독차지하려고 나타나 당장 다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타인. 한영진은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는 걸,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 P73

어머니가 너무 때리면 벽 너머에 네가 있다는 걸 생각한다고 순자가 말한 적이 있었다. 더 때려봐 어디 죽여봐 내가 깩소리를 내면 순자가 듣는다 순자가 듣고 있다 순자가 듣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 죽을 것 같다가도 무섭지 않고 이상하게 배짱이 생긴다고 말하던 순자. - P124

이은일. 기록으로는 그 아이가 죽지 않은 채로 살아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아이도. 깊은 수풀 속 어딘가에 남은 조그만 집터처럼 거기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채 방치되어 있던 이름들이 그 서류 한 장에 남아 있었다. - P132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 P138

수십년 살림으로 손이 굳고 곱았는데도 뜨거운 것에 닿으면 여전히 뜨겁다는 것이 이순일은 성가시면서도 경이로웠다. - P141

그러나 한영진이 끝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 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순자에게도 그것이 있으니까. - P142

안나가 거기서 살았다면 다르게 살았을 거라고, 안나는 한국에서 덜 외롭고 더 행복하게 살았을지 모른다고 노먼은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안나는 안나의 삶을 살았어, 여기서.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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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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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너무너무 많이 흔들렸다. 소설이라는 것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각기관이 내게도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들.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권여선의 문장들만 생각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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