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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견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어느 시점에서부터 오츠 이치의 소설 발매가 뜸한것 같은데, 그래서 더『평면견』을 읽기가 아쉬웠다. 이제 안 읽은 오츠 이치의 소설은『실종 홀리데이』밖에 없어서.『평면견』에는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한 편 한 편, 최대한 천천히 읽었는데 어김 없이 페이지는 줄어들기 마련이고, 결국 이야기는 끝이 났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두고두고 기억하려 한다. 이 기록은 대부분의 날들에서 온전치 못한 내 기억을 위한 것이다. 덧붙여 오츠 이치의 빠른 신간 발매를 기다리며.
이시노메
어느 한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풍문이 있다. '이시노메'라는 여인의 눈과 마주치면, 그 즉시 돌이 되고야만다는. 비단 인간 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종류 불문하고 전부 다 변해버린다. 이런 판타지와 호러의 결합은 조금만 어긋나거나 삐끗해도 유치해지기 십상인데, 오츠 이치는 유치하지 않게, 비현실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현실적이라서 공감가게 잘 쓴다. 정말로 무섭고 으스스해져서, 현재의 내 등뒤를 연신 살피게 될 정도로. 잃어버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주인공과, 동료 선생은 조난으로 이시노메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이때부터 펼쳐지는 전개와 분위기가 압권이다. 아들은, 이시노메의 집에서 오래전 돌로 변한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까.
평면견
처음엔 '평면견'이 단순히 종이나, 납작한 표면위에 그려진 개를 뜻하는줄 알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에 문신으로 새겨진 개, 포키는 문신으로써의 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느 개들과 같이 짖고, 움직이고, 배고파한다. 크기가 3cm 남짓하다는 것과 모양이 평면적이라는 것만 다를뿐, 실제의 개들과 유사한 형태로 실존하는 것이다. 주인공인 소녀는 그러한 포키를 다소 놀라워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자연스럽게 애완견처럼 기르기 시작한다. 한편, 소녀의 부모님과 남동생은 비슷한 시기에 암 선고를 받고 반 년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앞둔채 결속력을 다진다. 소녀는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되는 것도 서러운데 그러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철저하게 '혼자'라고 생각하고 외로워한다.
하지메
상상만으로 피어난 존재. 환상속에서만 살아가는 사람. 하지메는 그런 서글픈 존재다. 하지만 하지메는 슬퍼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만들어낸 친구들, 코헤이와 키조노와 기꺼이 친하게 지낸다. 어렸을적, 누구나 한 번쯤은 의도하지 않은 잘못으로 혼나게 될 것이 두려워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머리를 쥐어짜낸 적이 있을 것이다. 코헤이와 키조노가 궁지에 몰리기 싫어서 지어낸 거짓말은 '하지메'라는 가상의 아이를 만들어내 뒤집어 씌우는 것이었다. 그러한 간절한 바람으로 탄생한 하지메는, 코헤이와 키조노의 구체적이고도 디테일한 상상에 의거해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른다. 수 년에 걸쳐 지속된 하지메와의 우정. 하지만 시작부터가 달랐던 하지메와의 인연엔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다.
블루
사람이 없을때 사물이 움직이지 않을까?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을까? 그러다 사람이 오면 일제히 제 자리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조용히. 언젠가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던 적이 있다. '블루'엔 그러한 내 생각과 철저하게 맞닿는 인형들이 나온다. 말하고, 움직이고, 성격과 주관조차 뚜렷한 인형들이. 그 인형들 중, 애매하게 남은 자투리 천으로 만들어진 블루. 블루는 애초에 못생긴 인형이었다. 팔다리의 길이는 제각각이고 얼굴은 퍼렇고 두 눈은 싸인펜으로 점을 찍듯 그려진. 하지만 그러한 외형과는 달리 마음은 누구보다 착하고 사려깊은 인형으로 나온다. 남탓하지 않고,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바보 같은 성격으로 말이다. 블루는 마치 행복한 왕자의 왕자와도 같아서 보는 내내 안쓰럽고, 한낱 인형이, 무지하고 이기적인 인간보다도 낫다는 생각에 더러는 화가 나기도 했다. '블루' 한 편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