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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착취 : 돌봄노동
알바 갓비 지음,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2024년 11월
평점 :
사랑이 아닌 착취가 되어버린 돌봄!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돌봄노동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다.
자본주의 폐지, 가족 폐지, 젠더 폐지는 극단적 선택인지 혁명적 선택인지 팬데믹 이후 돌봄 노동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돌봄은 여성의 전유물이자 노동 시장에서의 지위조차 지극히 평가절하되어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것은 돌봄이 주로 사랑하는 관계인 가족, 애인 사이에서 무상으로 충족되는 경우가 많아, 돌봄을 노동과 연결 짓는 것을 터부시하는 오랜 전통적 인식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돌봄이 생산적 노동의 한 형태라는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돌봄은 이 시대의 화두입니다. <친밀한 착취>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베풀어지는 돌봄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돌봄의 숭고함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오해도 이러한 인식을 강화한다고 했습니다. 알바 갓비는 돌봄은 곧 사랑이라는 공식에 거대한 의문부호를 던지고 이 공식이 생기게 된 정치, 경제적 이유를 다방면으로 추적한 특별한 책입니다. 갓비는 특히 ‘돌봄=사랑’ 공식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자본주의’임을 지적하며, 왜 자본주의가 이 공식의 수혜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가족 이데올로기’, ‘로맨스 이데올로기’ 등의 개념을 들어 유려하게 독자를 설득해 나갑니다.
‘여성의 일’이라는 딱지가 붙은 노동
돌봄은 필수적인 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돌봄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노동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작동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많은 괴로움을 낳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고통과 긴장, 권태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책은 재생산 노동의 정치에 관해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동인구를 유지하고 교체하며 사람들의 안녕을 보장하는 일, 그 일에는 임신과 육아 같은 세대교체는 물론이고 요리, 청소, 세탁 같이 매일 하는 일은 솔직히 표가 나지 않지만 안 했을 경우에는 금새 티가 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환자, 장애인, 노인을 돌보는 일까지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돌볼 것인가? 주로 가족이 담당하는 비공식 돌봄이 아직은 훨씬 더 많지만, 앞으로는 사회적 돌봄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와 가족이 변화했고 이에 따라 문화와 규범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간병인처럼 비제도권에 있는 돌봄 제공자까지 사회적 돌봄의 제도 안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것이고 재정 사정에 무관하게 돌봄의 제도화와 사회화 요구는 더 높아질 공산이 큽니다.
페데리치가 쓴 것처럼 ‘당신이 노동하는 것은 당신이 그 일을 좋아하거나 그 일이 당신에게 자연스레 오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당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착취당할 수는 있어도 당신이 곧 그 노동은 아니다. ---p.35
돌봄 노동의 가치를 임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이것을 화폐로 측정 가능한 것인지. 이 책의 저자 알바 갓비는 돌봄이 생산적 노동의 한 형태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양한 재생산 노동은 누가 하는지, 누구를 위해 하는지 등이 노동의 본질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기도 합니다. 사회학자 애벌린 니카노 글렌은 재생산 노동은, 흔히 유색인 여성과 이주 여성에게 떠넘겨져 보이지 않는 뒷공간에서 수행되는 더러운 육체노동보다 더 가치 있다고 평가되었다고 말합니다. 낙인찍힌 집단들의 재생산과 생존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덜 중요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이는 무차별적 사랑으로 인식되는 돌봄의 경제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돌봄 = 사랑 공식의 최대 수혜자가 자본주의임을 지적하며 가족 이데올로기, 로멘스 이데올로기 등의 개념을 제시해줍니다.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맏벌이를 해도 아이는 엄마가 키우고 살림도 아내가 해야 합니다. 사회는 이것을 뒷받침해 주지 않고 개인의 가정에 맡기느라 여성들의 경력단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일부터 해서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 돌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돌봄 경제는 성별, 경제적인 지위, 인종 등과 같은 사회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용하는 개인들에게 동등한 기회와 지원을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성 평등과 사회적 정의를 증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돌봄이 무상으로 제공되고 친밀한 관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이데올로기적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돌봄이 사유화된 사랑이 아닌 생산적인 노동이라고 인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관심과 제도가 우선시 해야 된다고 독자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