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평점 :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_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그 세 번째 이야기
출판사 제공 도서
2010년부터 14년간 173회에 걸쳐 『현대문학』에 연재되고 있는 안규철의 그림 에세이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일과 공부, 사람과 사물에 대한 57편의 깊은 사유들과 스케치가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사물의 뒷모습을 말하는 것은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회색의 다채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모자람과 넘침 없는 따뜻한 위로가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마음에 위안이 될 것 같은 작품입니다.
그림자에 대한 말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나도 다시 평범한 날들에 대한 정돈된 일상을 향한 바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p.19 「평범한 날들 중에서」
파울 첼란의 「그대도 말하라」 중에서라는 시에서 “마지막 사람으로, 그대의 말을 하라. 그러나 그 말에서 예와 아니오를 가르지 말라. 그 말에 방향을 주어라, 그림자를 주어라”라는 문장이다.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는 마지막 구절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의 젊은 날은 남들처럼 예와 아니오를 가르느라 다 지나가버렸다. 나의 말에 그림자를 준다는 생각은 해볼 겨를이 없었다. 시대 때문이었다고 변명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내가 시인의 말을 실천해볼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을까. 후배들을 위해 쓰는 글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독백이 되었다. ---p.153-154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 중에서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이 글들이 사물의 그림자를 통해서 사물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본문 중에 나오는 파울 첼란의 시에서 가져온 구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2021년에 나온 사물의 뒷모습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물의 뒷모습을 말하는 것은 사물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회색의 다체로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탈자를 피해 지하로 내려간다는 ‘감자’ 땅위에서 여름내 푸른 잎을 펼쳐 햇빛을 받아들이는 동안, 햇빛도 바람도 새소리도 없는 어둡고 축축한 흙속에서 감자는 자신의 열매에 씨앗을 위한 양분을 저장하는 일에만 전념한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햇빛을 받는 시간보다는 감자처럼 땅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화려하고 현란한 네온사인 간판과 거리에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오색찬란한 빛에 장 시간 노출되어 온 눈이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편안함을 준 점이 좋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철학적으로 깊게 사유해 보기 좋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