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호랑이 책 - 그 불편한 진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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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꾼이 가난한 나머지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겠다며 산을 넘어가는데, 도중에 진짜 호랑이를 만났다. 막상 호랑이를 만나 겁이 난 나무꾼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호랑이에게 아이고, 형님!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저에게 형이 하나 있는데 죽어서 호랑이가 되었다고 하더니 바로 그 형님이시군요!” 하였다. 그러면서 어머님이 형님을 그리워하니 당장 뵈러 가자고 하였다.

 


이에 호랑이가 그 말을 믿고서 지금 당장 어머니를 뵙고 싶지만, 호랑이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없다.”라며 거절했다. 그 뒤로 꼬박꼬박 호랑이가 돼지를 가져다 놓으니, 그것으로 나무꾼과 어머니는 부자로 살게 되었고, 나무꾼은 호랑이가 얻어 준 색시에게 장가도 들었다. 몇 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호랑이가 돼지를 가져다 놓는 일도 사라졌는데, 궁금해진 나무꾼이 예전 호랑이가 살던 굴에 가 보니 새끼 호랑이들이 꼬리에 흰 베[]를 드리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우리 할머니는 인간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도 식음을 전폐하다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꼬리에 흰 댕기를 드리고 있는 거예요.”라고 하였다. 나무꾼은 호랑이의 효성에 감동해서 어머니 산소 옆에 나란히 묘를 써주었다고 한다.




어릴 적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람조차도 부모에게 효를 행하기보단 버리는 시대에, 속았다고는 하나 호랑이의 지극한 효심에 숙연해지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전래동화에는 이렇게 호랑이가 자주 나온다. 또한, 많은 큰 산의 신령으로도 호랑이가 많이 등장하고, 주민들은 그들에게 기원했었다. 한반도의 모양도 호랑이의 형상을 하고 있고, 호랑이는 최강의 육식동물이자 우리 민족에게는 강한 동물이자 영적인 존재였다.

 



저자는 한반도의 호랑이들이 어떻게 이 땅에서 사라졌는지 찾아내어 이야기한다. 호랑이는 사자와 버금가는 맹수이고, 산길을 헤매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두려운 포식자이다. 그럼 반면에 도시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악귀를 쫓고 길을 불러오는 영물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벌과 상을 모두 다 주는 마치 신처럼 느껴지는 존재이다. 책은 인간의 시점이 아닌 호랑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간의 욕망과 재미로 살육당하는 호랑이와 그 터전을 점점 잃고 멸종되어 가는 슬픈 이야기다.

 





물론 인간과 호랑이가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면,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축으로 기르는 몇 가지 동물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생물들과도 공존하지 못한다. 그저 개발과 탐욕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터전을 빼앗고, 죽이는 것이다. 영물의 존재에서 비참하게 도륙당해 멸종하기까지의 여러 이야기를 닮았다. 단순히 호랑이가 좋아서 가볍게 쓴 책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지구라는 생태계는 조화가 중요하다. 실제 꿀벌이 사라지면 전 세계 식량의 3/1이 사라진다고 한다. 한 동물 멸종의 슬픔보다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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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쓸모 - 상한 마음으로 힘겨운 당신에게 바칩니다
홍선화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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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를 뿐,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이방인이 아닌 이웃이 됩니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깊은 밤 어두운 독서실에서 오랜 시간 움직이지 못했다. 십 대의 사유로 그치고 싶지 않아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정신의료기관에서 1년의 수련과정을 거쳐 정신건강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여러 정신건강 현장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대학원에서는 심리학을 공부했다. 저자의 소개에서 화려한 약력이나 포장된 이미지가 아닌, 날 것 그 자체의 순수함을 느끼긴 참 오랜만이다. 본인도 학창시절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노동 현실에 분개하고 젊은 혈기에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계급에 대해 투쟁했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모두가 노동의 현실에 시선이 가 있을 때, 인간 전태일의 외로움과 괴로움에 가슴 아파했다는 말에 울컥해지고 한편으론 이상한 위로의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흔히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검증력이 없는 망각과 환상의 증세를 보이는 조현병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에 잦은 지장을 초래하는 거의 모든 병적 상태를 정신병이라고 부르면 옳지 않다. 우울증이나 심한 건망증, 불안한 증세 등 뇌에서 파생되는 모든 질병은 정신질환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우울함이나 좌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현실적으로도 코로나 이후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전인구의 5/1가 넘는다고 한다. 감기보다 가벼운 처방을 받을 일을 구시대적 정신병원이라 칭하며 내버려 두는 것은, 못에 찔린 상처가 곪아 파상풍으로 목숨을 잃는 것과 다른 바가 없다.

 


정신병원이라는 명칭부터가 바뀔 필요가 있다. 현대인은 정도의 차이, 종류의 차이만 있을 분 의학적으로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들이 없다. 하다못해 불면증도 정신질환의 하나이니 말이다. 21세기 들어 뇌과학과 인공지능 분야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으나, 아직도 인간의 뇌에 대해서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읽은 책이 생각이 난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여성인데, 자신의 의지로 생긴 질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삶에 불평불만만 하고 살아갈 수 없기에 질병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택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80억 인구 중에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가 불면증을 앓는 사회에선 불면증이 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쪽이 다른 쪽보다 많은 것일 뿐이지 잘못된 것은 아니란 것이다. 담배나 술에 중독된 것도 정신질환이고, 성격이 나쁘고 고약하다는 성격장애도 정신질환이다. 그런데 이런 질환은 전문의도 조현병도 고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인식에서도 문제이지만, 조현병에 듣는 약처럼 잘 듣는 약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성격장애는 가정 내에서 많은 폭력적인 문제도 만들어 낸다.

 




저자의 말처럼 마음을 다치면 마음이 닫힌다. 닫힌 마음은 더욱 고립되어 안고 살아가게 된다. 가족에게 마저 고통을 주면서 말이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숨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번쯤은 자신을 뒤돌아보고, 작은 문제가 더욱 커지지 않게 저자의 조언과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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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효과 - 당신이 침묵의 방관자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나비 효과
캐서린 샌더슨 지음, 박준형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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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적 전환기에 벌어진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격렬한 외침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음을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1964313일 금요일 새벽 미국 뉴욕 퀸스 지역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의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제노비스는 315분에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이나 3번에 걸쳐 칼에 찔려 비명을 지르면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몸부림쳤지만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범인은 윈스턴 모즐리였다. 그는 밤늦게 집을 나와 그냥 여자를 하나 골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죽일 여자를 물색하다가 제노비스를 택했다. 6일 후 다른 절도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40건의 절도와 두 여성을 살인 강간했다고 한다.

 




1964327뉴욕타임스살인을 목격한 38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라는 기사로 사건을 크게 다루면서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히게 된다. 정상적인 남녀 38명이 창가에 서서 희생자가 30분 동안 비명을 지르는데도 구조는커녕 고함, 신고조차 하지 않은 이 일에 모든 매체와 시민들은 분노하게 된다. 이 사건은 방관자 효과의 사례로 사회심리학에서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38명의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같은 범죄자들도 아니었고, 사람에 대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시민성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연구의 결과는 책임의 분산효과 즉, 저 정도의 사건이면 누군가 벌써 신고했겠지라는 이유여서였다. 이 책임감 분산은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욱 커진다.

 




착한 사마리아 인 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법은 도덕에서 최소한 강제적으로 지켜야 하는 행위를 정해놓은 것이다. 사마리아 인의 법은 신약성경 누가복음서 1030~37절에서 유래된 것이다. 어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상처를 입고 길가에 버려졌는데, 동족인 유대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못 본 척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유대인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 인이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에서 구조해준다.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을, 멸시받고 소외당한 사람이 헌신적으로 행한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 법을 형법에서도 적용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응급처치 중 본의 아닌 과실로 인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거나, 손해를 입혔을 때 민형사상의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얼마 전 KBS 교양프로그램 쌤과함께에서 학교폭력 예방법에 대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많은 외국에서 효과를 본 방법, 촉법소년에 대한 처벌강화, 경찰 캠페인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지금은 사라진 안돼라는 구호를 외치는 캠페인이 방영되었는데, 북유럽 같은 선진국의 생각과 다른 우리나라 학생에게 저 구호를 시킨 것은 정말 탁상공론의 끝이었다 하겠다. 실제 한 명의 학교경찰이 3개 이상의 학교를 맡는다고 한다. 그것도 몇 년 주기로 바뀌기 때문에 적응할 때쯤이면 그나마 전근을 해야 한다. 탁상공론과 효율 없는 경찰로는 예방할 수가 없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학교폭력을 당하는 학우를 그냥 모른척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학생이 학교폭력을 행하는 학생의 감시가 되는 것이다. 지켜보는 눈이 많으면 범죄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인성교육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방관자가 되었을 때, 결국은 나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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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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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네즈의 문체는 뭔가 은밀하면서도 세련되고, 엉뚱하면서도 현명하다. 필멸을 사색하는 중에도 눈을 찡긋한다. 삶은 그렇게 고통스럽고 심각하면서도, 부조리하고 코믹한 것이다.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얼마나 다정한가. 오프라 매거진 》​ 인상 깊은 추천사다. 부조리하고 필멸의 존재라고 믿는 인간은 그 필멸조차도 증명하지 못한다. 필멸의 이유를 알려면 인간의 설계 원리부터 알아야 하는데, 게놈지도를 완성한다고 해도 원인이 아닌 복사에 불가할 것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서 목숨을 끊은 두 명의 한국인이 생각났다. 안락사는 의료진이 처방해 준 약물을 환자가 복용해 목숨을 끊는 방법을 말한다. 기타 약물이나 의료진의 도움 없이 목숨을 끊는 행위는 자살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로 인식되어있다. 그와 더불어 수천, 수만 년간 인간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과학, 철학, 종교 그러나 그 누구도 답을 얻지 못했다. 컴퓨터 엔지니어가 프로그래밍하면 주어진 조건대로 움직인다. 인간은 다른 생명을 취하고 강제적으로 삶에 집착하도록 설계되었다. 과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암 진단을 받은 후 친구의 처음 생각은 어떤 치료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생긴 암의 유형이 자신과 같은 단계에서 발견되었을 경우의 생존율을 알게 된 친구는.” 암에 관해서는 책 한 권을 써낼 만큼 공부했고, 많은 사례를 찾았었다. 바로 옆에서도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4기 수술 후 고통에 스스로 연명을 포기한 분도 계셨고, 오랜 항암 치료로 온몸이 부어오르고 걸을 수 없이 폐인처럼 된 분도 있다. 반면에 항암 치료를 마친 순간에도 억척같이 꾸역꾸역 밥을 입에 넣으면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경우도 봤다. 느낀 것은 숭고함도 의지도 아니라, 자기애 왜 사는지는 모르지만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있어야 암과 함께 공존 가능하다는 거다.

 


그게 사는 거야. 그런 거야. 무슨 일이 있건 삶은 이어진다. 엉망의 삶, 부당한 삶,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삶, 내가 처리해야 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티벳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을 하겠네.’ 세상은 80억이 넘는 인간이 살고, 그것보다 더 많은 생명이 산다. 나 혼자의 의지로 어디까지 이룰 수 있겠는가? 무엇을 이룰 것이고?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과거의 경험이라고 한다. 지금 내 의식 속에서 행복을 내쫓고 고민과 욕망만 한가득히 아닐까?

 





인류는 유전자에 종말이 새겨진 채 태어나는 동물이다. 수만 년 전에는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종말을 믿었을 것이고, 푸른 눈동자의 나라에 검은 눈동자의 몽골이 들이닥쳤을 때 그들은 종말을 보았고 악마를 보았다. 페스트가 그러했으며, 많은 일이 종말이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을 겪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는 바이러스로 인한 재앙은 50~100년 주기로 항상 있었다. 지금 많은 사람과 미디어가 떠들어대는 종말론은 수천 년 전에도 있었던 일이고, 지금 겪는 팬데믹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처음 겪는 일일 뿐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것은 팬데믹 때문인가 아니면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인가? 종말과 고통에서 당신은 어떻게 지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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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임팩트
이주선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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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는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의 일부 또는 전체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17세기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 인간은 기계라는 철학적 수준의 인식부터 그 출발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에는 인간의 뇌 말고는 달리 인간의 지적 능력을 구현할 수 있는 기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컴퓨터가 발명되고 발전됨에 따라, 인공지능은 사람이 수행하는 지능적인 작업을 기계인 컴퓨터가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립되었다.

 


지능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는 모두 정도의 차이지만 지능이 있고, 무생물이라는 것들도 밝혀내지 못했을 뿐 알 수 없다. 인간의 지능이 다른 모든 것보다 월등하기에 AI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해서 창조한다. 예전에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화자가 된 적이 있었다. 201639~15일까지 치러진 대결은 41로 알파고의 압승이었다.

 




1946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이 발명된 이후 단순 계산기 수준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1997IBM의 인공지능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승리한다. 그 후로 오델로, 퀴즈프로그램들 같은 대회를 석권하지만, 경우가 수가 거의 무한에 가까운 바둑은 정복하지 못한 게임이었다. 대회 방송을 직접 보면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불공정 경기라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성은 개인이 아니고 모든 인류의 병렬적인 합에 의한 창조물이다. 알파고 또한 단순 기판 하나의 컴퓨터가 아니라, 병렬로 수백 대가 연결된 슈퍼컴퓨터다. 즉 정당한 대결이 성립하려면, 프로 바둑기사 수백 명과 알파고가 싸웠어야 옳을 것이다. 그런 알파고를 상대로 1승을 거둔 이세돌 9단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2~3명이 대국을 치렀다면 알파고는 아직도 바둑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공포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면서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일 뿐이다. 인류는 한 번도 지도자 없었던 적이 없었다. 공동체가 구성되면 질서가 필요했고, 효율적인 명령전달 체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계급이 생기고,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다. 즉 인간사회 전체가 하나의 슈퍼컴퓨터인 셈이다. 인공지능이 소설대로 인류를 상대로 지배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80억 인구의 병렬된 지성을 뛰어넘어야 한다. 고작 바둑 프로 기사 한 명을 이기기 위해 사용된 장비의 가격은 천문학적 수준을 뛰어넘는다.

 




21세기 초반은 뇌과학과 인공지능이 핵심인 시대이다. 17세기의 데카르트가 무인 자판기를 보고 두려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할 거인데 말이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두려움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미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려면 제대로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결국, 인공지능은 인류 문명의 도구이다. 바퀴가 발명되어 자동차가 나왔다. 그로 인해 교통사고로 사람이 사망한다. 그것은 바퀴의 문제가 아니라, 운용하는 사람의 잘못인 것이다. 유명한 예로 칼을 예로 들 수 있다. 주방장에 손에 들린 칼은 요리하는 것이지만, 강도의 손에 들린 것은 흉기니 말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자본주의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무기이다. 투자라는 것이 그렇다. 리스크가 적으면 수익도 적다. 인공지능이 아직 대중화되기 직전의 지금이 바로 가장 큰 투자의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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