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은 온몸으로 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각을 시작하고 살아 있는 사람의 몸―손에서 시작하여 다른 부위, 곧 전신으로 확장되는―을 석고로 떠내는 라이프캐스팅을 하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화자는, 그리고 작가는 성실하게 몸을 움직이고 손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양감과 질감, 촉감을 추적한다. 육감적肉感的이라는 말은 이런 작품을 가리키기 위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점이 이 작품을 <가면의 고백>이나 <인간 실격>, 혹은 <새의 선물>보다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진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가라>와 <그대의 차가운 손>은 짝패와 같은 작품이다. 모두 미술을 하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이 등장하며,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제시되고 남겨진 이가 지난 시간을 추적하며 그것을 풀어나가는 설정, 조용하고 은밀한 속삭임이 내장까지 토해낼 듯한 절규로 확장되는 전개 등 유사한 부분이 많게 느껴진다. 세부적인 부분을 생각할수록 더 그렇다. 작품 속의 미술가들은 한 작품에서는 먹墨, 다른 하나는 석고라는, 흑백의 명도만 남은 소재들로 작업을 한다. 그리고 둘의 작업 모두 '물리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화선지에 가볍게 스미는 먹조차, 그의 소설 안에서는 물 분자가 시간을 들여 힘껏 밀어내야 할, 양감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두 작품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차 만큼의 차이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대의 차가운 손>은 기교를 줄이고 문법에 충실하게, 그러니까 내면에 불덩이를 숨긴 모범생이 성실하게 쓴 작품이라면, <바람이 분다, 가라>는 그가 조금 더 날렵하게, 세련되고 치밀한 방식을 터득한 이후에 썼다는 느낌이 든다. 작업이 끝나면 땀과 석고로 엉망이 되는 장운형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으나 분명히 먹을 밀어내는 물 분자의 기척을 조용히 느끼는 삼촌으로. 무엇보다 두 작품 모두 표지가, 아주, 좋다. 표지까지가 소설의 내용과 함께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이십대 전반에 나를 지배했던 이가 신경숙이었다면, 후반은 아마도, 한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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