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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예브게니 오네긴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25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김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평점 :

줄거리 결말 스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타이밍의 불일치에서 오는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분위기는 기본적으로 오네긴과 타치야나의 엇갈린 감정선 때문인데 처음에는 타치야나가 오네긴을 짝사랑했고 나중에는 오네긴이 타치야나를 짝사랑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사랑이 엇갈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 사람의 처지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치야나가 오네긴을 사랑했을 때, 그가 이를 거절한 이유는 청년의 시기에 접어든 시절에 타올랐던 열정의 허무감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기성 사회에서 한발 물러서서 관조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결혼하여 평범한 행복을 누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행복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소. 내 영혼은 행복을 모르오. 당신의 미덕들은 내게 부질없소. 나는 그걸 받을 자격이 없소.”
이 말이 겉보기엔 겸손한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내면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 평범한 삶을 살 사람이 아니라는 자존감이 숨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친구 렌스키와의 결투의 결과로 상대를 살해하고 한동안 은둔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는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타치야나를 만난 오네긴은 그녀에 대한 사랑의 열정에 들뜨지만 이 때는 타치야나의 처지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미 결혼하여 유부녀가 된 그녀는 더 이상 오네긴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각자의 처한 상황과 처지가 변함에 따라 그들의 사랑은 엇갈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타이밍의 불일치가 안타까운 결과를 낳게 된 겁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적절하게 맞지않는 타이밍을 겪으며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인생의 타이밍은 우리가 미리 알기도 어렵거니와 이를 조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에 삶의 비극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오네긴과 타치야나의 엇갈림은 인생에서 비극의 원인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작품의 결말은 상당히 특이한데 타치야나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하고 나서 이후의 이야기를 전개 시키지 않고 갑작스럽게 종결해 버리고 말기 때문에 독자는 당황했습니다. 그러면서 작가 알렉산드르 푸쉬킨은 이런 문장으로 이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향연을 일찌감치 떠나버린 자, 마치 내가 오네긴과 헤어진 것처럼 인생의 소설을 다 읽지도 않고 별안간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자는 행복하도다.”
이 때문에 타치야나에게 거절당하고 나서 오네긴의 삶이 어떠했는지 독자로서는 전혀 알수가 없습니다. 그는 낙심해서 다시 시골에서 은둔생활을 재개 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훌훌 털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평범한 삶을 살았을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면 끝내 타치야나를 잊지 못하고 그녀의 주변을 맴돌면서 삶을 아깝게 허비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가는 이렇게 독자들의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또는 각자가 살아온 삶에 따라 각기 다른 열린 결말을 제시했습니다. 19세기초에 이런 열린 결말을 떠올렸다니 대단하게도 느껴지지만 결말이 썩 마음에 들진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작품을 종결시켜버림으로써 작가가 의도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건 아닐까 생각도 하게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결말을 보고 싶은게 독자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