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책 만드는 법 - 세계와 삶을 공부하는 유연한 협력자로 일하기 위하여 땅콩문고
이진 지음 / 유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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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잘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들을 많이 만난 책. 어디 하나 특출나지 않고 그나마 장점으로는 성실을 쑥스럽게 내밀 수 있을 뿐인 보통의 직장인으로서, 편집자의 공부 책 시리즈 중 이 책이 가장 현실적인 롤모델이 되어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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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돌고 돌아 [삶 자체를 '편집자로 살아가기 위한 몸'을 꾸준히 만]들어가야 하는,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뒤늦은 깨달음도. 그것이 좋을 때고 있고 당연히 싫을 때도 있지만, 사실 좀 무섭기도 하지만 이미 나는 그 세계에 들어왔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그것이 아주 싫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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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SNS 운영에 대해서도 좀 다르게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그간 어떤 권유 앞에서도 속마음은 '결국 회사 좋으라고 하는 일 아니냐'로 귀결되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 처음으로 설득되었다. 아마 그사이 내 상황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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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업계의 일원으로서 넓은 범위의 동료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가 하면, SNS 운영은 둘째로 놓고 우선 저자께 좋은 책 잘 읽었다는 인사를 직접 보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것까지는 현실이 되지 않겠지만. 이곳에라도 남겨둔다.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시간에 놓을 때마다 두고두고 찾아볼 책을 만나 기쁜 마음이에요. 감사합니다.

자기 일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작되는 일이 있다. 누군가의 퇴사로 내게 좋은 원고가 오기도 하고, 우연히 작업한 몇 권의 책이 마치 내가 그 분야의 전문 편집자인 것처럼 보이게 해 뜻밖의 큰 기회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한 권 한 권을 성실하게 만들며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이다. 원치 않는 원고라 하더라도, 까탈스럽기 이를 데 없는 저자라도, 다소 번거로운 작업이라도 나름대로 수완을 발휘해 잘 마무리한다면,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인맥과 퍙핀이 분명 더 나은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책이 책을 낳는 영화 같은 일은 당연히 더 오래 일한 사람, 더 많은 책을 만들어 본 사람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한 권만 더 만들어 보자. 우직함이 우리를 도울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 P38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뛰어난 야구선수라도 타율이 채 4할에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앞으로도 줄기차게 ‘실패로 기록될 책을 만들 거라는 점이다. 한 권 한 권을 아무리 성실하고 꼼꼼하게 만들어도, 심지어 그 책의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나더라도 상품으로서는 실패할 수 있다(책이 지닌 상품 이상의 의미를 여기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실패의 과정을 곰곰이 반추해보며 다음 책이 실패할 가능성을 조금씩 줄여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 P64

반대로 함께 일한 파트너가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을 만큼 최악이었다 해도, 마감을 하고 인쇄를 넘긴 나의 수완과 예의와 인내심 역시 내 안의 어딘가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완벽하게 ‘쓰잘머리 없는‘ 작업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때로는 내가 꾹 참고 그 책들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이 편집자 하나를 키우기 위해 참 고생이 많았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쉬워할 일도, 소홀히 할 일도 아니다. - P7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자가 일상의 빈틈을 최대한 활용해 이번 책과 다음 책 사이를 채워 나가는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우리에게 다음 작업을 위해 공부할 시간을 따로 줄 리도 없고, 또 우리가 하는 일이 ‘하루에 100쪽씩 읽으면 다음 업무에 투입될 준비 완료‘ 같은 식도 아니니 정말로 이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삶 자체를 ‘편집자로 살아가기 위한 몸‘을 꾸준히 만드는 과정으로 생각하자고 말하고 싶다. - P84

‘많이 읽는다고 그런 게 다 보이나?‘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보인다고 믿는 편이다. 적어도 세 번 보았을 때보다 네 번 다섯 번 보았을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조차 없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 나가겠는가. - P114

이렇게 어떤 한 책에서 시도했던 일이 다음 책으로 연결이 되기도 하니 손익분기 표에 나오는 숫자만으로 어떤 일의 진행 여부를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한계 안에서, 때로는 그 한계를 살짝 넘게 되더라도 책의 품질을 높일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는 일은 눈앞의 바로 이 책뿐 아니라 이후의 책에도 크고 작은 도움이 된다. - P141

그럼에도 편집자 일이 나에게 잘 맞고 이 일을 오래 하겠다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드러내며 일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책을 많이 팔라거나 회사에 기여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어느 회사 무슨 팀에서 일하는 누구라는 사실에 앞서, 편집자로서 이 업계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아 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라는 뜻이다. 내가 누구와 함께 어떤 책을 만들고 있고, 어떤 고민과 노력을 통해 성과를 냈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드러내며, ‘책‘이라는 세계 안에서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과 꾸준히 교류를 해 나가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콘텐츠를 올린다기보다 이 업계의 일원으로서 넓은 범위의 동료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P191

그뿐 아니라 우리가 회사 계정에 쓰는 수많은 글과 카피는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나와 무관한 콘텐츠가 되지만, 내가 내 계정에 기록해둔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 것으로 남는다. 퇴사와 함께 내가 만든 책의 판권에서 내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내가 그 책을 만들며 했던 고민, 저자와 나누었던 시간, 디자이너나 마케터와 협력했던 이야기는 내 글 속에 남아 누구도 함부로 지울 수 없다. 그러니 자기 계정을 갖는 일은 자신의 경력, 자신이 일해 온 역사를 스스로 관리하고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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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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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에게 진단이란 나의 우울이 병이냐, 병이 아니냐 하는 문제라기보다 누군가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가, 알아주지 않는가의 문제이다. 고통을 계속해서 호소하는데도 반응하지 않는 사회에서 오래 홀로 버티던 사람에게 누군가의 ‘알아줌‘은, 그것이 설령 신자유주의 시대 감정 관리의 결과이며 다국적 제약 회사의 자본주의적 책략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것이다. _25% - P25

우울은 그게 어떤 종류의 생각이든 ‘나‘를 향한 몰두와 관련이 있다. 자아가 강조되기보다 자아가 해체될 때, 그래서 애초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될 때,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 _35% - P35

많은 인터뷰이가 우울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쓸모‘와 ‘자격‘을 이야기했다. 나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이러한 생각은 뜻밖에 상황이 풀려 삶이 나아질 때도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자신은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날 때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쓸모에 대한 강박은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살아가며 천천히 형성된다. 또 이것은 앞서 지적한 "한 번도 온전히 받아들여져 본 적 없는 경험"과도 연결되어 있다. 존재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무언가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어떤 역할을 해야만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_59% - P59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너무 고통스러우며,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쓸모없이 지낼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이다. 이것은 젊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내용도 아니다. 쓸모에 대한 강박을 심어주는 사람들은 주로 가족이었다. 여기에 가난이 더해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매일의 삶이 고단하니 생계의 책임을 떠맡은 사람은 갈수록 악에 받친다. 한 사람의 삶을 계산기로 두드리며 수지타산을 따진다. _59% - P59

자살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레 잃었다. 자살에 가해지는 낙인 때문에 좀체 충분히 애도하고 위로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 고통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우리는 좋건 싫건 삶을 공유하는 존재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나의 일부가 죽는 일이다. _73% - P73

페미당당은 그 시절 나를 밀도 높게 돌보았고, 그 안에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대단한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고, 친구들을 엄청나게 사랑했고, 그것이 나를 살렸지만, 또 나에게 상처와 우울과 불안과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남겼다. 그 소외감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처음으로 페미당당을 나온 사람이 됐다. 아직도 페미당당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하고 약간은 서글프다. 애써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 한다. 함께라는 감각과 소외감을 어떻게 동시에 느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이 돌봄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_83% - P83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울증을 싫어해야 한다. 고통에 익숙해진 나머지 거기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야 한다. 슬픔을 느끼는 만큼 기쁨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강렬한 불행 대신 싱거운 행복에 익숙해져야 한다.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재생되는 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쓰기 시작해야 한다. 틀린 것을 알아보는 것만큼 옳은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 머물 줄 알아야 한다. 지금보다 덜 고통스럽고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애쓸 것이며, 그게 나와 잘 어울린다는 마음을 먹어야만 한다. 이것은 대단히 어렵고 엄청나게 두려우며 또한 결정적인 선택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과거 자체를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겠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맺어지지 않았다. _87%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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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
김영준 지음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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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2월 31일쯤에 결산을 하지 않는 걸까? 새해의 입구이자 일부인 진짜 연말은 회고를 하기에 적당한 시점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해를 살아가는 느낌을 미루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강력한 열망 앞에서는 지난해의 목록 같은 건 별 흥밋거리가 못 된다. 아마 우리는 산다는 것과 회고하는 것이 양립하기 어려운 활동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 두 달 빠른 결산 관행이 암시하는 교훈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별도의 시간이 주어지는 일은 영원히 없으며, 생각과 정리에 쓸 시간은 우리가 생활하는 시간을 헐어서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1월> _124/294 - P124

1952년 튜링은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곧 한 젊은 남자와의 성범죄(동성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발각된 전말은 길고 흥미진진한 얘기인데 언젠가 단편소설로 쓸 생각이다." 이 편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자신의 체험을 문학화하려는 욕구인데, 이는 문학가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곤경의 탈출구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챗지피티> _197/294 - P197

"무언가를 소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갖게 된다." 앤디 워홀의 말이다. 이 말은 점쟁이의 말과 비슷해서 누군가 자기 싦에서 적합한 예를 두어 개는 떠올릴 수 있다. 발견과 출간과 판매가 모두 의지나 소망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 『팅커』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어떤 때는 ‘소망이 멈추는‘ 순간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도 않고 우연이 찾아왔다는 느낌도 들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연은 꼭 필요한 것이다. 헌책방에서 『팅커』를 발견했을 때의 계시 같은 느낌은 그게 우연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발생한다. 책 장사는 결국 허영과 욕망을 파는 것인데, 우연이라는 요소가 한 축이 되지 않으면 욕망은 성립하지 않고 무너진다. 자신에게 중요한 책 몇 권과의 만남을 회고해 보는 사람은 그 책들이 실로 우연히, 난데없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대한 회상> _264/294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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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 자기만의 방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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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됐다. 통장을 만든 후 광월 씨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모으는 데 집중했다.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과수원으로 밭으로 나갔다. 일에 집중하면 힘든 일이 잊히는 것 같았다. 일한 만큼 수익이 나오는 것도 위로가 됐다. <insight_30년은 더딘 농촌의 시간> _204/284 - P204

노동에 대한 대가는 돈이 아닌 것으로도 온다. 누군가 자신의 노동을 알아봐줄 때, 노동의 덕을 보는 사람들이 감사함을 전해올 때, 스스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때, 노동으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 <insight_30년은 더딘 농촌의 시간> _204/284 - P204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수전 손택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상대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책임을 지는 쪽을 선호합니다. 나 자신을희생자로 보는 게 정말 싫어요."
정애 씨가 그런 사람이었다. 평생 일했고 그 일을 즐기며 취향을 가진 사람. 인생의 불운을 불행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 자신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들려줄 수 있는 사람. 우리가 찾던 사람이었다. <epilogue_그들은 모두 한 권의 책이었다> _272/284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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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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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것은 출간 1달 만에 찍은 초판 3쇄. 제목과 부제를 보고 멋대로 기대한 내용과 많이 다르기도 했고(요새 유행하는, 그러니까 과학적 연구와 삶 보편의 문제를 연결시키면서 깨달음도 주는 다소 낭만적인 책이리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역사서에 가깝다) 국내시장에서 자생력을 갖기는 아직 어려운 책이라는 판단도 일찌감치 섰겠다 결론만 확인하고 포기할까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이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니 참고 페이지를 넘겼고 후반부는 그나마 속도가 붙었다. 이런 책을 읽는 와중에도 눈에 걸린 것은 ‘모욕감’이라는 단어. 그것도 어느 조직에 대해 내가 품었던 마음과 비슷한. 이런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수리분류학이 분류학에 저지른 진짜 잘못은 완전히 다른 무엇, 결코 발설된 적은 없지만 가장 험악한 공격의 근원에 자리한, 심지어 가장 작은 반대의 근원에도 자리한 무엇이다. 컴퓨터(정신도 감각도 없으며 차갑게 계산만 하는)가 분류학자의 일을, 예술과 과학이 미묘하고 섬세하게 혼합된 그 일을 한다는 생각 전체가 그냥 한마디로 모욕적이었던 것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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