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2세 열린책들 세계문학 28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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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은 절대적인 것인가 아니면 힘에서 나오는 것인가

 

리처드 2세는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이자 흑태자 에드워드의 아들로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입니다. 그는 열 살에 즉위하여 성년이 될 때까지 삼촌인 곤트의 존이 섭정하였고, 재임 중에 농민반란(1381)이 일어났습니다. 아름다운 용모에 심미안적 취향을 갖췄으며 왕이었으나 정세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고 성급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문학에 대한 취향이 뚜렷하여 제프리 초서 등 시인을 후원했으며,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리처드 2의 이미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287번째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지은 리처드 2를 통해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작품 세계를 비교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존의 아들이자 나중에 헨리4세가 될 헨리 불링브루크가 리처드 왕 앞에 서 있습니다. 노퍽 공작 토멋 모브레이를 기소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폐하의 친척이라는 사실도 무시하고 왕족의 혈통이라는 점을 이용해 폐하의 군사들 봉급 가불이란 명목으로 금화 8천 냥을 받아서 사악한 모반자이자 위험한 악당답게 편취하여 부적절한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죄질이 무거워 보입니다. 모브레이 변명이 이러합니다. 왕비를 모셔오기 위해 프랑스에 다녀오는데 막대한 경비가 들어 사용했으므로 자신은 충성스러운 귀족임을 증명하기 위해 결투를 청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증명하기 위해 명예롭게 살고 명예를 위해 죽겠다고 합니다.

 

 

결투의 승자를 점지하도록 하겠소.

군정 장관, 짐의 호휘병들로 하여금

이들을 무장시키시오. -리처드 왕 제1막 제1

 

 

노퍽 공작 초머스 모브레이와 허퍼드와 랭커스터와 더비의 해리와의 결투가 시작하려고 하는데 불링브루크는 결투에 앞서 폐하께 먼저 작별을 고합니다. 모브레이와 맞서 싸울것이고 죽음의 결전을 앞두고 있지만 병약한 모습이 아닌 건장하고 젊고 쾌활하게 숨을 들이쉬듯 작별을 고하겠다고 하니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늠름한 장수로 보입니다. 이때 리처드왕이 투구와 창을 내려놓고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의자로 돌아가라 명합니다.왕은 자국의 인재들의 손에 의해 서로 간에 상처와 원한을 남기는 처사를 용납할 수 없다며 리처드 왕은 노퍽 모브레이에게 추방이라는 무거운 처벌을 내립니다. 셰익스피어는 리처드가 즉흥적으로 판단한다고 말한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이 둘을 6년 추방형과 종신 추방형에 처하는 결정 곤트의 존의 재산을 몰수하는 장면 또한 즉흥적으로 처리합니다. 리처드 왕에게는 사촌, 즉 숙부의 아들을 추방하는 큰 일을 리처드 왕은 즉석해서 처리해냅니다. 배우자와 가족 친인척 비리를 눈감아 주는 요즘 세태하고는 다른 모습이라 놀랍긴 하네요. 하지만 블링브루크가 민심을 얻기 위해 한 행동이 왕에게는 위협이 되고 경계감을 느껴 추방을 결정하게 된거라는 사실입니다. 숙부인 곤트의 존의 임종을 앞두고도 리처드2세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신하의 마지막 간언에 분노하고 자리를 뜹니다.

 

왕의 저 극심한 방종의 불길은 오래 계속하지는 못할 것이오.

센 불은 금방 타 버리지요.

가는 비는 오래 계속하지만, 폭풍우는 잠깐이요.

너무 탐식하면 음식이 가슴에 얹히오.

들뜬 허영은 만족을 모르는 가마우치처럼 끝내는 밥이 끊어져 자신을 잡아먹게 마련이오.”

 

 

 

사촌이라 하셨소? 제왕으로 있을 때는 아첨꾼들이 모두 신하들이었는데 이젠 왕보다 더 위대하게 되었군. 이제 신하가 되니 왕을 아첨꿈으로 두게 되었구나. ---리처드 왕 제41(리처드 왕과 블링브루크의 대화)

 

 

리처드 2는 귀족들의 왕권 쟁탈전을 펼쳐 보이는 작품이지만 왕권이 성립하는 데에는 백성의 지지가 절대적임을 암시합니다. 국민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것을 한 나라의 수장이라면 항상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명목상의 왕을 중심으로 영주들의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한 중세 봉건 체제에서 근대 중앙 집권적 절대주의 왕권의 탄생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세 봉건 체제 영주들의 기능과 세력은 민중의 힘이 대신하게 됩니다. 리처드와 불링브루크는 모두 국가 권력이 왕에게 집중된 근대적인 절대주의 왕권을 추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이 둘의 성패를 가른 것은 근대 절대주의 국가의 근간이 되는 백성들의 지지를 확보 여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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