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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사 ㅣ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평점 :

“나는 그녀를 슬픔으로 이해할 겁니다.”
부영사는 말한다.
철책 밖의 걸인 소녀, 철책 안의 부영사와 대사 부인 안-마리 스트레테르 세 인물의 이야기는 무질서하게 때로는 서로 뒤섞인 전개가 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로 부터 상실하게 됩니다. 걸인 소녀는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버림 받았고 어머니가 되어 아기를 버립니다. 애초에 이름을 부여 받지 않은 그녀는 평원을 헤매는 한 걸인 소녀였다가 익명이자 다수의 걸인 속에서 자신을 잃었고 정체성마저 상실하고 부영사인 장-마르트 드 아쥬는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유년시절을 버림받아 파리의 빈집과 친척 한명만 남아 있습니다. 안-마리 스트레테르는 어린 시절 베니치아에서 미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였으나 남편인 대사를 떠나 아시아의 나라들을 떠돕니다. 이렇게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자기가 처한 철책을 넘어 타자에게 향하는데 ...
부영사(副領事)는 프랑스 외교관 직책이자 한 인물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고통’이라는 이 세계를 가로지르는 3악장의 불협화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상실과 파괴, 외침과 눈물의 서사
프랑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전위적이고 여성적 글쓰기로 작품과 삶 모두에서 우리를 매료시킨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부영사』가 소설가 최윤의 번역으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습니다. 인물과 사건, 감정과 심리의 흐름을 극도로 섬세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뒤라스의 문학적 행보는 그의 극적인 인생 편력만큼이나 모험적이며 급진적입니다. 문학 이외에도 예술의 경계를 활발히 넘나들며 활동해 온 뒤라스는 연극, 영화 그 어떤 장르이건 전통이나 상식,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나는 인생을 가볍게 생각해요.” 그녀는 손을 빼내려고 애쓴다.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에요. 모든 사람이 옮아요. 내개는 모든 사람이 완전히, 온전히 옳아요.” ---p.164
어린 나이에 임신해 가난한 집에서 쫓겨나 캄보디아에서 부터 10년을 걸어 인도 캘커타에 이르는 여자 걸인의 여정으로 시작한다. 이런 액자식 구성처럼 피터 모르간이 쓰고 있는 소설 속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을 때 불현듯 현실 속에 그녀가 등장합니다. 그가 여자 걸인 이야기를 쓰게 된 경위는 캘커타 주재 프랑스 대사 부인 안 마리 스트레테르가 자기 주변에서 늘 “인디아나 송”을 부르고 있는 한 여자 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부터 입니다. 샤를르 로제트 앞에도 등장하는데 그녀는 그가 주는 동전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갓 잡은 생선 머리를 물어 뜯으며 그가 공포를 느끼는 걸 즐깁니다.
스트레테르 부인에게는 피터 모르간 외에도 마이클 리차드, 조지 크라운이라는 정부가 더 있는데 그들이 가족처럼 지내는 건 아주 기이한 모습입니다. 그녀는 인도에 새로 부임한 외교관 비서인 샤를르 로제트에게도 관심을 보인고 샤를르 로제트는 그녀에게 끌리면서도 그녀를 둘러싼 관계들에 섞이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녀의 권태를 간파한 부영사가 그녀에게 구애하지만 외면당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로제트는 이 소설의 주요 세 인물 스트레테르 부인과 장 마르크 드 H와 여자 걸인을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인물이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입니다.
모든 등장인물의 기이한 관계와 행동들의 이유는 계절풍이 부는 인도의 무더위와 권태가 공통점이겠으나, 기후는 그들 내면에 품고 있는 근원적 문제가 드러나게 합니다. 그것이 작가 뒤라스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은 다른 듯 하면서도 동일시 느껴지게 하는 힘이네요. 문둥병자 사이에서 먹고 자는 일들은 이상하지 않고 백인사회에 어울리는 일은 힘이 든다는 것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씁니다. 그리고 스트레테르 부인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과 부영사가 대낮에 문둥이들과 거울을 향해 총을 쏜 사건과 걸인 소녀가 툭하면 “인디아나 송”을 부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상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책입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