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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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에게 진단이란 나의 우울이 병이냐, 병이 아니냐 하는 문제라기보다 누군가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가, 알아주지 않는가의 문제이다. 고통을 계속해서 호소하는데도 반응하지 않는 사회에서 오래 홀로 버티던 사람에게 누군가의 ‘알아줌‘은, 그것이 설령 신자유주의 시대 감정 관리의 결과이며 다국적 제약 회사의 자본주의적 책략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것이다. _25% - P25

우울은 그게 어떤 종류의 생각이든 ‘나‘를 향한 몰두와 관련이 있다. 자아가 강조되기보다 자아가 해체될 때, 그래서 애초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될 때,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 _35% - P35

많은 인터뷰이가 우울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쓸모‘와 ‘자격‘을 이야기했다. 나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이러한 생각은 뜻밖에 상황이 풀려 삶이 나아질 때도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자신은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날 때부터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쓸모에 대한 강박은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살아가며 천천히 형성된다. 또 이것은 앞서 지적한 "한 번도 온전히 받아들여져 본 적 없는 경험"과도 연결되어 있다. 존재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무언가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어떤 역할을 해야만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_59% - P59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너무 고통스러우며,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쓸모없이 지낼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이다. 이것은 젊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내용도 아니다. 쓸모에 대한 강박을 심어주는 사람들은 주로 가족이었다. 여기에 가난이 더해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매일의 삶이 고단하니 생계의 책임을 떠맡은 사람은 갈수록 악에 받친다. 한 사람의 삶을 계산기로 두드리며 수지타산을 따진다. _59% - P59

자살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레 잃었다. 자살에 가해지는 낙인 때문에 좀체 충분히 애도하고 위로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 고통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우리는 좋건 싫건 삶을 공유하는 존재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나의 일부가 죽는 일이다. _73% - P73

페미당당은 그 시절 나를 밀도 높게 돌보았고, 그 안에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대단한 연대감을 가질 수 있었고, 친구들을 엄청나게 사랑했고, 그것이 나를 살렸지만, 또 나에게 상처와 우울과 불안과 견딜 수 없는 소외감을 남겼다. 그 소외감을 견디지 못하고 나는 처음으로 페미당당을 나온 사람이 됐다. 아직도 페미당당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하고 약간은 서글프다. 애써 좋은 기억을 떠올리려 한다. 함께라는 감각과 소외감을 어떻게 동시에 느낄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이 돌봄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_83% - P83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울증을 싫어해야 한다. 고통에 익숙해진 나머지 거기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야 한다. 슬픔을 느끼는 만큼 기쁨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강렬한 불행 대신 싱거운 행복에 익숙해져야 한다.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재생되는 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쓰기 시작해야 한다. 틀린 것을 알아보는 것만큼 옳은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 머물 줄 알아야 한다. 지금보다 덜 고통스럽고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애쓸 것이며, 그게 나와 잘 어울린다는 마음을 먹어야만 한다. 이것은 대단히 어렵고 엄청나게 두려우며 또한 결정적인 선택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과거 자체를 바꿀 수 없지만, 현재와 미래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겠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아직 맺어지지 않았다. _87%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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