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쇼팽 - 폴란드에서 온 건반 위의 시인 ㅣ 클래식 클라우드 28
김주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평점 :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우리는 그를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시간 스물 여덟 번째는 프레데리크 쇼팽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로서 시리즈를 기다리며 읽는 독자로서 솔직히 오래 기다렸습니다. 일평생 피아노를 작곡하고 연주하고 짧은 생을 마친 쇼팽을 기리기 위해, 1927년에 시작되어 1955년부터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이란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2005년 임동혁, 임동민형제가 2위없이 공동3위를 했고, 2015년 조성진이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쇼팽콩쿠르 우승자가 지난달에 발표 되었습니다. 우승자는 결선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캐나다의 '브루스 샤오 우 리오' 가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프레데리크 쇼팽은 1810년 3월 1일에 프랑스인 아버지 니콜라 쇼팽(Nicolas Chopin)[6]과 폴란드 귀족의 딸이었던 어머니 테클라 유스트나 크시자노프스카(Tekla Justyna Krzyżanowska)[7] 사이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쇼팽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으며, 7살 때는 폴로네이즈 두 곡을 작곡했을 정도였다. 어린 쇼팽의 재능은 바르샤바의 귀족들에게까지 알려져 그들 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고 쇼팽이 얼마나 연주를 잘 했는지, 당시 폴란드 언론이 "천재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만 태어나는 줄 알았지만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천재가 태어났다."라고 극찬했을 정도였습니다.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1816년으로, 체코계 폴란드인이었던 보이치에흐 지브느(Wojciech Adalbert Żywny)라는 피아니스트에게 배우게 되었다. 쇼팽이 말하기를, "지브니 선생님 앞이라면 노새도 천재가 될 겁니다."라고 했을 정도. 1818년에 기로체프의 협주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쇼팽을 보고, 지브니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면서 쇼팽이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합니다. 천재를 이미 알아본 스승의 높은 안목이 쇼팽을 자유로운 방임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p.74 어쩌면 그가 그리워하고 돌아가고자 했던 조국은 하나의 핏줄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나고 자란 땅과 그 하늘이었을 것이다. 운명의 잔인함이 그가 고향을 떠나는 순간 전쟁과 혁명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마음에 아물기 힘든 발톱 자국을 남겼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폴란드어와 생활 방식을 고집했던 것은 조국의 대한 사랑보다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추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822년에 바르샤바 음악원의 창설자인 유제프 엘스네르(Jozef Antoni Franciszek Elsner)를 통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게 되었고, 1825년 중학생 때는 러시아 황제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후 피아니스트 바츨라프 빌렘 뷔르펠을 사사하며 바르샤바 음악원을 다녔다. 바르샤바 음악원을 졸업한 후, 1828~29년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음악의 중심지인 빈으로 가서 피아니스트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p .126 어디를 가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어수선한 파리의 사교계, 떠들썩한 살롱의 소음 속에서 홀로 울고 싶은 절망에 자주 빠지던 청년 쇼팽은 그 혼란스러움을 걸작 〈발라드 제1번 g단조, Op. 23〉으로 표현했다. 발라드로는 첫 번째인 이 곡은 어쩌면 당대에는 쇼팽보다 더 높이 평가받았을지도 모르는 시인 아담 베르나르트 미츠키에비치의 민족주의적 혁명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다만 시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쇼팽 특유의 우수와 서정성, 교묘한 화성 진행을 통한 격정의 표출, 그 틈새를 파고드는 달콤한 멜로디의 조화가 정제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책에는 39년간 짧은 생을 살다 간 쇼팽의 인생은 크게 폴란드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음악적 자아와 지향점을 형성해 간 전기와, 프랑스 파리를 주무대로 주요 작품들을 쏟아 낸 후기로 나뉩니다. 쇼팽의 어린시절 사진부터 피아노의 시인이 걸어간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