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
김영준 지음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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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2월 31일쯤에 결산을 하지 않는 걸까? 새해의 입구이자 일부인 진짜 연말은 회고를 하기에 적당한 시점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해를 살아가는 느낌을 미루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강력한 열망 앞에서는 지난해의 목록 같은 건 별 흥밋거리가 못 된다. 아마 우리는 산다는 것과 회고하는 것이 양립하기 어려운 활동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 두 달 빠른 결산 관행이 암시하는 교훈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별도의 시간이 주어지는 일은 영원히 없으며, 생각과 정리에 쓸 시간은 우리가 생활하는 시간을 헐어서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1월> _124/294 - P124

1952년 튜링은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곧 한 젊은 남자와의 성범죄(동성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발각된 전말은 길고 흥미진진한 얘기인데 언젠가 단편소설로 쓸 생각이다." 이 편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자신의 체험을 문학화하려는 욕구인데, 이는 문학가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곤경의 탈출구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챗지피티> _197/294 - P197

"무언가를 소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갖게 된다." 앤디 워홀의 말이다. 이 말은 점쟁이의 말과 비슷해서 누군가 자기 싦에서 적합한 예를 두어 개는 떠올릴 수 있다. 발견과 출간과 판매가 모두 의지나 소망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 『팅커』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어떤 때는 ‘소망이 멈추는‘ 순간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도 않고 우연이 찾아왔다는 느낌도 들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연은 꼭 필요한 것이다. 헌책방에서 『팅커』를 발견했을 때의 계시 같은 느낌은 그게 우연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발생한다. 책 장사는 결국 허영과 욕망을 파는 것인데, 우연이라는 요소가 한 축이 되지 않으면 욕망은 성립하지 않고 무너진다. 자신에게 중요한 책 몇 권과의 만남을 회고해 보는 사람은 그 책들이 실로 우연히, 난데없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대한 회상> _264/294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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