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품절


기억력이 희미해져가는 인간은 얼마나 순수하고 맑아지는 것인가. 어머니를 관찰하면서 곰곰 그런 생각이 든다. 멋을 부리거나 뻣대는 것, 욕망과 원망에서 해방된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한없이 상냥하다. "많이 힘드시죠?"라고 주위 사람들이 동정을 표하지만, 어머니랑 살면서 내가 얻게 된 마음의 평온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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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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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그자 앞에서 떠오르는 나쁜 기억들에 매번 패배당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마치 기억에 두들겨맞아 녹초가 된 것처럼 지치곤 했다. 나쁜 기억은 쉽게 일어나 쉽게 삶을 침범했고, 며칠 동안 썩은 내를 풍기나 가라앉았다. 몇 달 동안 그러했다. 그자는 삶에서 불필요한 기억들은 편리하게 도려내 오래전 삶을 회복한 듯했다. 그자의 아들, 기환은 대학생이었다. 올봄이 되어서야 그자를 바라보는 일은 본래의 의미를 되찾았다. 그것이 그자의 가정불화―사고를 치고 온 아들을 두들겨패는 그자를 몇 번 본 뒤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면 치졸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은 그 이후였다.-29쪽

시선은 결국 원했던 것이 고발이 아니라 바다였음을 인정하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그자를 고발하지 않고 바다에 갈 수 없었다. 삼 년 전 박선명을 다시 발견한 뒤, 한창 그자를 추적할 때는 그 일을 일컬어 시간을 매듭짓는 일이라 불렀다. 봄볕 아래에서 그자를 만났을 때, 그자는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자는 그 시간―창호가 죽은 뒤 새로이 탄생한 그 시간에서 벗어나 먼 곳에 살고 있었다. 그자를 그 시간 속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그리고 매듭짓고 싶었다.-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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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차가운 손>은 온몸으로 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각을 시작하고 살아 있는 사람의 몸―손에서 시작하여 다른 부위, 곧 전신으로 확장되는―을 석고로 떠내는 라이프캐스팅을 하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화자는, 그리고 작가는 성실하게 몸을 움직이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양감과 질감, 촉감을 추적한다. 육감적肉感的이라는 말은 이런 작품을 가리키기 위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점이 이 작품을 <가면의 고백>이나 <인간 실격>, 혹은 <새의 선물>보다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진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가라>와 <그대의 차가운 손>은 짝패와 같은 작품이다. 모두 미술을 하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이 등장하며,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제시되고 남겨진 이가 지난 시간을 추적하며 그것을 풀어나가는 설정, 조용하고 은밀한 속삭임이 내장까지 토해낼 듯한 절규로 확장되는 전개 등 유사한 부분이 많게 느껴진다. 세부적인 부분을 생각할수록 더 그렇다. 작품 속의 미술가들은 한 작품에서는 먹墨, 다른 하나는 석고라는, 흑백의 명도만 남은 소재들로 작업을 한다. 그리고 둘의 작업 모두 '물리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화선지에 가볍게 스미는 먹조차, 그의 소설 안에서는 물 분자가 시간을 들여 힘껏 밀어내야 할, 양감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두 작품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차 만큼의 차이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대의 차가운 손>은 기교를 줄이고 문법에 충실하게, 그러니까 내면에 불덩이를 숨긴 모범생이 성실하게 쓴 작품이라면, <바람이 분다, 가라>는 그가 조금 더 날렵하게, 세련되고 치밀한 방식을 터득한 이후에 썼다는 느낌이 든다. 작업이 끝나면 땀과 석고로 엉망이 되는 장운형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으나 분명히 먹을 밀어내는 물 분자의 기척을 조용히 느끼는 삼촌으로. 무엇보다 두 작품 모두 표지가, 아주, 좋다. 표지까지가 소설의 내용과 함께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이십대 전반에 나를 지배했던 이가 신경숙이었다면, 후반은 아마도, 한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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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 개정판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5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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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은 나의 첫 미야베 미유키다. 국내 인지도 이미 워낙 확고한 작가인지라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입문하게 되었다. 두근두근.

 

미야베 미유키의 주특기가 사회파 미스터리이고, 그중에서도 <모방범>은 대표작으로 꼽힌다 하여 나는 이 작품이 온통 '사회' '사회' '사회' '사회' '비판' '비판' '비판' '비판' 으로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거 웬걸,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소설 아닌가. 등장인물이 뭐 이렇게 많은지, 그리고 각자들 사연은 뭐 이렇게 깨알같이 갖고 있나.

 

하지만 자꾸만 읽어나갈 수록 이 점이 바로 <모방범>의, 미야베 미유키의 큰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 혹은 주변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까지 소홀히 하지 않고 전부 품어줄 수 있는 큰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닐까. 아무리 책 속에서 일어나는 허구의 이야기라지만, 재미만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작가가 아니군! 그리고 영화 <화차> 감독 GV 때 변영주 감독님이 하신 말씀도 생각났다. 범죄는 어디 구석진 으슥한 데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 일상적인 장소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이렇게 보면 [피해자 + 가해자 + 사건의 전모]만이 진실의 전부는 아닐 터. 그야말로 '장대한 인간 드라마'라는 설명이 딱 어울렸달까.

 

시게코가 다시 등장하는 <낙원>도 궁금하다. & 가능성은 그닥 없을 것 같지만 <모방범>도 <화차>처럼 국내 영화로 리메이크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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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블랙
수전 힐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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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상당히 늦게까지 귀신의 존재를 믿었다. 늦은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도 뒤에서 귀신이 나타나지 않을까 무서워했고, 잠긴 문을 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절대 돌아보지 말아야지, 문은 왜 이렇게 안 열려’ 하면서 달달 떨었다. 자기 전 세수를 하면서 천장이나 내 뒤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귀신을 경계하느라 엄청 대충 씻었던 것들도 창피하다면 창피한 기억.

 

그런 날들은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는 며칠 동안 또다시 그 공포들이 되살아났다. 읽는 도중 잠시 엎드려 낮잠을 자다가 내 뒤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는 꿈까지 꿨을 때는 레알 무서웠다. 깨고 나서는 살짝 당황. 아니, 뭘 이렇게까지 반응을?

 

징그러운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소설 속 배경이 된 습지는 사진이라도 찍으러 가고 싶을 정도로 신비로운 곳이었다. 이야기 구조도 복잡하지 않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는 이유도, 그 여자와 마을 사람들에게 얽힌 사연도 단순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다. 1인칭 소설인데다 워낙 심리묘사가 뛰어난 탓(덕?)에 화자의 공포가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왠지 석연치 않았다.

 

이 나이 먹고 귀신 무섭다고 떨다니 살짝 분한 마음까지 들어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런 대목들을 읽자 납득이 갔다.

 

간절히 원하고, 필요한, 목숨을 바쳐서라도 가져야 하지만 빼앗기고 만 뭔가를 찾는 듯했다. 빼앗은 자가 누구든 그자에게 온 힘을 다해 오롯한 혐오와 증오와 악의를 내뿜고 있었다. (82)

 

나와 한 몸이나 다름없는 누군가가 죽어야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순간 일 마시 하우스의 아이 방에서 깨닫고 있었다. 이 때문에 거의 무너질 뻔했지만 나는 왜 느닷없이 절망 가득한 비참함과 비통함에 사로잡혔는지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당혹해했다. 그 방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혹은 적어도 다른 이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듯했다. (165)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은 이가 내뿜는 악의, 그것이 자아내는 공포라면 강력할 수밖에 없지. 다른 이에게 자신의 비통함을 그대로 느끼게 할 정도이니!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저택의 묘사까지 집요할 정도로 치밀해서 읽는 내내 책 속에 말 그대로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 . . . 누군가의 감정이나 공간의 분위기가 슬금슬금 만들어내는 공포심. 그건 한 대 세게 딱! 때리고 마는 충격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에 몸 어딘가 시퍼렇게 들어 있는 멍처럼,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뭉근하게 오래오래 남아서 붙잡고 놔주지 않는 무서움이었다. (ㅠ_ㅠ) 별 이유 없이 피나 내장이 튀는 오늘날의 작위적인 공포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공법의 호러였달까.

 

여러모로 영화 <장화, 홍련>이나 <디 아더스>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아름답다’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몇 안 되는 공포물이기도 하고, 질질 끌지 않고 단호하게 끝을 보는 점도 좋았다.

 

그나저나 영화 <우먼 인 블랙>도 나름 괜찮던데?! 흣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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