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인문학 - 위태로운 존재들을 위한 견고한 철학적 기초
마틴 하글런드 지음, 오세웅 옮김 / 생각의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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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자신의 인생철학을 세울 수 있는 견고하고 일관된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쓰였다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 우리 자신을 배우게 할 시간, 우리에게 진정으로 유의미한 행위가 무엇인지를 탐구할 시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틴 하글런드(Martin Hagglund, 1976년~46세) 스웨덴 출신으로 철학자, 문학 이론가 학자이며, 예일 대학교의 비교문학과 인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최고 명문대에 젊은 나이에 교수직을 맡을 정도면 소위 천재라고 불릴만한 인물일 것이다. 2008년 『급진 무신론』, 2012년 『죽어가는 시간』, 2019년 『내 인생의 인문학』 의 3권의 책을 출간했고, 책의 제목에서도 보다시피 담대하고 파격적인 목소리는 내는 철학계의 모더니스트 스타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고전은 고전의 시대의 것이고,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말로서 들린다.

 

 

『급진 무신론』을 읽지 못했지만, 존경하는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책을 자주 접한 나로서는 대충의 느낌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중세와 근대까지의 교회의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심지어 아직도 가톨릭에서는 수백 년 전의 구법이 실행되고 있고, 여성 사제(신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랑과 관용의 종교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종교에 가장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이 대부분 대상이 된다. 나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했고, 꾸준히 공동체 안에서 선을 추구하였지만, 결국은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은 ‘신은 존재한다’ 하지만 누구도 신을 증명하지 못한다. 즉, ‘불가지론적 유신론자’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래서 신의 대리인이라 칭하거나, 종교적인 직업의 가진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신이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인문학』 하글런드 교수의 20년 내공이 집약된 최신의 서적이다. “실존적 불안은 우리의 정신적 자유의 증표다”처럼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책의 핵심적인 단어는 ‘생존’과 ‘번식’의 두 가지라고 본다. 어떤 과학자, 철학자, 종교학자도 사람이 ‘왜 태어나고 사는지’ 답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리고, 우리의 설계도에 확실하게 각인된 모든 생물의 공통점 ‘번식’을 이성적으로 거부하는 몇몇이 있을 수 있지만,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종의 종말을 의미한다. ‘생존’을 위해 죽음, 상실, 불안, 두려움, 위태로운 삶의 여러 요소를 철학적으로(이성적으로) 구체화하여 더욱 명확하게 하자는 이야기로 들린다. 막연하게 살아야 한다. 보다는, 목표와 이유를 가지면 더욱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나올 테니 말이다.

 

 

“믿음”, “사랑”, “책임” 이런 말들이 우리가 인생을 살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말들일까? 때로는 문명적,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명제에 갇혀, 우리 인간의 본질이 묻혀버린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극소수의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위의 단어들을 위해 생존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삶이라는 것은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항하며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근원적인 욕구인 ‘번식’을 가장 저해하는 요소는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 능력이 있으면 모든 공동체의 보상을 당연히 쓸어가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생물은 본능적으로 짝을 찾아 나서는 게 숙명인데, 그것이 문명의 시스템에 의해 순환되지 못한다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1%의 능력을 갖춘 그룹이 99%의 공동체 부를 소유하고, ‘번식’의 기회마저 박탈시키고 있는 상황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책은 스타 교수에게 맞게 정말 알차고 훌륭한 내용이 많다. 나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생물은 본능적으로 경쟁우위에 서도록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반면에 인간은 ‘모두가 불행해지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이 사람 대다수를 육체적·정신적으로 몰아넣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생이 견딜 수 없거나, 살 가치가 있냐?’라는 질문은 결코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생명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태어난 인간에게, 이차부산물인 사회적 가치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단 말인가? 올겨울 많은 사유가 필요한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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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악마 ㅣ 이삭줍기 환상문학 5
자크 카조트 지음, 최애영 옮김 / 열림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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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문학」 판타지 문학, 가상적이고 비사실적인 요소 등으로 상상력이 강조되는 문학을 의미한다. 주로 공상(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상)의 영역을 소재로 삼는 장르문학이다. 마술적 사실주의 대표주자 격인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역시 환상 문학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나, 북유럽신화, 각 민족에서 내려오는 신화나 종교적인 민담에 공상을 더하여 문학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현대 이후에는 범위가 좁아져 톨킨의 『반지의 제왕』 같은 세계관을 갖춘 문학을 판타지 문학이라 많이 부른다.

 

악마(惡魔, Devil) 기독교, 이슬람, 불교를 막론하고 종교적인 수행을 방해하는 악한 영이나,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고, 인간을 질투하고, 인간 세상을 파멸하기 원하는 종족으로 그려진다. 천사가 인간을 돕는 연적 존재라면, 악마는 인간을 파멸시키는 존재이다. 기독교에서는 지옥의 왕으로 불리는 루치페르(샛별,금성)가 존재하는데, 9개의 계급이 있는 천사 중에서도 1등급의 세라핌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 볼 수 있는 대천사 ‘가브리엘’, ‘미카엘’이 8등급임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높은 계급의 천 사장이었다. 인간보다 최상의 종이며, 인간은 감히 신을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신의 바로 옆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는 왜 악마가 되었을까? 성경에서는 천사의 자유의지로 타락하고, 신의 자리를 탐하여 모반을 일으켰다고 한다. 게다가 이 모반에 참여한 천사가 반수가 넘었다고 한다.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하면 모두 악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서부 미국에서 늑대무리를 이끌고 수십 명을 죽인 늑대에게 ‘회색 악마’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늑대로서는 자신의 영토를 빼앗기고 살기 위해 가축과 인간을 사냥한 것이 아닐까? 인간도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지 않는가? 가축의 관점에서 그러면 인간은 악마가 되는가? 인간은 사랑하고, 가축도 사랑하고, 야생의 동물들도 사랑하며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악마가 왜 인간과 적대적인 관계가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종족들 간에는 사랑이 있지 않을까? 악마들 사이에서는 자기들만의 윤리도, 규칙도, 사랑도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사랑에 빠진 악마』 “내 사랑, 나와 함께 인간들을, 우주를, 자연 전체를 복종시키고 싶지 않아?” 마치 파우스트 박사를 보는 듯한, 호기심과 지식욕으로 가득한 귀족 청년 알바로에게 악마 비온데타가 다가오고, 마술적 지식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다. 그런데, 25세의 청년 앞에 나타난 악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 악마다. 비온데타도 알바로를 마음에 두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알바로는 갈팡질팡 고민만 할 뿐이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 또한, 사랑은 각자의 주체성을 가진다. 꼭두각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비온데타의 사랑이 진심이라면, 알바로의 영혼을 취할 수가 없다.

 

 

악마가 인간에게 사랑에 빠졌고, 인간은 그 사랑의 유혹에 고민한다. 인간들을 복종시키고 싶은 것도 악마의 본심이다. 알바로와의 육체적 관계를 맺기 위해 물리적인 여성의 몸으로 변신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온데타에게 인간의 복종과 알바로의 사랑 중 어느 것이 더 비중이 있을까? 알바로는 비온데타와 사랑을 맺고 인간을 복종시키는 일을 함께할 수 있을까? 이종 간의 사랑, 원수 집안의 사랑, 맺어 질 수 없는 사랑은 과연 존재할까?

 

 

살아오면서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가? 나만 평생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세상의 종말을 원한다면 기꺼이 그 길에 따르겠다. 부도덕한 길임을 알지만, 내게 유일하게 사랑을 준 그 사람을 막을 순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음을 불사하겠다. 둘 간의 사랑은 1대1의 관계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둘 사이에 세상이라는 것이 사이를 디밀고 들어올 자리가 있을까?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어느 부분에 중심을 두는 가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책으로 읽히리라 생각이 들고, 이런 부분이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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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세크 지음, 한정아 옮김 / 청미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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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간결하고 날카로운 현재시제의 문장들로 긴박감과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제시카의 과거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섬뜩하고 기괴한 사건들이 그녀의 개인사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음울한 결말을 만나게 된다.”「월스트리트 저널」 추천사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간결한 문장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는 부분이다. 문장의 꾸밈이 지나치면 산만해지고, 집중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에, 책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가 간결한 문체이다.

 

 

막스 세크(Max Seeck, 1985년~37세) 핀란드의 영화제작자 및 시나리오 작가이다. 2016년 『Hammurab's Angels』 스릴러로 데뷔했고,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40개국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2020년 『The Witch Hunter』는 2022년에 텔레비전 시리즈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핀란드 작가의 작품이 마지막으로 영화화된 것은 1954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경력도 상당히 특이한데,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스위스 취리히에서 MBA를 수료했다고 한다. 영화제작, 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 어린 시절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모방독자』 영미와 일본의 추리소설 위주에서 노르딕(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작가들의 추리소설이 최근 늘고 있다. ‘아바’, ‘아하’ 같은 음악의 주류가 되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까지 든다. 작가의 특징은 우연이 아닌 개연성이 확실한 탄탄한 플롯을 중심으로,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표현력에 있다. 작은 부분까지 섬세할 수 있다는 것은 그와 관련된 학문이나 자료를 엄청나게 섭렵해야 가능한 부분이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마치 의사 공부를 하듯이 말이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일본적 설명을 빌리자면, 사회파 추리소설에 가깝다. 사회파의 특징은 현실에서 일어날법한 잔혹한 사건의 묘사에 집중하고, 주로 경찰이 사건의 실마리에 다가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살인」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말한다.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극소수의 변종을 제외하면 살인에는 각자의 이유들이 존재한다. 법에서도 의도와 행위가 모두 인정될 때 살인죄로 처벌하며, 고의가 없이 행위가 있을 때는 과실치사로 구분하여 비교적 약한 처벌을 한다. 고대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복수가 정당한 법 집행의 수단이 될 수 있었으나, 복잡해진 문명의 사회에서는 법체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법이라는 것이 만드는 것도 상류층이고, 집행하는 것도 상류층이고, 또한 그들은 서로서로 혈연으로 연결되어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상류층의 일탈보다 더욱 많이 일어나는 불공정한 사례들이다.

 

 

바닷가가 보이는 아름다운 고급주택가들이 모여있는 저택에서 북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로저 코포넨의 아내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코포넨은 자신의 책 『마녀사냥』을 언급하며 책에 등장하는 살해방법과 유사점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근처에 또 다른 시신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찰의 조사로 그의 집 앞의 얼어붙은 바다 밑에서 마리아와 똑같은 검정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시신이 발견된다. 코포넨의 소설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썼기에, 주변에 다른 시신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사건에 가까운 코포넨은 경찰과 함께 수사본부로 향하지만, 도착하지 못한 채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된다.

 

 

담당 경찰관 제시카 니에미 경사는 늘어나는 피해자들을 보면서,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판단하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인행위를 이어간다고 추리해낸다. 단순 사이코패스의 모방 살인이라는 초동수사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다음 희생자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가장 유력하게 살인의 목적을 설명 가능했던 원작자가 사망함으로 인해, 이제 경찰은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왜 이런 살인이 일어나는지를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 동기와 이유가 밝혀질 때, 범인의 윤곽이 드러날 테니 말이다. 찾지 못하면 계속해서 다음 희생자가 나온다.

 

 

2013년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순간 생각났다. 자신의 정의로 할머니와 손주가 굶어 죽었다. 민준국은 박수하의 아버지의 비리로 아내를 잃었다. 드라마는 복수와 정의 용서의 경계가 모호했다. 복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법은 과연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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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 ㅣ 뒤란에서 소설 읽기 2
V. E. 슈와브 지음, 황성연 옮김 / 뒤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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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못한다는 저주를 받은 애디 라뤼는 가장 잊지 못할 인물이며, 그녀의 이야기는 믿기 힘든 불멸을 가장 유쾌하게 소환한 이야기다.” 「닐 게이먼」 『파우스트』의 젠더화된 버전이라 책을 소개하고 있다. ‘신’ 혹은 ‘악마’와 ‘선’ 혹은 ‘악’의 개념이 아닌 존재와 거래를 통해 영혼을 내어주고 영생을 얻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얼마 전 읽은 오디세이아의 젠더화된 버전 『키르케』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바다에서 방황하는 대서사시에서 키르케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심지어 책을 읽은 사람도 키르케에 관한 기억이 없을 정도로 미약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한순간의 불꽃이 아니라, 일평생을 살아가는 온전한 존재였던 것이다.

 

 

신화와 현대이전의 문학은 거의 모두가 남성 중심의 이야기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우리가 위대하게 칭송하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등의 작품에서 백인 이외의 인종은 이름조차 없는 열등한 동물로 묘사된다. 두 작품에서 작중 주인공이 만나는 원주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원래의 언어와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나치즘과 같은 고의적인 인종차별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문호조차도 모든 사상을 섭렵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기가 아는 세상만큼 보이고, 자기가 사는 세상의 순리대로 세상을 이해했을 것이다.

 

 

「파우스트」 아이큐 200도 모자란다는 독일의 천재이자 문호 괴테의 평생에 걸쳐 써낸 희곡이다. 1774년 처음 집필을 시작하여 사망하기 1년 전인 1831년에 완성되었다. 괴테의 생애와 철학이 온전하게 담겨있는 작품으로 아직도 작품 해석에 대한 여러 논문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우울과 환멸에 빠진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소트펠레스’의 세상의 온갖 쾌락을 누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단, 욕망을 충족하는 대신 금구를 언급하면 영혼을 가져가겠다고 했으며, 결국 파우스트 박사는 욕망의 충족 중 금구를 말하게 되고, 악마가 그의 영혼을 가져갈 때 신의 구원으로 모면하게 된다. 신비주의를 넘어서 괴테가 살던 시대의 기독교적 사상의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하며, 결국 인간의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며 신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 1714년 프랑스 시골 마을 비용에서 스물세 살 처녀가 숲을 향해 달린다. 아이 셋 딸린 홀아비와 결혼하라는 주변의 강요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 보듯 뻔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숲에서 외친 그녀의 간절한 기도에 ‘어둠’이 응답한다. 처녀는 어둠에 자유를 달라고 간청하고, 어둠은 대신 영혼을 달라고 하고, 처녀는 자신이 더는 자유를 원하지 않을 때 영혼을 가져가라고 한다. 이로써 처녀는 영원한 젊음과 불멸을 얻게 되지만, 어둠은 한가지 장치를 하게 된다. 그녀는 아는 사람, 만나는 사람 모두가 시야에서 벗어나는 순간 모두 그녀를 잊어버리게 만든 것이다. 시야가 벗어나는 것만으로 잊힌다는 것은, 그 어떤 안정적인 삶이 허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돈을 받은 여관 주인도 문을 닫고 나가면 그녀를 손님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렇게 300년을 버텼고, 그녀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도는 훔치는 것이었다. 영생이란 자유를 얻었지만, 왜 그녀는 기억에 집착했을까? 잊힌다는 것만큼 가장 완벽한 자유는 없는 데 말이다. 이율배반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흔적을 여기저기에 남기기 시작한다. 그림과 음악 속에 자신의 이미지를 남기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외치거나, 아들린이 기억되지 않는 삶을 포기할 때 영혼은 계약자에게로 빼앗긴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탐구하고도 절망한 파우스트 박사와 돼지우리 같은 삶에서 벗어나 영원한 젊음과 불멸의 삶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의 욕망은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걸 의미할까? 아니면 인간의 욕망은 완전체가 아닌 수정과 보완을 걸치며 완성되어 가는 것일까? 완전체 이전의 욕망은 이토록 위태롭고 위험한 것일까?

 

 

인간의 가장 큰 축복인 젊음과 영생을 얻었지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에 맞서 흔적을 남기고자 하다는 여자의 이야기가 과연 슬플까? 300년 전 1714년으로 돌아가서 홀아비와 집에서 고단하고 비참한 삶을 살지만, 누군가에는 기억되는 삶을 사는 것이 옳았을까? 그녀는 과연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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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최고 밉상일 때 최상의 부모가 되는 법 - 자책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부모 감정 솔루션
킴 존 페인 지음, 조은경 옮김 / 불광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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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 왔던 미숙했던 방식에 대해 반성하게 하면서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의 여리고 취약한 모습을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수치스럽지 않게 안내한다. 이 책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한 사람으로서 큰 위로를 받음과 동시에 부모로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 그러나 미숙함에 좌절한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

 

 

사춘기(思春期, period of puberty) 신체의 성장에 따라 성적 기능이 활발해지고,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 남자는 정액의 생산하고 여자는 초조를 징표로 본다고 한다. 남자는 변성기가 시작되고 수염이 나기 시작하며 남자다운 체격이 생성된다. 여자는 골반이 넓어지고 유방도 발육하고 전형적인 곡선의 체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생각하는 사람 이전에 생육과 번성을 해야 하는 본능을 타고난 유전자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 성장은 번식을 위해 유리한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십수 년을 살아오던 모습에서 갑자기 신체적 변화가 오면 누구나 두렵고 당황스럽다. 더욱이 요즘은 신체적인 사춘기와 함께 사회적인 사춘기가 병행으로 진행된다. 신체의 변성은 스스로 자연스럽게 진행되더라도, 이 시기에 형성되는 인격의 형성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 시기에 형성된 인격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킴 존 페인(Kim John Payne) ‘김씨’성을 가진 한국계로 생각했으나 전형적인 미국 백인이다. 교육학 석사로 30년간 미국과 영국의 학교에서 상담전문가로 활동했으며, 유럽연합에 속한 교육 기관에 자문을 제공해온 세계 최고의 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연구자보다는 현장전문가로 보이는 부분이다. 페인은 난민촌의 아이들과 선진국의 아이들이 똑같이 뭔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에 관한 연구와 해결책을 개발해왔다고 한다. 난민과 선진국의 환경적 차이는 극명하게 다르다. 환경적인 요소보다 더욱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가 최고 밉상일 때 최상의 부모가 되는 법』 예전 프로그램에서 ‘말 잘 듣는 아이가 성장해서 더 위험할 수 있다’라는 강연을 본 적이 있다.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거나, 착하거나, 부모의 기대를 충실히 이행하는 아이로 보이겠지만, 커가면서 점점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부모의 기대만 맞추게 된다고 한다. 결국, 부모의 기대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게 되고 종국에는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을 잊거나, 억눌린 감정이 폭발해 뒤늦게 반항심리가 일어난다고 한다.

 

 

“아이들 잘 키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훌륭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것일까?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로 성장시키는 것인가?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어떤 기대를 하며 성장으로 그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육아의 과정에서 아이들은 수시로 부모를 자극하고 때로는 사고를 치기도 한다. 한두 번은 참아내도 반복적으로 일어나다 보면 부모도 한계에 이르게 되고, 아이에게 거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게 된다. 나중에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 생각하고 후회와 죄책감에 사로잡히지만, 정말 마음에 없던 말일까? 총이 총알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격발이라는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아이와의 다툼에서 터져 나온 말은 무심코 나온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사람의 행복은 사람을 통해서 오고,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여 꾸준하게 소통하는 동물이다. 육아라는 것도 의식주의 생존의 필수조건을 제공하는 것도 있지만, 결국 아이와 소통의 문제이다. 보통 자녀와의 차이는 짧게는 20년 길게는 30~40년의 나이 차이를 가지게 된다. 3번 이상의 문화의 대격변을 거친 것이다. 우리는 강아지가 소변을 실수하거나, 훈련된 강아지가 가끔 실수해도 매우 화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강아지이니까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까 살짝 주의만 주고 넘어간다. 그러나, 언어로 대화가 되는 아이가 잘못하면, 부모는 화를 내고 야단친다. 30년이 넘는 세대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세대와 아이를 대화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매 순간 최고의 부모가 될 수는 없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최악의 한마디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말한다. “부모가 화만 내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잘 자란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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