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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 나태주 인생 이야기
나태주 지음 / &(앤드) / 2021년 12월
평점 :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완독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시간이다. 누군가는 오늘 2021년의 마지막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인생 전체가 시간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고 그 시간의 덩어리들이 부서져서 1년이 되고 하루하루가 되고 순간이 된다라고 시인은 말했습니다. 외할머니와 함께 접방살이를 하던 기억부터 6·25 전쟁 이후 격변에 휩쓸리던 빈농의 아들이자 자치대장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고해성사,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 눈 덮인 들판과 수로의 긴 둑길을 걷던 기억, 그리고 국군에 입대해 논산 훈련소에 들어간 아버지를 면회 가기 위해 길 떠나는 피란민 같은 초라한 가족의 행렬은 인생을 사막의 여행에 비유한 나태주 시인의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는 시인의 지난 인생과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지난 시절의 향수와 고단함을 복원해 내는 책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추억들이 하나 둘씩 지우개로 지우듯 흐려집니다. 이맘때쯤 다섯 형제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어머니가 피워놓은 난로위에 가래떡을 올려 놓고 구워먹던 일이 생각납니다. 시인은 어머니의 낡은 줄부채에 수국꽃을 그려 오랫동안 바라보다 제자리에 넣어 두기도 했습니다.
p.53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른들의 삶이야 어떻든지 아이들의 세상은 다르다. 고달프고 근심 걱정 많은 어른들의 세상과는 아예 다른 것이 아이들만의 세상이다. 그들끼리의 독립적인 세계가 있다. 특히 나처럼 세상의 바람막이로서 외할머니 같은 어른과 함께 산 아이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1950년 6월25일, 전쟁 발발로부터 서울 퇴각과 9월28일 서울 수복, 다시 서울 퇴각과 1951년 1월 4일 후퇴, 그런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시인의 아버지 또한 휘말려 있었고 맨몸으로 겪어내는 고난을 겪어 내야 했습니다. 6·25 전쟁 이후 격변에 휩쓸리던 빈농의 아들이자 자치대장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시인의 고해성사. 힘들었다고 말하기에도 짐작이 가지 않는 우리의 아픈 역사입니다. 시인의 인생 파노라마를 보듯 한편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풀꽃 시인에게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해도 잊을 수 있을까요.
시인은 책에서 추억을 쓰고 싶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겨진 기억,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기억들을 될수록 솔직하면서 아름답게 쓰고자 했습니다. 가난했던 집안, 아버지의 자치대장의 일, 6.25 전쟁 , 그리고 할머니, 어머니, 누이동생 연주 그리고 호롱불을 끄는 풍뎅이를 안쓰러워 하시는 외할머니 시인은 지극히 집요하고 에고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평생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아와야만 했습니다. 무언가 자신이 남과는 다르면서 특별해져야 한다고 턱없이 믿었던 허영덩어리였지만 이제는 평범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기억만이 인생이고 기억만이 참된 인생의 가치요 재산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최선을 다해 정성껏 자신의 인생을 갈고 닦으면서 살라는 시인의 말 , 글을 쓰는 동안 힘들고 고독했지만 행복했고 그러한 기록들을 다시금 기억의 창고로 되돌려 보내고 싶다는 말이 혹시 마지막 책은 아닐 거라고 독자는 생각합니다. 소실되는 기억들을 다시 글로 복원해 내는 일 멋진 글은 아니더라도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