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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인형과 교수대 ㅣ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2
앨런 브래들리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쯤 나온, 그야말로 달콤한 소설 <파이바닥의 달콤함>을 기억한다.
미스터리 문학에 대한 내 편견을 와장창 깨준 복덩이 되시겠다. 무서운 것 / 징그러운 것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터라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추리 소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단 말씀.
그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주인공 플라비아 들루스일 거다. '셜록 홈스의 추리 능력, 퀴리 부인의 화학적 재능, 지킬 박사의 열정'을 가졌다는 말이 딱 맞는 열한 살 화학 덕후 소녀가 얼마나 깜찍하고 앙큼한지, 뒤로 갈수록 추리도 추리지만 이 아이가 또 어떤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지가 기대되더라. 아직 결혼도 안 한 처자 입에서 "아이고 내 새끼 어화둥둥 어화둥둥" 소리까지 오호호.
해서 두번째 책을 기다리며 전편의 감흥이 줄어들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기우로 판명되었다 하하하. 오히려 전체적인 분위기가 살짝 어두워진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달까.
물론 <파이바닥의 달콤함>도 완전히 밝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플라비아 들루스라는 아이도 대놓고 귀여운 짓을 해서 귀여운 게 아니라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시니컬함과 미친 독설 때문에 오히려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거고, 귀족 가문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 + 들루스 집안의 어려운 경제 형편 +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플라비아의 고독감이 작품에 무게감을 주면서 균형을 맞췄었다. 뭐랄까, 한없이 가벼워지지 않도록 딱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 & 소설 속 사건 자체가 '죄 없는 아이의 죽음'과 얽혀 있는데다, 플라비아도 그 피해자 아이가 자기 또래인지라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는지 마냥 미쳐 날뛰지는(?) 못한 것 같다. 폭력배 애인을 둔 미모의 여성(나름 주요 등장인물)에게도 마구마구 연민의 감정을 느껴서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고...
그래도 역시! 플라비아의 귀여운 면모를 빠뜨리면 서운하니 가장 많이 파닥대면서 읽었던 부분을.
『보바리 부인』에 나오는 장면은 모든 문학작품을 통틀어 가장 섬세하고 흥미진진했다. 특히 음독한 에마가 “전기 충격을 받은 시체처럼 몸을 일으켰다”는 부분은 아무리 음미해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땐 가엾은 보바리 부인의 자살에 몹시 흥분한 나머지 그녀의 불륜 관계에서 세밀한 부분들을 거의 다 놓쳤던 것 같다. 기억나는 거라곤 좀개구리밥과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들이 가득한 백합 연못 옆에서 에마 보바리가 로돌프랑 단둘이 있었던 장면뿐이다. 플로베르는 그녀가 눈물 젖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한참 동안 바들바들 떨다가 “그에게 자신을 내주었다”고 적었다.
대체 뭔 소리람. 도거에게 물어봐야겠다.
“도거.” 내가 말했다. 그는 자루가 긴 괭이를 들고 텃밭에서 잡초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보바리 부인』 읽어봤어?”
“음,” 도거는 손수건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몹시 불행한 사람이 자살하는 이야기였죠.”
“파란 항아리의 비소로 말이야!” 나는 솟구치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발을 바꿔가며 깨금발로 뛰면서 외쳤다. “에마 보바리는 여러 차례 불행한 불륜 관계를 맺고서 결국 그걸 삼켰잖아. 그녀는 로돌프란 남자와 불륜 관계였어. 그러고 나서 레옹이란 남자하고도 그랬지. 물론 동시에 그런 건 아니었지만.”
“물론이죠.” 도거가 말했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불륜이 정확히 뭘 말하는 거지?” 나는 뭣도 모르는 티가 나지 않길 바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물었다. “플로베르가 말이야, 보바리 부인이 로돌프에게 자신을 내주었다고 한 건 무슨 뜻이었을까?”
“그건요,” 도거가 말했다. “그들이 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아주 많이 친한 친구요.”
“아!” 내가 말했다. “짐작한 대로군.”
아아아ㅠㅠㅠㅠ
전쟁 후유증 때문에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묘하게 사랑스러운 집사 도거와 플라비아의 조합은 언제나 훌륭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정말 좋았다. 정말. 정말.
아무튼 이 시리즈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이 섞인 요리를 앞에 놓고 '과연 저게...' 하고 반신반의하다가
살짝 먹어봤더니 예상 외로 엄청 조화롭고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게 되는, 그런 느낌!
세번째 권이 벌써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