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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 제공 도서 (가제본 서평단77)
뉴욕3부작 달의궁전 등으로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미국 문학계의 수퍼스타로 불린 소설가 폴 오스터가 202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견고히 자리 잡은 작가 폴 오스터는 그의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 가 출간되기 전에 가제본을 미리 받았습니다. 은퇴를 앞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 사랑과 상실, 기억과 우연, 나이듦과 삶의 의미 등을 농밀하게 다룬 작품으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기대가 됩니다.
처음 맞는 좋은 봄날이죠 - 연중 최고의 날이에요. 누릴 수 있을 때 누리자고요. 몰리. 다음에 무슨일이 벌어질지 절대 모르는 거니까. ---p.9
정원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움가트너는 기억의 정원을 걸으며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삶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기 시작한다. 소설은 1968년 뉴욕에서 가난한 문인 지망생으로 아내를 처음 만난 이후 함께한 40년간의 세월, 뉴어크에서의 어린 시절, 옷 가게 주인이자 실패한 혁명가였던 폴란드 출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까지 여러 장면들과 에피소드들을 펼쳐 보이며 한 인물의 내적인 서사를 따라간다.
아내 애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작품 곳곳에는 죽음에 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합니다. “지금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지금도 살고 싶어 하지만 그의 가장 깊은 부분은 죽었다” 라고 표현합니다.그 는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난 10년간 그것을 알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냄비에 손을 데어보니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 속에서 아, 나는 깨어 있구나! 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죽음 뒤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무 데도 아닌 거대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p.75

애나의 타자기는 책상에서 튀어나온 마호가니 판자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애나의 시집을 묶는 기획에 뛰어들면서 혼란 속에 맞닥뜨린 삶을 오로지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려고 하는 모습과 사람은 떠났어도 남기고만 물건들의 소중함을 또 느낍니다. 이 작품은 인생의 가장 큰 상실을 경험한 바움가트너라는 인물을 통해 이전 같지 않은 나이 들어 가는 몸과 더불어 얼마 남지 않은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프랭키 보일은 아버지의 소원대로 군에 들어가지만 베트남 정글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건축일을 하는 플로레스는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겪습니다. 어떤 이는 꿈을 꾸고 또 어떤 이는 꿈을 포기해야 하는게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 슬픔과 힘듦은 각기 다르지만 평생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 어떤 방식으로 상실을 애도하고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지를 겪어보지 않으며 잘 모릅니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의 주제가 삶과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독자에게 알려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자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는 생애 마지막 작품 <바움가트너>는 기억과 삶, 상실과 애도를 느끼기에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