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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ㅣ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평점 :
미스터리 작품에서 첫문장에 살해의 동기를 밝히는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작품 <활자 잔혹극>은 우리가 왜 타인을 혐오하고 고찰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활자 잔혹극의 강렬한 이 하나의 문장에 독자는 작품의 호기심을 유발하게 됩니다. 영국 범죄소설 작가협회가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골드 대거 상과 미국 추리소설 작가협회가 수여하는 그랜드 마스터 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 루스 렌들의 작품으로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이었습니다.
문맹은 배우지 못하여 읽고 쓸줄을 모르는 사람을 뜻합니다. 예전에 이탈리아에서는 문맹인 사람들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주인공 유니스 피치먼이 커버데일 가문에 들어가 가정부 일을 하면서 글을 몰라 당황하고 난처한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에 독자는 식은땀이 났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솔직하게 말을 하라고 그러나 유니스는에게는 자존심의 문제였고 그들이 이걸 대수롭지 않게 넘길지는 유니스의 짧은 식견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독자는 생각합니다.
문맹은 일종의 시각 장애이다. ---P.45
저자는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문명의 초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맹은 기형으로 취급되 육체적으로 기형인 사람들을 겨냥하던 조롱의 방향이 문맹인 사람들 쪽으로 점차 바뀌는게 당연 하다고 까지 작품의 시작에서 표현했습니다. 조지 커버데일, 재클린 커버데일, 멜린다 커버데일, 지일즈 몬트 이 상의 네 명의 일가족은 불과 십오분 사이에 모두 사망했습니다. 유니스가 일가족을 죽인데는 뚜렸한 동기와 사전 준비조차 없었다는 점인데 9개월을 같이 생활하고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을 했던 유니스가 그들을 죽인데는 더 깊은 사연이 존재하게 됩니다.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을 그의 살인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는데...
유니스는 학교를 드문드문 다녔고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옮긴 이유로 그녀의 습득 능력에 근복적인 격차가 있다는 사실도 이를 바로 잡아줄 교사도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하는 일과 고양이가 매트 위에 앉았다, 짐은 햄을 좋아하고 잭은 잼을 좋아한다 정도의 문장만을 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 결과로 어휘는 굉장히 빈약했습니다. 그녀는 활자로 도배된 세상이 끔찍했고 활자를 자신에게 닥친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활자는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그녀에게 활자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거리를 두면서 “안경이 없어서 못 읽어요.”라며 자기 방어를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안경’이 문제의 시초가 되었을까? 자신이 문맹이라고 알아차리는 가족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고...
유니스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활자로 바뀌어 버렸다. 그들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존재이자, 흰 종이 위에 군데군데 박힌 검은 존재였다.---P.246
“난 라디오가 없는데요.” 그녀는 이렇게 미래와 자유를 약속하는 선물을 걷어차고 말았다. ---P.274
이 책을 읽으니 문득 떠오르는 <더 리더>라는 원작의 한편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여주인공 한나가 글을 읽고 쓸줄 모르는 문맹자로 나오는데 남자 주인공 마이클이 법대생이 되어 다시 우연히 법정에서 만나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누구나 남에게 보이기 싫은 모습이나 들키고 싶지 않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타인을 혐오하게 되는 것 중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도발적인 첫문장으로 대신합니다. 문맹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니스에게는 타인에게 절대 들키고 싶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활자중독에 빠져 달리는 버스 창가에 앉아 간판을 모두 읽으나 분주했던 독자의 어린시절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한 것들이 타인 누군가에게는 혐오를 줄 수 있다는 점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