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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평점 :

“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 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자끄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 전문 중에서
소설의 서술자는 1995년 삼십대 후반의 여성 강진희 주인공입니다. 1969년 자신이 12살 이었을 무렵의 경험을 회상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처럼 <새의 선물>은 삶에 냉소적인 삼십대 후반의 자아와 어쩌면 아주 당돌 하지만 일찍 어른이 된 열두살의 시점으로 약간은 혼재된 느낌으로 사건이 서술되는 액자 소설로 보입니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서술자의 말을 빌리면 군인의 시대에 사람들의 삶과 사회 현실이 잘 드러난 세태소설 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삼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p.13
나는 일찍 세상을 깨쳐서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그럴듯하게 해냄으로써 어른들의 비밀에 접근합니다. 또한 자기 삶의 괴리와 상실을 견디기 위한 장치로 나는 바라보기 나와 보여지는 나로 자아를 분리하고 이러한 거리두기가 삶에 대한 통찰을 가능케 했다고 말합니다. 이 소설은 이러한 나의 시점에서 그 당시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열두 살의 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솔직하고 또렷하게 전달해줍니다. 책을 읽다보면 철없는 어른들에 둘러 쌓인 진희를 응원하게 됩니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이십 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 p12 진희가 처한 환경에 진희의 생각 사고는 이렇게 형성되어 갑니다.
진희의 삶은 삶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거리를 유지하는 긴장으로써만 지탱되었고 언제나 내 삶을 거리 밖에서 지켜보기를 원했습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동네 사람들 진희네와 같은 살림집에 살고 있는 장군이 엄마와 유복자로 태어나 이미 효자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장군이네 가족 누구든 험담하기 좋아하고 무슨 일이든 참견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장군이 엄마의 활약이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네 칸으로 이루어진 가겟집에 들어앉은 ‘광진테라’와 ‘뉴스타일양장점’의 사람들 양장점에서 시다로 일하며 신분 상승의 야심을 위해 자신의 실력을 연마하는 미스리 언니의 유머러스한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90년대지만 세월이 지금 흐른 세상은 나의 유년과 하나도 다를바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전히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베트남전이 일어나고 있고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위선과 악의를 배워가며 이혈렬들은 군대에서 애인을 구하고 뉴스타일양장점의 계는 깨졌다가 다시 시작되며 유지공장의 불같이 뜻밖의 재난은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 기분이 왠지 씁쓸합니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작가의 말중에 인상깊은 글입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밝고 순수하게 자라지 못했던 그 시절 진희, 그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새의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