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블랙
수전 힐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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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상당히 늦게까지 귀신의 존재를 믿었다. 늦은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도 뒤에서 귀신이 나타나지 않을까 무서워했고, 잠긴 문을 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절대 돌아보지 말아야지, 문은 왜 이렇게 안 열려’ 하면서 달달 떨었다. 자기 전 세수를 하면서 천장이나 내 뒤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귀신을 경계하느라 엄청 대충 씻었던 것들도 창피하다면 창피한 기억.

 

그런 날들은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는 며칠 동안 또다시 그 공포들이 되살아났다. 읽는 도중 잠시 엎드려 낮잠을 자다가 내 뒤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는 꿈까지 꿨을 때는 레알 무서웠다. 깨고 나서는 살짝 당황. 아니, 뭘 이렇게까지 반응을?

 

징그러운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소설 속 배경이 된 습지는 사진이라도 찍으러 가고 싶을 정도로 신비로운 곳이었다. 이야기 구조도 복잡하지 않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는 이유도, 그 여자와 마을 사람들에게 얽힌 사연도 단순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다. 1인칭 소설인데다 워낙 심리묘사가 뛰어난 탓(덕?)에 화자의 공포가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왠지 석연치 않았다.

 

이 나이 먹고 귀신 무섭다고 떨다니 살짝 분한 마음까지 들어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런 대목들을 읽자 납득이 갔다.

 

간절히 원하고, 필요한, 목숨을 바쳐서라도 가져야 하지만 빼앗기고 만 뭔가를 찾는 듯했다. 빼앗은 자가 누구든 그자에게 온 힘을 다해 오롯한 혐오와 증오와 악의를 내뿜고 있었다. (82)

 

나와 한 몸이나 다름없는 누군가가 죽어야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순간 일 마시 하우스의 아이 방에서 깨닫고 있었다. 이 때문에 거의 무너질 뻔했지만 나는 왜 느닷없이 절망 가득한 비참함과 비통함에 사로잡혔는지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당혹해했다. 그 방에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혹은 적어도 다른 이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 듯했다. (165)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은 이가 내뿜는 악의, 그것이 자아내는 공포라면 강력할 수밖에 없지. 다른 이에게 자신의 비통함을 그대로 느끼게 할 정도이니!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저택의 묘사까지 집요할 정도로 치밀해서 읽는 내내 책 속에 말 그대로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 . . . 누군가의 감정이나 공간의 분위기가 슬금슬금 만들어내는 공포심. 그건 한 대 세게 딱! 때리고 마는 충격이 아니라 모르는 사이에 몸 어딘가 시퍼렇게 들어 있는 멍처럼,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뭉근하게 오래오래 남아서 붙잡고 놔주지 않는 무서움이었다. (ㅠ_ㅠ) 별 이유 없이 피나 내장이 튀는 오늘날의 작위적인 공포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공법의 호러였달까.

 

여러모로 영화 <장화, 홍련>이나 <디 아더스>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아름답다’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몇 안 되는 공포물이기도 하고, 질질 끌지 않고 단호하게 끝을 보는 점도 좋았다.

 

그나저나 영화 <우먼 인 블랙>도 나름 괜찮던데?! 흣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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