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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박경리 대하소설, 5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16권의 시작은 짤막한 기사로 시작되는데 호열자가 와전된 것인지 페스트가 발생했다는 풍문도 끈질기게 나돌면서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정보를 판별하는 힘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는 사례로 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최참판 일가는 권력과 부를 가졌지만 괴질의 정체를 모른 채 죽음을 피하지 못한 반면, 서울을 드나들며 호열자(콜레라)가 세균을 통해 전염된다는 정보를 안 조준구는 음식물을 끓여 먹으며 끈질기게 살아남습니다. 해결책과 정체를 모르는 불안한 상황일수록 새로운 정보에 대한 욕구는 크고 우리가 신종 코로나를 겪으면서 가짜 뉴스가 창궐하며 약간 사람들의 마음을 이러저리 괴롭혔던 배경과 매우 흡사해 보입니다.
이용과 임이네 사이에서 난 아들 이홍은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간도에 이주하여 성장한 후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 임이네와 그리운 어머니 월선 사이에서 갈등하며 다소 비뚤어지고 반항적인 사춘기를 보내다 김훈장의 손녀 허보연과 결혼한 인물입니다. 16권 혼백의 귀향에서는 송영환의 장례식에 모인 송장환과 홍이, 진씨, 박서방 등이 술상 앞에 모여서 답답하게 돌아가는 시국 이야기기와 그간의 이야기로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월선 아주머니를 친어머니로 생각하지 않았냐는 송장환의 말에 홍이의 감정이 북받쳐 오릅니다. 생각해 보면 나쁜 조건에서 태어나 피도 살도 닿지 않는 분들께 너무 많은 애정을 받아다고 하면서 “희망은 있다. 자신을 가져도 돼, 다만 일본이 어떤 식으로 망하느냐 그게 문제다.”라며 송장환은 홍이를 위로합니다.

점령지역의 확대가 이번의 경우, 이기는 전쟁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일본정부나 군부는, 전과를 내세우며 군민을 교묘히 오도하고 있지만 실상 그들의 내부적 고민이야말고 여태까지 장기전을 치른 일 없는 일본도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장기전으로 들어가면 양쪽 모두 힘든 일이 되는건 사실입니다. 일본을 위해 중재에 나설 나라도 없고 전쟁물자를 대주기는커녕 팔아주는 곳도 없어 중국에서 손 털고 철군하는 것 이외에 일본은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걱정입니다. 벌써 수많은 우리 동포가 각처로 끌려나가 고혈을 짜내고 있고 현재까지는 지원이지만 머지않아 징병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몰아낼 것이며 남경학살 때도 그랬지만 여자들은 성의 도구가 될 것도 걱정입니다.
조용하의 자살이 있은지 오년이 지난 후 임명희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법적으로 조용하의 아내로 남아 있던 명희는 상당한 유산을 분배 받았고 형의 재산을 정리하던 조찬하는 임명희의 가출을 문제삼아 유산분배를 반대했으나 법적으로는 임명희가 최우선이었습니다. 찬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조씨 가문을 묻어 버리고 싶은 마음 형의 인간성에 대한 혐오감은 형통에 대한 증오감으로 나라를 강탏ㄴ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조씨 가문의 치욕스러움은 혈통에 대한 열등감으로 찬하는 가문을 묻어 버리고 말살하고 싶어고 그는 집안을 매장하고 싶었던 겁니다.
환국의 집에서는 첫아들 재영의 돌잔치가 열리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혜화동의 모란유치원에서 오륙 분쯤 걸어올라가면 환국이 사는 집이 있는데 정원은 넓고 칸수도 많은 한옥집에 젊은 내외와 아들, 양현이와 일하는 사람이 살고 길상이 서울에 머무는 일이 많아 서희도 서울 출입이 잦아졌으며 돌잔치에는 친가와 처가의 부모들과 서울서 학교 다닐 때 환국이를 맡았던 임명빈 부부와 명희도 초대되었습니다. 명희가 조용하와 비교적 원만했던 시절, 양현을 양녀로 소망하여 긴주까지 내려간 일을 떠올렸는데 그런 양현이 눈부신 처녀로 성장하여 여의전의 학생으로 명희 가까운데 살고 있다는게 명희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서희에게는 아직 서릿발 같은 성깔이 남아 있었고 명희에게는 청초함이 남아 있었지만 마흔여덟과 마흔여섯의 나이가 되어 영롱한 두 젊은 앞에 그 잔영을 드러내 놓고 다분히 격식적인 대화가 오고 가고 사랑에서는 길상과 서의돈 임명빈이 술잔을 기울이며 길상의 표정은 비통했고 길상을 바라보는 임명빈은 긴장했고 서의돈은 생각을 굴리기 시작합니다.
“민족주의는 결국 자아에 대한 방어요 민족적 존엄은 결국 내 자신의 존엄이기 때문이다. 다 빼앗기고 벌거숭이 되어도 우리는 항복하면 안돼.”
어느 죽음이 안타깝지 않은 건 하나도 없지만 평사리의 농민으로 최참판가 습격에 가담하고 은신처에서 만난 백정의 딸과 결혼하여 이후 동학 잔당의 중심인물로 의병활동과 형평사운동, 일경의 표적이 되어 만주로 도피하고 백정이라는 신분 때문에 악극단주자로 전락한 아들 영광을 보면서 신분에 대한 심한 혐오감과 자기비하에도 빠졌었다. 민주 조직에 합류하여 행상을 위장하여 일하다 모란강 방면에서 호열자로 사망한 송관수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 때문인지 길상은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몇시간 동안 주연이 악몽 같았고 그 시간은 기나긴 통로와도 같아서 길상을 지치게 했습니다. 낯선 이들도 아니고 꽤 오랫동안 서로를 보아온 처지임에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전적인 부정 그것 때문에 지리산 골짜기든 만주 벌판이든 자신은 그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는 뼈저린 통한, 사명감도 양심의 소리도 아닌 다만 자신의 삶의 진실한 의미를 자신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잠시 잊고 있던 조준구는 작게나마 벌을 받기는 합니다. 중풍으로 쓰러져 하반신이 마비되었지만 그렇다고 집안이 조용해진 것은 아니라 잔혹한 상태에서 조준구는 광란 상태로 변해 송장 썩은 물까지 구해다 줘야 하는 입장이 되어 아들 병수네에게 못할 짓까지 시키는 중이네요,
진주의 명망 있는 외과 의사이자 서희의 주치의 박효영 의사는 아내 익란이 후배와 달아나버리자 패배감과 고독 속에 살다 서희에게 사랑을 느껴 고백도 해보지만 서희는 마음을 주지 않았고 그녀를 단념하기 위해 재혼을 했지만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서희에게 들립니다. 박의사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것도 자살이라니 서희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길상이 만주에 있는 동안 또 감옥에 있는 동안 버팀목이 되어준 최소한의 친구였습니다. 이부사댁에 들른 박씨의 완강해 뵈는 두상, 결코 웃을 것 같지 않는 갸름한 얼굴, 회색 자미사 저고리 앞섶에는 바늘이 꽂혀 있었고 눈을 내리깐채 한번도 서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않는 박씨의 얼굴을 보고 서희 자신의 세월을 보는 듯 전율을 느낍니다.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그게 세월” 이라는 서희의 말로 16권을 덮습니다.
채성모 서평단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