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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ㅣ 레이디가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월
평점 :

편집자의 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급적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그 다음으로 본문을 읽은 후 마지막에 편집자 후기를 거들떠봐 주시길 당부했습니다. 바른 생활 독자는 이에 따르기로 하고 천천히 음미하듯 책장을 넘겨 보았습니다. 이리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가 들어간 구절을 제목으로 한 <구름에 달 가리운 방금 전까지 인간이었다> 12편의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올해도 같은 밥 같은 찬을 먹는 따뜻한 봄날, 푸르른 겨울날 먼 길 나섰다 만난 장송 행렬, 프레젠트 코트 머플러 무톤 부츠 각 글의 마지막에 쓰인 문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산산이 지는 것을 여물고자 함이니 복사꽃’에서 계절감을 나타내는 말은 복사꽃 일명 복숭아꽃을 이르는 말입니다. 벚꽃보다 조금 늦게 연분홍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니 봄을 의미합니다. ‘외국서 찾아온 사위가 장인의 묘석을 닦네’는 미리 묘석을 깨끗이 닦고 향을 바치며 성묘하는 오봉(8월15)일을 의미하므로 여름을 뜻합니다. 모리구치 집안와 공원묘지와 의 인연 가쓰노리의 1주기가 지나 고토코는 다카아키와 상의하여 집을 팔고 아들 내외가 사는 곳 근처 아담한 아파트를 마련해 이사를 합니다. 이사를 앞두고 작별인사를 다닐 때 모리구치 씨가 가쓰노리와 같은 병으로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운명을 관장하는 것이 신령님인지 하늘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한 존재라 하더라도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벗어날 수 없는 질병 앞에서 또 나약해진다는 걸 생각해게 해주는 내용입니다.
안간힘으로 버텨오긴 했지만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이제 이 차량을 일으켜 세워서 다시 운행할 수는 없다. 맺지 못할 연애를 시작하기 이전의 온전한 자신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p.283 푸르른 겨울날 먼 길 나섰다 만난 장송행렬

약혼자의 외도를 눈치 채지 못한 주인공 동기 여성이 아쓰코를 찾아와 그이에게는 내 쪽이 진지한 만남이고 당신이 외도라고 쏘아붙이며 우는 모습은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쓰러지시고 어머니는 너무 울어 중이염에 걸리고 직장은 그만두어 한가할테니 이와중에 고향에 돌아와 집안일을 해 달라는 어이없는 상황 청첩장을 받은 사람들에게 돌린 결혼 취소 통보 <날선 가위여 꽃밭의 맨드라미의 목을 자르리> 도 주인공에겐 맨드라미의 목을 자르고 싶은 잔인한 여름을 뜻합니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하이쿠를 모티브로 의료기술이 발달한 미래를 그린 SF나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열매가 등장하는 판타지, 사다코를 연상시키는 존재와 맞닥뜨리는 무시무시한 호러 등 다양한 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 중에서도 시댁에서 고립된 며느리와 남자친구에게 스토킹 당하는 여자, 바람피우는 남편에게 계속 속는 딸의 삶을 엄마의 입장에서 쓴 이야기 등 여성의 슬픔과 고통을 바라보는 내용의 소설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의 시대상이 많이 반영되어 쓴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위 약자라고 말하는 여성이 고통 받는 사건들은 매일 뉴스에서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열두편 중 인상깊었던 작품은 <장미꽃이 지는 새벽 두시 누군가 떠나가네>였는데 처음 하이쿠를 마주했을 때 떠나간 것이 사람인지 사람 아닌 것인지 잘 분간이 안되는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닌 뜻밖의 존재를 출현시키면서 이렇게도 스토리가 되는구나 라고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