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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목가란 본래는 서정시의 한 형식으로, 공상적인 황금시대를 동경하고 평화롭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미화하는 내용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목가 [pastoral, 牧歌] (두산백과)
책의 대제목은 1부 기억 속의 낙원, 2부 추락, 3부 잃어버린 낙원 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제목은 미국의 목가가 부서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책은 ‘스위드’가 왜 미국의 목가를 대표하게 되었는지, 그가 미국의 국가 정세에 따라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한 나라의 문제를 한 가족이라는 틀로 가져온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개인의 문제로 끌고 왔다. 그리고 그 시도는, 절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고전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특정한 시기와 사건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것을 고전이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은 한 시기에만 머물지만 전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여 인간의 본질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그는 역사에 족쇄로 묶여 있었고, 역사의 도구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열광적인 존경을 받았다. 만일 그가 1943년의 그 슬프기 짝이 없던 날, ‘하늘의 요새’ 쉰여덟 대가 독일 공군 전투기들에게 격추당하고, 두 대가 대공포에 떨어지고, 또 다섯 대가 독일에서 폭격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영국 해안을 지나자마자 추락한 바로 그날이 아닌 다른 날에 위퀘이크의 농구 기록을 갱신했다면 — 배링어와 싸워 27점을 기록했다— 그런 뜨거운 존경은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목가 1 (1부 기억 속의 낙원 17p)
그가 영웅이 된 것도, 추락하게 된 것도 미국의 시대상황에 따라 갈라졌다. 그는 시작부터 끝까지 선의를 가지고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선의는 상황이 변하면서 일관되게 행동해도 선의가 아니게 된다. 그의 딸이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의 일환으로 선량한 시민 한명을 폭탄테러로 죽인 이후 그는 추락하게 된다. 그가 가진 아버지라는 관념으로는 그의 딸인 메리를 그가 어떤 행동을 하였든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시민으로서의 그는 살인자인 메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메리를 벗어나 다른 것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결국 메리와 자신의 문제로 돌아와 평생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동생 제리에 의하면 그가 잘못한 것은 단지 주어진 규칙 아래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형이라는 사람은 늘 모든 것을 매끈하게 다듬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형이라는 사람은 늘 온건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남의 감정을 다치게 할 것 같으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타협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자족하는 사람이야. 형이라는 사람은 늘 상황의 밝은 면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야. … 사회가 뭘 하라고 하건,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예절. 하지만 예절이란 건 형이 그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는 거라고. 하긴 뭐, 형 딸이 형 대신 침을 배고 있네, 안 그래? 네 사람?(여기서 네 사람은 스위드의 딸인 메리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라는 명목으로 폭탄테러를 하여 죽인 네 명의 사람을 가리킨다 - 리뷰 보충설명 ) 형 딸이 예절을 단단히 혼내줬네.”
미국의 목가 2 (2부 추락 69 p)
제리의 말을 보면, 오히려 스위드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추어진다.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면, 그의 삶이 정말 그른 것인가? 책 속의 작가 네이선 주커먼은 스위드의 고뇌를 이렇게 정의한다.
"그는 대부분이 질서이고 아주 작은 부분만 무질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는 환상을 만들었는데, 메리가 그를 위해 그 환상을 해체해주었다. 그애가 염두에 둔 것은 특정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애는 미국에게, 그녀 자신의 집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미국의 목가 2 (잃어버린 낙원 281p)
소설은 스위드 레보브의 입장에서만 서술되고 있다. 다른 인물들이 어떤 삶을 선택할 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오는 내용은 현실적이나 비중이 얕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한 사람의 고난에 집중할 수 있다. 이 말은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였기에 다른 이야기를 하려면 새로운 소설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모의 자기희생이라는 거의 법제화된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것이 우리에게서 제멋대로 반항하는 태도를 뽑아버리고, 품위 없는 충동을 모두 지하로 밀어냈습니다.
우리가 완벽해질 수 있다는 그들의 흔들림 없는 열렬한 환상을 부수고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방황하려면 우리 대부분은 엄청난 용기를 내야 했거나, 아니면 무척 어리석어야 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목가 1 (1부 기억 속의 낙원 73p)
한편으로는 미국의 목가를 설명하기에는 그가 내세운 스위드라는 인물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위드는 유대인임에도 철저하게 미국의 미덕과 이상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스위드는 설로의 방향을 회전하지 못하고 계속 끝까지 산다. 그러나 이런 그를 미련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영웅으로 받들어준 사회에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선량하게 살고자 하는 규칙을 지켰다. 스위드는 ‘평범한’사람이라는 지키기 어려운 개념을 평범하게 지켜온 사람이다.
"설령 그들이 합리적으로 또는 요령껏 주장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조르는 것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기대를 꺾는 것은 자신의 우월한 힘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이 헌신적인 아들. 남편. 아버지라는 자신의 존재에 환멸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모두에게 아주 큰 칭찬을 받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목가 1 (2부 추락 218p)"
이 소설은 현대식 비극이다. 고대의 어떤 비극은 신이 신탁을 내리고 그 신탁을 피해 선량하게 살았으나 결국 신탁대로 비극을 손으로 빚는 내용 등이 서술된다. 이 책이 서술한 비극은 영웅취급을 받던 평범한(?)인물이 국가 자체의 문제점에 봉착하여 과격한 행동을 한 딸에 의해 살인자의 아버지가 된다. 이 역시 운명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이라 판단할 수도 있지만, 이 운명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라도 맞을 수 있다. 이 비극은 신탁이 아닌 국가적인 문제 -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속하는 문제 처럼 보이는 - 일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에서 과거의 비극과 차이를 보인다.
이 소설은 인간본연의 딜레마를 스위드라는 인물로 보여준다. 세상은 무질서와 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질서는 안정감을 주지만 그를 배신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한쪽을 선택하는 게 가능한가?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논리적인 내용이, 다른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논리성이 부족한 내용이 될 수 있다.
딸에게는 베트남 전쟁을 막기 위해 폭탄테러를 한 일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논리적인 일이었다. 온건한 태도로는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려는 무리의 시선을 끌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위드라는 인물은 정 반대해야 한다면 무력적인 시위보다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시위가 낫다고 판단한다. 그 방법은 평화적인 방법이고, 지금 현재 보유하고 있는 틀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을 방법처럼 보인다. 성공 가능성은 폭탄테러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딸이 살인자가 된 것이 확실해진 이후, 스위드 레보브에게 질서는 무질서의 우연적인 산물이 되었다. 시각을 달리하니 모든 무질서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실라는 딸이 없어진 이후 네달 동안 스위드의 정부였는데도 폭탄 테러 직후 그의 딸을 숨겨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실라는 스위드와의 관계를 이어온다. 스위드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실라는 스위드를 포함한 모두로부터 스위드의 딸을 숨겨주었다. 실라와 스위드의 신뢰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연이었다. 각자는 각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잣대로 평가하는데도 그 잣대를 서로 알지 못하기에 이어진 신뢰였다. 그걸 깨닫고 난 스위드는 누구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질서와 무질서의 딜레마를 스위드라는 ‘평범하고 영웅적인’ 인물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은 느리지만 갑작스럽게 온다. 미국 문명이 '전형적인 미국인' 스위드 로부터 메리를 낳은 것은 없을 일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비극이 될 요소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탄생한 것이었다. 비극을 겪는 메리와 스위드에게는 그건 갑작스럽고 대처할 수 없는 재앙이 되었다. 가치대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비극은 빚어졌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존재하지 않고 무질서만이 존재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비극이 내게 올 경우, 나는 어떤 판단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나는 청소년기를 제외하고 삶과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온전히 순응한 ‘평범한’사람은 되지 못하였지만, 새삼스럽게 내가 질서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것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는다. 세상이 만든 기준이외의 나만의 기준이 있으면, 괜찮은걸까. 이 딜레마는 살아있는 한 끝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 같다. 결정내린 것은 늘 번복하게 만드는 삶 앞에서 무엇도 결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